미카엘 엔데가 마흔네 살 때인 1973년에 발표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모모>를 기억할 것이다. 잠시 기억을 되살리자면 도시의 오래된 원형극장에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한 여자아이가 나타나 그곳에 살기 시작한다. 모모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소녀는 말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었다.
무지의 탓으로 엔데를 그저 일본계 부인을 둔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의 유행이 일본에서 시작됐다는 뒷이야기 수준의. 얼마전 일본의 유명한 독서가의 추천 독서목록을 살펴보다 알게됐다. 엔데는 화가이자 소설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놀라운 경세가였다.
일본 NHK가 1989년부터 암세포가 온몸을 잠식했던 1995년까지 총 7번, 2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고 <엔데의 유언 : 근원에서부터 돈을 묻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1999년 방영했다. 책은 이 프로그램에 기초한다. 엔데의 육성이다. "중요한 점은 예컨대 빵집에서 빵을 사는 구입대금으로서의 돈과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본으로서의 돈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돈이라는 인식입니다."
또 다른 육성, 길지만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인용한다. "저는 신작 <하멜른의 죽음의 춤>에서 돈이 마치 성스러운 것인 양 숭배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거기서 누군가는 '돈은 신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돈에는 분명 신이 갖는 특질이 모두 갖춰져 있긴 합니다. 돈은 사람을 단합시키기도 하지만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돈은 돌을 빵으로 바꿀 수도, 빵을 돌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돈은 기적을 만듭니다. 돈의 증식은 불가사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게다가 돈은 불멸한다는 성질까지 갖고 있으니까요. 돈도 역시 영원성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 사물이나 물건이 낡아 없어지는 데 반해 돈은 불멸의 존재입니다. 오늘날 돈의 그 독보적인 영원성은 본연의 영원성을 서서히 몰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배금주의는 일종의 우상숭배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요."
물론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대안 논의들은 있다. 교환을 위한 매개수단과 가치의 기준이라는 화폐 본연의 기능을 되살리려는 시도들이다.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로 대표되는 지역통화, 자유통화, 교환링 등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될까. 이 정도만으로 이 가혹한 화폐경제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또 화폐없는 세상을 설계할 수 있을까. 물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격렬한 비판적 사고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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