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치열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법개정 관련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으나 이번 법개정안은 언론보도에 대한 열람차단청구권을 신설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번 이슈페이퍼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는 열람차단청구권을 검토해본다. 기사 열람차단청구권의 신설이 제기된 배경과 원인은 무엇인지, 법제화되었을 경우 주의할 점과 언론사가 내부적으로 마련해야 될 기준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언론 기사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원하는 방송을 다시 보는 것은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고, 지난 신문 기사를 보려면 도서관이나 언론사를 직접 찾아가야 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소멸되던 기사와 기억은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영구히 박제되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나 구글에서 검색어 하나만 입력하면 수십 년 전의 신문기사와 방송자료가 그대로 쏟아져 나온다.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 과거 기사를 검색해보면 90년대까지도 인권이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의식이 참으로 희박했음을 알 수 있다. 피의자와 피해자의 실명과 사진뿐만 아니라 번지가 공개된 상세한 주소까지도 이름 옆 괄호 안에 보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공간에 영구히 박제된 기사들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1990년대 초반, 유명 연예인들과 재벌 2세들의 마약과 성 스캔들이 크게 보도되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여성 배우는 연예계를 은퇴하고 이민을 갔다. 30여년 뒤, 자녀의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을 구글로 검색한 전직 배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포승줄에 묶여 경찰에 연행되며 울부짖는 과거의 모습이 방송사 뉴스 사이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들어간 과거 신문기사들도 죄다 검색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흘렀기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청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직 배우는 당시 강압적 수사로 인한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각각의 언론사에 개별적으로 연락하여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사는 인격권 보호를 위해 삭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 그러나 이 사건에 연루된 남성 기업인 중 한명은 훗날 커다란 정치적 스캔들에도 연루되어 공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과거 기사를 남겨둬야 하는 것일까? 이처럼 과거 기사는 새로운 인격권 침해를 야기할 수 있지만 기사를 삭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기사 삭제는 이미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다
기사 삭제요청은 오래전의 기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습과 평판이 인터넷에 드러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뒤에도 기사의 어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사 삭제를 요청한다. 범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자신은 형을 마쳤고 죗값을 치렀으니 이제 기사를 지워달라고 기자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때로는 광고주나 정치인 등 외압의 형태로 기사 삭제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언론사마다 다른 판단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언론사가 어떤 경우에 기사 삭제를 하는지도 전반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인격권 침해가 큰 기사를 삭제하지 않는 경우도 문제가 되지만, 삭제해서는 안 될 기사를 언론사가 자의적으로 삭제하는 것도 역시 문제이다.
기사 삭제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및 중재와 법원의 소송에서도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또는 초상권 침해로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인터넷의 특성상 한번 게재된 기사는 손쉽게 검색되고 지속적으로 이용자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별도의 정정보도 등이 이뤄지더라도 원 보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면 지속적 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온라인에서의 기사 노출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이고 근본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기사 삭제 또는 열람차단이 언론중재와 소송에서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 기반 매체를 대상으로 한 피해구제사건 중 30% 이상이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기사 열람을 차단하는 것으로 조정이 성립되고 있다. 다만 현행 언론중재법상 열람차단청구에 대한 근거조항이 없기 때문에 정정보도청구 등으로 조정신청을 한 후에 열람차단 합의를 하는 방식으로 구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사 삭제에 대한 법원 판결
기사 삭제에 대한 법리적 근거를 마련한 첫 판결은 2013년 대법원 판결이다. 그 이전에도 언론소송에서 기사 삭제 판결이 내려지고 있었지만 그 근거는 명확하지 않았다. 2013년 대법원은 인격권에 기하여 기사 삭제청구가 인정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기사 삭제여부는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 아닌 기사로 인해 현재 원고의 명예가 중대하고 현저하게 침해받고 있는 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라는 두개의 가치를 비교・형량하면서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1) 허위이거나 공익에 기여하지 않는 보도로 인해 2) 피해자의 명예가 중대하고 현저하게 침해받고 있는 경우 법원은 언론 자유와의 비교형량을 통해 기사 삭제를 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언론이 보도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인 '진실 오신 상당성' 기준은 기사 삭제청구를 저지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기자가 허위인 사실을 진실이라고 잘못 믿을만한 상당한 경우가 있는 경우 명예훼손책임으로부터 기자를 면책시킬 수는 있지만, 사후적으로 기사 삭제를 구하는 방해배체청구권을 저지하는 사유는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허위기사로 인한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기사 삭제를 청구하는 피해자는 기사가 허위임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하지만, 기사에서 주장된 사실에 대해서는 언론사가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진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어떤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반면 사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보다 용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사를 통해 의혹을 제기한 언론 측에서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소명자료 제시를 통해 증명하고 피해자는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기사 삭제의 근거를 명시적으로 마련한 2013년 대법원 판결 이후, 법정에서 기사 삭제 판결이 내려진 건수는 2014년 13건, 2015년 34건, 2016년 36건, 2017년 40건, 2018년 40건, 2019년 38건이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발행하는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 공개된 판결문 내용을 살펴보면, 기사 삭제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건들은 대체로 보도 내용이 공인에 대한 것이거나 공적 이익과 연관된 것이었다. 특히 공직자 내지 공적 인물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에 대해서는 그러한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지 않는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기사 삭제를 허용하지 않았다. 가령, 공기업 부실투자에 대한 보도처럼 공공의 이해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기사에 대해서는 삭제청구가 기각되었고, 외국인 환자가 치료 도중 사망한 사건에 대한 보도에 대해서도 일부 허위내용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명하였지만 이러한 기사를 유지할 공적 이익을 인정하여 병원 측의 기사 삭제청구가 기각되었다.
군병원에서 형제 군인이 잘못된 진단과 치료를 받아 난치병에 걸렸다는 방송 보도에 대해 법원은 보도내용이 허위사실이 아니라며 국방부의 정정보도청구를 기각하는 한편 공적인 사안에 대한 언론의 문제 제기나 비판은 널리 허용되어야 한다면서 당해 방송프로그램의 다시보기 삭제청구도 기각하였다. 그러나 허위인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자의 인격권 침해가 중대할 경우 기사 삭제청구가 받아들여졌다. 해군법무관인 원고가 클럽에서 외국인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법원은 기사 내용이 허위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므로 기사를 삭제하라고 판결하였다.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기사 삭제는 언론 자유에 대한 제한적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정정보도의 보완적 수단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실제 판결을 살펴보면, 변호사가 대학후배인 재판장으로부터 소송의 핵심사항을 귀띔 받았다고 보도한 신문기사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되었다. 법원은 당해 기사의 공익성은 인정되나 기자가 보도한 허위사실을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성이 없다며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8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인 변호사의 기사 삭제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사의 삭제는 특정한 표현 자체를 존재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가 되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기사와 함께 정정보도문이 검색 및 표시되도록 한다면 기사 삭제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정정보도문이 원 기사와 함께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하여 원고의 명예회복이 가능한 경우에는 굳이 기사를 삭제할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은 향후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열람차단은 정정보도의 보완적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기사 삭제와 열람차단은 문제가 된 기사를 온라인에서 이용자들이 볼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같다. 하지만 삭제와 열람차단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기사 삭제는 언론사의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기사 정보를 삭제함으로써 기사의 존재 자체를 영구히 없애버리는 것이지만, 열람차단은 해당 기사에 대한 접속과 접근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기사 삭제보다는 열람차단이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보다 덜 제한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열람차단청구권 규정을 신설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미 실무에서도 기사 열람차단이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는 만큼 그 근거를 법에 마련하는 것이 제도 운영의 명확성 측면에서 타당할 것이며, 기사 삭제보다는 열람차단청구권을 신설하는 것이 언론 자유에 대한 제한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기사를 안보이게 하는 것'은 기사 열람차단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즉, 피해구제 측면에서는 기사를 안보이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열람차단청구가 남용된다면 그야말로 언론에 직접적 제한을 초래할 수 있게 된다. 법원이 기사 삭제는 '정정보도의 보완적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따라서 기사 열람차단의 경우에도 정정보도에 대한 보완적 수단으로서 활용되어야 하며, 공인에 관한 보도이거나 공익에 기여하는 보도일 경우 열람차단청구가 제한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전에 발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열람차단 청구가 있을 경우 ‘지체 없이 해당 기사에 열람차단 청구가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하도록 한 규정이 삭제된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열람차단은 사후적이고 보충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인 만큼 일방의 청구로 인해 표시를 하는 것은 남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발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열람차단청구권의 행사 요건은 (1) 언론보도 등의 제목 또는 전체적인 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2)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개인의 신체, 신념, 성적 영역 등과 같은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3) 그 밖에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의 세 가지이다. 또한 개정안은 보도 내용이 공적 관심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사회의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공인이 열람차단을 청구하거나 공익적 기사에 대해 열람차단이 청구된 경우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사의 가치가 충분히 고려하여 열람차단이 남용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과거 기사에 대한 열람차단청구의 경우에는 기사는 작성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기준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기준을 잣대로 과거 기사를 과도하게 차단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90년대 초반까지의 언론보도에 실명과 나이, 직업, 자세한 주소까지 드러나 있다고 하여 이를 모두 열람차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 기사로 인해 중대한 인격권 침해가 현재까지 지속되는 경우 디지털 기사의 일부를 수정하거나 이름을 익명처리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해보고, 이러한 수단이 효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에 보충적인 수단으로서 열람차단이 활용되어야할 것이다.
언론사 내부의 삭제, 열람차단기준도 필요하다
이제 포털이나 구글, 소셜 미디어의 아카이브에서 어떠한 정보나 기록을 완벽하게 지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디지털 매체환경의 변화를 고려할 때 허위보도로 인해 인격권 침해가 중대하고 현저하다면 기사를 삭제하거나 열람을 차단하는 것은 언론사가 피할 수 없는 피해구제수단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언론사나 언론관련 단체는 내부적으로 기사삭제나 열람차단에 대한 자율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 어떤 절차를 거쳐서 누가 삭제나 열람차단을 결정할 것인지를 규정해두는 것은 언론사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삭제청구에 대해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언론사 내부에서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기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할 수도 있다. 언론사의 자체적인 삭제나 열람차단의 결정과정은 투명하게 행해져야 하고, 그 절차와 결정 주체도 미리 명확하게 정해져야 하며, 이를 위해 언론사 내부에 위원회를 결성하거나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적절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기사가 삭제되거나 열람이 차단되더라도 온라인 공간에서 기사의 흔적을 영원히 없애기보다는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기사가 사라졌는지를 남겨두는 것도 필요하다. 기사가 삭제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도 역사의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주제의 기사가 어떤 이유로 삭제나 열람차단 됐는지를 기사가 게시되었던 디지털 공간에 표시하거나, 삭제나 열람차단된 기사의 목록과 내력을 분기별로 공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언론사 내부에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삭제나 열람차단 결정에 대해 추후 심사를 거쳐 그 타당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정당성 확보를 위하여 필요할 것이다.
미국 일간지 <보스톤 글로브(Boston Globe)>는 2021년 1월 22일 '새로운 시작(Fresh Start)'이라는 프로그램을 출범하였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보스톤 글로브>의 과거 기사에 등장한 사람이 온라인 기사를 업데이트하거나 익명으로 처리해줄 것을 요청하면 언론인 10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시작' 위원회에서 이를 검토하여 특정 기사를 열람차단하거나 익명처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새로운 시작' 위원회는 경범죄와 오래된 사건 기사에 대한 열람차단 내지 익명처리 신청에 우선순위를 둘 방침이며, 공인이나 중범죄 관련 기사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정부기관이나 기업 관련 기사에 대한 열람차단신청은 불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보스톤 글로브>처럼 언론사가 보도로 인한 피해에 선제적이고 자발적으로 대처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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