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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를 수리할 수 있을까?

[초록發光] 수리할 권리와 의도적 진부화 끝내기

지난 8월 11일,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IT 기업 S사는 자사의 스마트폰 신제품의 2021년 '언팩' 행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새로운 스마트폰 모델은 전 세계 주로 랜드마크의 옥외 광고판을 채웠다. 광고는 지난 날 잘 나갔던 여러 핸드폰과 스마트폰 모델들을 비춰주며 말한다. 이런 제품들이 훌륭했지만, 그러나 단지 좋은 것으로 충분한가(Is 'good' good enough?)라고.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새 제품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새 제품을 사지 않으면 당신도 충분히 좋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회사는 계속 새 제품을 내놓아야 하고 당신은 계속 새 제품을 사야 한다. 적당히 좋거나 충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개발과 구매가 희토류를 고갈시키고, 채굴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와 오염이 일어나더라도 말이다. 불과 6개월 전에도 신제품이었던 모델들이 매장에 나오지도 않고 수만 대가 폐기처분되어도, 당신의 선반 어딘가에 쓰임새를 중단한 스마트폰들이 쌓여가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충분함을 모르는 생산과 소비가 예를 들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데에 얼마나 기여하든지 말이다. 물론 아마도 새로 나올 제품들은 극한 기상현상을 알리고 대처하는 데에 도움이 될 앱을 탑재하고, 기후위기 대응 패키지 광고를 띄우게 될지 모른다.

S사의 이 광고는 대놓고 '의도적 진부화'를 알린다.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로도 번역되는 이 현상 또는 전략은 1920년대에 제너럴 모터스 회장을 지낸 알프레드 슬론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다. 자동차가 아직 탈만 하더라도 변화를 주어 고객들이 더 빨리 새 차를 사도록 유도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코지마 단노리트세르 감독의 2010년도 다큐멘터리 <전구 음모이론>도 이를 보여준다. 너무 수명이 긴 백열등은 기업의 이윤을 많이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전구 제조사들은 의도적으로 수명을 줄이기로 담합을 했다.

이런 일들은 이미 익숙하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2년쯤 되면 느려지거나 고장을 일으키는 것을 경험한다.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 가전제품들 대부분이 그렇다. 뭔가 문제가 생긴다. 간단한 부품만 있으면 고칠 수 있을 텐데 제조사는 수리 부품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부품을 교체하고 고치는 것 보다 전체를 새로 사는 게 더 저렴하니 그렇게 하라고 거의 강압적으로 권유받는다.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의도적 진부화에서 예외가 아니다. '더 큰 메모리와 더 빠른 프로세서가 필요해지도록 프로그램을 과장하라'는 것이 개발자들의 슬로건이다. 물론 물건이 고장나거나 수리가 어려워지는 문제 보다, 새 제품을 사서 이용하지 않으면 뭔가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끼도록 하는 광고가 의도적 진부화를 더욱 부추긴다.

의도적 진부화는 아마 어떤 사업가들의 전략이나 담합이 없었어도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기업의 이윤에 기반하며 경쟁을 통해 확장을 불가피하게 수반하며, 끊임없는 갱신, 그리고 낭비와 폐기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이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의도적 진부화에 저항하거나 억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수리할 권리(rights to repair)'라는 이름의 시민운동이다. 이 운동은 자신이 구매한 제품은 충분히 수명을 보장받고 수리할 수 있어야 온전한 소유권이 보장된다는 개인주의적 발로로부터, 무분별한 이윤 추구와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자 하는 반자본주의적 마인드에까지 걸쳐있다. 이 운동은 제조사로 하여금 제품에 적절한, 가급적 긴 설계수명을 보장하고, 그 기간 동안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가 직접 또는 동네 수리점에서 고쳐 쓸 수 있는 권리를 법률적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로 나아갔다.

수리할 권리 개념의 법제화는 2012년에 통과된 자동차 소유자의 수리 권리법(Motor Vehicle Owner's Right to Repair Act) 법률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유럽연합은 2019년 10월에 소비자에게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제조사가 10년간 부품 재고를 확보하고 수리 매뉴얼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만드는 게 핵심 내용이다. 우선 가전제품에만 해당되지만, 스마트폰과 컴퓨터에도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7월 21일에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을 만장일치로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20개 주에서 관련 법안이 제출되었고, 14개 주에서 법안이 통과되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행정명령을 통해 농기계를 수리할 권리를 포함하여 여러 제품의 수리할 권리 보장을 촉구할 것이라고 한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법률들이 앞 다투어 도입되고 있다.

물론 이런 법률들은 소비자와 시민운동, 그리고 기업 사이의 힘겨루기 속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직 의도적 진부화를 충분히 막을 수준은 아니다. 영국의 소비자 단체와 조직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포함되지 않고, 특히 의도적 진부화의 대표 격인 애플의 제품들이 제외된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애플은 이런 법률이 불량 수리로 이어지거나 소비자를 위험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액정처럼 늘 고장나는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일체화된 제품 구조 때문에 자가 수리가 거의 불가능하고, 부분적 A/S마저 어려운 이 회사의 제품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생각이 다를 것 같다.

사실 애플이 의도적 진부화와 관련되어 논란이 된 건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이 아이팟에 의도적으로 수명이 매우 짧은 배터리를 장착했다는 혐의로 집단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 배터리가 교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입증되진 못했는데, 애플과 고소인들이 법정 밖에서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볼프강 M. 헤클의 <리페어 컬처>는 의도적 진부화의 이런 역사를 살피면서, 제품들이 소비자들을 어떻게 수동적으로 만들고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 없는 조건을 초래했는지를 알려준다. 분해할 수 있는 나사를 찾기조차 어렵게 만들고 간단한 교체마저 불가능하도록 모듈화된 기기들, 매뉴얼에서 사라진 회로도와 배치도는 이 생활 장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이런 경험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헤클은 "나를 둘러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곧 인간으로서의 나를 말해준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자기 소유도 아니고 어차피 또 이사도 가야 하니 함부로 방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나중에야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지구를 "우리 공동의 집"이라 불렀던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집의 구조와 부품에 대한 인식을 일상에서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수동적인 소비자가 된 우리는 우리 집이 불타고 있는 원인을 과학자와 언론을 통해서야 알고, 매우 부분적인 부품의 수리만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체제는 그런 부품조차 구하기 어렵거나 수리 매뉴얼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헤클은 '수리할 권리'가 최근 여러 지역과 집단에서 다시 늘어나는 리페어 컬처에서 환기되고 있다며 희망을 피력한다. 한국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폐기를 줄이는 것 뿐 아니라 의도적 진부화와 의도적 폐기를 양산하는 체제의 작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온실가스 감축은 물질의 생산과 폐기의 총량을 제어하지 않고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녹색성장이나 탈동조화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티핑포인트를 넘어선 기후는 결코 쉽게 수리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리할 권리는 지구를 수리하는 길로 이어지는 한 실마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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