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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누구를 위한 징벌적손해배상제인가?

[인권으로 읽는 세상] 언론개혁 역행하는 여당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논란이다. 논란의 중심에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요건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다. 지난 1년간 무려 16개의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올해 7월 하나의 수정안으로 통합되어 8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이어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됐다. 숱하게 제기되어온 언론의 고질적 문제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여러 차례 확인되어 왔다. 관건은 언론의 문제를 무엇으로 보고, 무슨 수를 어떻게 써서 문제를 바로 잡을 것인가이다. 과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이 변화해야 할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을까?

언론, 무엇이 문제인가

온라인 기반 뉴미디어의 등장은 정보 생산과 보급의 주체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언론사도 온라인 기반 하위 채널을 개설해 조회 수 경쟁을 벌이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정보와 논평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믿을 만한 정보나 관점을 얻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거나, 믿고 싶은 정보만 취하려는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나 미투 운동 등 사회의 굵직한 사건과 변화 속에서 언론이 반복적으로 드러낸 보도 행태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멸칭을 일반명사로 정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참사 보도에서 속보 경쟁을 펼치며 확인도 되지 않은 거짓정보를 확산시키고, 재난 피해자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드러내는 데 혈안이 된 모습이나, 중립성이라는 외피를 쓰고 성폭력 가해자 측 입장을 충실히 보도하며 피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것을 넘어 2차 가해의 주체가 되는 모습은 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언론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구체적인 고통과 피해에 공감하기보다, 차별과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며 사회 구성원이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감각을 지우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다른 한편 경제 권력이나 정치 권력의 대리인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권력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 언론이 가진 고유의 역할, 사회 권력 집단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책무를 저버렸다는 깊은 실망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언론은 소수자와 약자와의 관계에서 힘을 남용하며 삶을 위협하는 주체가 되는 한편 사회의 권력자를 견제하는 위치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누구를 위한 징벌적손해배상제인가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던 초기, 중국인 밀집 지역을 취재 보도하면서 특정 국적과 지역이 특별히 비위생적이라는 식의 보도가 있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이 기사가 특정 국적과 지역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차별적인 기사라고 판단하고 해당 언론사에 시정권고를 내렸다. 확진자의 성정체성을 불필요하게 드러낸 보도에 대해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시정권고를 내렸다. 개인과 사회의 법익을 침해하는 보도를 바로잡기 위한 언론중재위원회의 기사 심의는 빗나간 언론의 역할을 바로잡으면서 사회 공동체가 견지해야 할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중재위원회의 고유한 역할은 계속해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제도가 잘못된 언론보도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피해구제 필요성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면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해 위자료 산정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는 줄곧 있어왔다. 이번 개정안이 허위·조작보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하여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꼭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언론을 바꿀지는 미지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한 피해를 구제 대상으로 한다. 고의 또는 중과실를 추정하는 범주는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해 언론취재 및 보도행위 도중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오보조차 허위보도라고 주장할 여지가 생긴다. 이런 식으로 강화된 언론보도피해구제 제도는 언론의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할 가능성을 높이며 의미있는 '언론개혁'의 방향을 역행할 우려를 낳는다.

개정안의 언론피해구제 절차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를 향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 이런 조건에서 언론은 권력을 취재하며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보도하는 행위에 상당한 용기를 내야 하거나, 보도 자체를 중도에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언론중재위 피해구제제도 청구 신청인 유형을 보면 교육자, 전문직 종사자(법조인, 의료인), 정치인( 국회의원, 정당정치인, 기초 광역단체장이 및 의원)등의 청구가 다른 사회 집단보다 월등히 많다. 누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방어하며, 필요한 경우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도 하다. 또한 논란이 되는 열람차단금지 청구권과 같은 제도는 성폭력 가해자의 정정, 반론, 추후보도 청구권이 강화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몇몇 언론만이 아니라 언론 전체의 신뢰도를 낮추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실질적 언론피해구제를 위해 만드는 법이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행위를 감추고 비호하거나 권력자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작동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무시해도 되는가.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8월 25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추진하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8월 30일 법안처리를 강행하려고 한다. 언론이 본래의 순기능과 사회적 책무를 다 할 수 있을 때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도 줄일 수 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고, 원 정보를 수집하고 취재하여 알 권리를 보장하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제도다. 혼내고 옥죄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여당의 강행의지는 '언론 개혁' 논의를 언론을 처벌하자는 논의에 가두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신문에 실린 부적절한 기사 한 줄이 아니다. 누군가 기사 한 줄로 무너질 수도 있는 불안하고 불평등한 사회다. 언론이 그런 사람들 곁에 있기를 바란다. 부정의한 권력 편에 섰던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되길 바란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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