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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자, '돈'에 꽂히다…"화폐는 '이자 붙은 은행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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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자, '돈'에 꽂히다…"화폐는 '이자 붙은 은행 빚'"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⑪ 기본소득과 신용의 사회화 (1)

"사실 1996년에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역화폐라는 개념을 소개한 이래 이 화폐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어요. (중략) 그러다가 최근에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금융문제의 파장이 넓고 깊은 것에 새삼스럽게 전율을 느꼈습니다. (중략)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사회운동이라도 돈 문제를 우회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서는 결국 변죽만 울리는 헛된 노력일 뿐이라는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2010년 6월 초, 김종철은 향린교회에서 '돈과 자유 - 배당경제학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평소에 가난하게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자고 해온" <녹색평론>이 작년(2009년) 가을부터 뜬금없이 돈에 관한 글을 거의 매호 거르지 않고 게재한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했다.(<녹색평론> 115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218~255쪽)

물건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서민들은 늘 곤궁하고 하루하루의 생존에 허덕이는가? 이러한 '풍요 속의 빈곤'은 구매력의 부족, 즉 서민들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결국 문제는 늘 돈이에요. 물자와 서비스는 넘쳐나는데, 그것을 실제로 획득하는 데 필요한 돈이 없거나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역시 돈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통화제도의 발본적인 개혁과 기본소득 지급에 의한 '배당경제학'의 실현"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통화제도의 발본적 개혁이란 "종래 민간은행에 의한 신용창출제도를 폐기하고 국가나 지자체 같은 공공기관이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며, 기본소득이란 이렇게 발행된 공공화폐를 소득 수준이나 고용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 모두에게 일정액을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이로써 김종철은 '기본소득'이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제기하기 시작했다.

김종철은 '공공화폐 발행과 기본소득 지급'을 '사회신용에 의한 시민배당'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이 실현된다면 '유효수요 부족(구매력 결핍)'에 의한 경기침체와 불황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일반 시민(소비자) 입장에서는 생활상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임금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2011년 11월 <녹색평론> 창간 20주년 인터뷰에서 그는 '성장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자신의 구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성장 경제'를 지양하고 '순환 경제'로 가야하는데, 그 순환 경제의 모습은 무엇인가? <녹색평론>은 몇 년 전까지 '농업 중심 사회'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농업 중심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 사회로의 이행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바로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답을 찾느라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고 최근에야 그 가닥을 잡은 느낌입니다. 저는 우리의 삶을 옥죄는 핵심 원인이 바로 돈(화폐), 즉 금융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강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길게 설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자 놀이'로 유지되는 금융 권력을 해체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안도 무기력한 독백일 따름입니다.

실제로 금융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모색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중략) 예를 들자면, 은행을 공공화하는 거예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에 미국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어요. 은행의 공공화는 중요합니다. 지금 민간 은행이 돈놀이를 통해서 얻는 막대한 이익은 전부 주주에게 귀속이 됩니다. 즉, 공적 이익이 사적 이익으로 전유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민은 빚지고, 중소기업은 망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공공 은행에서는 은행 업무를 통해서 생기는 막대한 이익을 전부 공익 자금으로 만들 수 있어요.

바로 이런 공익 자금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바로 기본소득 같은 획기적인 복지 실험을 할 수 있어요. 기본 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재산 상태, 취업 의사에 상관없이 무조건 일률적으로 일정한 돈을 나눠주자는 것입니다. (중략) 기본 소득은 복지 제도와는 다르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고 관리 비용을 대폭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바로가기 : "모든 시민에게 100만 원씩! 세상이 안 바뀌나 보자!")

'이자놀이'로 유지되는 금융권력을 해체하고, 은행을 공공화하며, 공공은행에서 나오는 이익을 기본소득과 같은 획기적 복지제도에 사용하자는 김종철의 순환경제 구상은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09년 가을 <녹색평론>은 일본의 독립저술가 세키 히로노의 강연 '삶을 위한 경제 - 왜 기본소득과 신용의 사회화가 필요한가'(108호)를 시작으로 2010년 봄에는(111호) 미국의 통화개혁 운동가 리처드 쿡의 강연 '통화개혁과 국민배당 - 경제위기의 해결을 위하여', 113호에는 캐나다의 화가이자 화폐제도 연구가인 폴 그리뇽의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1920년대 사회신용론을 처음 제창한 클리포드 더글라스의 사상을 풀이한 '더글라스의 사회신용론'(마이클 로우보섬)을 실었다. 그리고 115호에 김종철 자신의 강연 '돈과 자유 - 배당경제학에 대하여'를 게재했다.

즉 김종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융개혁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나름대로 현대 금융제도의 문제점과 개혁방안을 숙고했던 것이다. 그는 또 일본에 귀화한 미국인 사업가 빌 토튼의 일본어 저서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정체>(2010년)를 번역해 <녹색평론>에 연재한 뒤 2013년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현대자본주의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해법에 도달한 사람은 김종철만이 아니었다. 2009년 경제학자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가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 민주노총의 이수봉, 사회당의 금민 등과 함께 기본소득네트워크를 발족시켰고, 이 조직은 2010년 기본소득 실현을 추진하는 세계 단체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 BIEN)의 제 13차 총회에서 17번째 가입국으로 승인됐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동안 핵 문제에 전념했던 김종철은 2013년 여름 강남훈, 곽노완 등과 함께 기본소득 관련 좌담('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을 가졌다(131호).

좌담에 따르면 학계에서의 기본소득 논의는 독일에서 경제철학을 공부한 곽노완이 2006년 쯤 한 노동운동단체 세미나에서 처음 제기했다. 당시 곽노완의 발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강남훈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겨울 한 학술대회에서 급진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정책과 대중적인 진보정당운동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요지의 발표를 하면서 급진적이면서 대중적인 정책의 예로 기본소득을 들었는데, 이때 토론자로 나왔던 이수봉이 연구만 하지 말고 기본소득운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면서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만들었다고 한다. 강남훈은 현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이사장이며 이재명 대선 후보의 기본소득 TF 팀장을 맡고 있다.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알려면 위에 적은 <녹색평론>의 글들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홈페이지(☞바로가기)에 '기본소득이란' '기본소득의 역사'에 관한 상세한 글이 실려 있다.

기본소득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 분들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의 '읽기 자료'에 약 20여 권의 책들이 소개돼 있으니 이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자리에서는 김종철의 문제의식, 즉 이자놀이로 유지되는 금융권력의 실상과 은행의 공공화 또는 신용의 사회화란 무엇인가, 왜 기본소득이 성장경제에서 순환경제로의 이행에 필수 요소인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故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

영구적 경제성장을 강제해온 현대 금융제도

김종철은 "제가 현대 금융제도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 제도가 강박적으로 경제성장을 사회 전체에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늘날과 같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은행이 화폐 발행 주체가 돼 있는 상황에서는 공동체의 삶이니 환경이니 하는 것은 전혀 고려사항이 될 수 없고 오로지 경제성장이 지고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자놀이로 유지되는 금융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김종철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아야 한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대부분은 국가가 발행한 것이 아니다. 국가 발행 화폐는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은 은행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른바 부분지급준비제도에 따른 민간 은행의 신용창조에 의해 돈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은행이 만들어낸 돈에는 반드시 이자가 붙어있다. 현대사회의 돈, 즉 은행화폐는 '이자가 붙은 은행 빚'인 셈이다. 이에 따라 화폐 창조 권력을 독점한 민간 금융세력은 막대한 이자 수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반면, 민간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 정부, 기업, 개인은 그 빚과 이자를 갚기 위해 끝없는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균형의 결말이 1929년, 2008년과 같은 대공황이다.

현대의 화폐는 '이자가 붙은 은행 빚'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선진국에서도 극히 드물다고 한다. 캐나다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99%가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 슘페터에 따르면 1920년대까지 화폐시스템에 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진 경제학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 비밀이 처음 본격적으로 밝혀진 것은 1924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엔지니어, 클리포드 더글라스가 <사회신용론>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민간은행이 '이자가 붙은 은행 빚'의 형태로 화폐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부분지급준비제도'라는 제도 때문이다.

부분지급준비제도란 고객이 은행에 맡긴 예금의 일부만을 중앙은행에 보관해두고 나머지를 대출하는 제도다. 예컨대 은행에 100만 원의 예금이 맡겨지면 이중 10%는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으로 예탁하고 나머지 90만 원을 대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은행의 대출이 90만 원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출된 90만 원은 예금의 형태로 다시 은행에 맡겨지므로 여기에서 10%인 9만 원이 지급준비금으로 예탁되고 나머지 81만 원이 또다시 대출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예금 100만 원으로 은행은 900만 원까지 새로운 대출, 즉 은행화폐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즉 은행은 고객이 맡긴 예금의 한도 내에서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8~10배의 대출을 할 수 있다. 이것을 은행의 신용 창조라고 한다. 이 때문에 케인스는 부분지급준비제도에 대해 "무(無)에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발행한 지폐나 동전, 즉 정부화폐는 3~5%에 지나지 않으며 은행 대출에 의한 신용화폐, 즉 은행화폐는 95~97%에 이른다.

은행화폐가 정부화폐와 다른 점은 반드시 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산업국가에서 물가의 약 30%가 은행 이자분이라고 한다. 바로 이 이자 상환의 압력 때문에 계속적인 경제성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르그리트 케네디라는 독일 학자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물가의 30~40%가 이자분이며 하위 80퍼센트 소득자들이 상위 10퍼센트 부자에게 지불하는 이자가 하루 10억 유로, 1년 3650억 유로라고 한다. 은행은 신용창조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화폐 발행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독점하면서 이자의 형태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도 이자제도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은행화폐라는 부채의 그물에 포획돼 있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영구 성장이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케네스 보울딩이라는 경제학자는 "유한한 세계에서 기하급수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광인이거나 경제학자"라고 말했는데, 유한한 지구생태계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자원과 에너지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 경제성장의 결과 우리는 현재 공황과 기후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지구적 차원의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김종철이 2012년 '성장시대의 종언'을 단언한 이유다. 그의 이 발언은 '경제성장이 끝났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생태적 이유로 더 이상의 경제성장은 불가능한 상황에 몰렸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는 지속 불가능한 성장경제를 끝내고 순환경제로 이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경제성장을 강요해온 금융권력이 해체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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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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