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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법원의 명령…"'석유 공룡' 쉘은 파리기후협정 준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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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법원의 명령…"'석유 공룡' 쉘은 파리기후협정 준수하라"

[함께 사는 길] 한국 정부와 기업의 석탄 퇴출 로드맵은?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이 초국적 석유 기업 '로열더치쉘'(이하 쉘)에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 대비 45%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지구의 벗 네덜란드(Friends of the Earth Netherlands)'(이하 지구의 벗)가 1만7000명의 공동 원고와 6곳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지난 2018년 쉘에 탄소 배출 감축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결과다.

법정에 선 '기후 악당' 쉘

쉘은 전 세계 70개국 이상에 9만4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세계 2위 규모의 초국적 석유회사로, 이른바 '석유 공룡'이라고도 불린다. 1907년에 설립된 쉘은 영국-네덜란드 합작기업으로 본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석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불붙던 20세기 초반, 쉘은 유럽계 자본과 기술을 등에 업고 원유 채굴에서 정제, 유통을 아우르는 최초의 통합석유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쉘을 수식하는 화려한 이력은 쉘이 한 세기가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화석연료를 개발하며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후악당 기업임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 주요 상장기업의 환경 경영을 평가하는 영국 소재 비영리기관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는 2017년 보고서(Carbon major report)를 발간해 쉘을 세계 10대 '기후 오염자(climate polluters)' 중 하나로 선정했다.

▲ 쉘 소송 승소를 이끈 '지구의 벗 네덜란드' 기후변화 활동가들. ⓒMarten van Dijl

지구의 벗은 해당 연구 결과를 근거로 쉘이 1854년에서 2010년 사이에 발생한 역사적 온실가스 배출에 약 2% 책임이 있다고 발표했다. 쉘은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를 파괴한 것 외에도 나이지리아에서 원유 유출, 가스 폭발, 수질 오염, 지역주민 탄압 등의 문제에 연루되어 있고,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채 수많은 소송에 휩싸여있다.

산업화 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1.5도 내로 제한해 기후위기가 초래할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불과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행동하고 있지만, 불과 25개의 화석연료 기업과 국영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전 세계적 기후위기 비상사태에 막대한 책임이 있음에도 화석연료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쉘은 파리협정 목표를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네덜란드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2배에 달하는 온실가스를 방출하고 더 많은 석유와 가스를 얻기 위한 시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18년 4월, '지구의 벗 네덜란드는 쉘에 사업 방침을 파리협정과 일치시키고, 석유와 가스에 투자를 축소하는 한편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할 것을 주요하게 요구하면서 이 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집단 소송에 임할 것이라는 법적 서한을 전달했다. 같은 해 5월, 쉘은 지구의 벗에 "귀 단체의 요구에 상세히 답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대신 쉘은 자체적인 방법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에 2019년 4월, 지구의 벗 네덜란드는 쉘에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장을 전달했고, 2020년 12월 헤이그에서 몇 차례 공청회를 가진 뒤 드디어 쉘을 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5월, 헤이그 법원은 지구의 벗의 손을 들어 쉘에 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소송

정부와 기업에 기후위기 책임을 묻는 기후소송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환경단체 '우르헨다'가 지난 2015년 네덜란드 정부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강화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있다. 2018년 10월 네덜란드 헤이그 항소법원은 네덜란드 정부에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25% 감축"할 것을 주문했다. 해당 판결은 사법부가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강력한 파급력을 미쳤다.

지난 1월에는 역시나 네덜란드 헤이그 항소법원이 2008년 쉘을 상대로 처음 제기되었던 원유 유출 피해 소송에서 지구의 벗 네덜란드와 나이지리아 농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쉘 나이지리아는 특히 니제르 삼각주 지역 내 세 곳에서 원유 유출 오염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법원에 따르면 모 회사인 로열 더치 쉘도 주의 의무(duty of care)를 위반했다. 나이지리아 원고 4명 중 3명과 동료 마을 주민은 그들의 피해를 보상받아야 하며, 쉘은 나이지리아 파이프라인에 누출 감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법원이 네덜란드 초국적 기업에 대해 해외에서의 주의 의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4월에는 석유기업이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자행하며 소비자를 기만한다는 이유로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는 이미 2018년 세계 5대 석유기업(BP, 쉐브론,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 로얄더치쉘)에 오랜 기간 화석연료를 판매하며 지구온난화를 발생시켰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뉴욕시가 이번에는 미국 내 거대 석유기업과 협회를 상대로 주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 대상이 된 기업은 엑손모빌, 쉘, BP, 미국석유협회(API) 4곳이다.

법원 "쉘은 파리기후협정 준수하라"

이번 기후 소송은 정부에 감축 책임을 묻거나 기업에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기존 사례들과 달리 기업에 감축 책임을 물어 구체적으로 사업 방침 변경을 요구하는 첫 번째 소송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원은 "쉘이 현재 배출 감축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면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하기 위한 회사 자체의 책임보다는 발전을 기반에 두고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영 방침을 지적하며 2030년까지 2019년과 비교해 탄소 배출량을 45%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앞서 쉘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 2035년까지 45% 줄이고, 2050년에는 탄소 순배출량 제로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법원의 명령은 이보다 더 강화된 감축 목표이다. 법원은 쉘이 최근에 내놓은 대책을 인정하면서도 장기목표에 대해 "구체성이 결여되고 구속력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원은 쉘이 석유 채굴 과정에서 직접 배출한 탄소는 물론 소비자들이 석유·가스 등을 사용하면서 배출한 탄소까지 감축할 의무가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응할 책임을 인정하고 감축을 서두르도록 요구했다. 쉘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널드 폴스(Donald Pols) 지구의 벗 네덜란드 국장은 "이번 판결은 우리의 지구,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기념비적인 승리이며, 모두를 위한 살기 좋은 미래를 향한 큰 도약"이라고 평가하며 "위험한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쉘은 지금 당장 파괴적인 사업방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구의 벗 네덜란드와 함께 이번 소송을 지원한 로저 콕스(Roger Cox)변호사는 "이것은 역사의 전환점이다. 이번 사건은 판사가 오염 책임이 있는 대기업에 파리기후협정을 준수하라고 명령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번 판결은 다른 대형 오염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 지난 5월 헤이그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법원 앞에 전시된 초국적 석유 기업 쉔에게 탄소 배출 감축을 요구하며 공동 소송에 참여한 원고와 시민단체 사진. ⓒBart Hoogveld&Milieudefensie

지원 끊기는 화석연료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압박이 비단 일부 국가 사법부의 판결에 국한한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다. 지난 5월 21일 주요 7개국(G7) 장관들은 석탄발전을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석탄에 대한 국제 투자 중단과 신규 석탄 발전 수출에 대한 모든 정부 지원을 올해 안에 중단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 대통령 기후특별대사인 존 케리는 로이터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석탄만이 아니다. 석유와 가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도 단계적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 케리 기후특사는 이미 지난 3월 세계 최대 에너지 포럼인 세라위크(CERAWeek)에 연사로 출연,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를 주요 사업 분야로 고집하고 있는 미국의 대형 석유 기업들을 향해 친환경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사업 분야를 재편해야 한다고 한차례 강조한 바 있다. 케리 특사는 "대형 석유 기업들은 더 이상 석유·천연가스 회사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신재생에너지까지 총괄할 수 있는) 에너지 기업이 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며 "(석유·천연가스 사업을 고집하고 있는) 미 대형 석유 기업들은 이번 전투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며, 좌초 중인 산업 분야에 대한 자산들만 떠안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7일에는 미국 메인(Maine)주에서 공공펀드에 석유석탄천연가스 및 관련 상품 투자 철회를 의무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주정부 재무부와 170억 달러를 운용하는 메인주 공무원연금펀드는 2026년까지 화석연료 관련 투자 자산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화석연료 투자 철회를 결정하는 공공 펀드가 늘고 있다. 뉴욕주 일반 공무원 퇴직펀드는 2025년까지 석유·가스 기업 투자를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운 대학과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기부금 펀드도 화석연료 관련 기업 투자 자산을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안일한 한국 정부와 기업

한국에서는 아직 온실가스 다배출기업에 대한 소송이 진행된 경우는 없다. 한국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순위는 2019년 기준 포스코가 1위다. 2~6위는 석탄화력발전 등을 가동 중인 발전사들로 한국 남동·동서·남부·서부·중부 발전이다. 한국 정부는 석탄 퇴출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국내외 석탄 투자의 회수에 관한 전략도 부재한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돈줄이 끊기는 것을 넘어 경영 방침까지 법적으로 변경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는데, 한국 정부와 기업의 대응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안일해 보인다. 작년에 제출했어야 할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안을 아직까지 발표하지 못함은 물론, 2050년 탄소 중립을 하겠다며 대규모 벌목 계획을 수립하고 아직 현실화되지도 않은 온갖 기술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가져온 것과 같은 한심함 말이다. 쉘은 감축 책임을 지게 된 첫 번째 기업이지만, 결코 마지막 기업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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