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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흥부전 알 듯 탈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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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흥부전 알 듯 탈춤을 알게 된다

[탈춤과 나] ⑬ 심상교의 탈춤

시간에 눈금 그은 적 없고, 정신에 색깔 입혀놓은 적 없지만 우리는 올해와 작년을 눈금자 보듯이 구분하고, 정신에 무슨 색깔이나 입혀 있듯 회색이니 파란색이니 빨간색이니 하며 색깔을 구분한다. 왜 그럴까? 이유야 많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외로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나누는 측면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탈춤이 이와 같다고 여겨진다. 탈춤 속에는 이처럼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간절함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은 누구이고 그런 자신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세상에서 숨쉬고 있는가를 투철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춤은 가장 지혜롭고 철학적인가. 그렇지 않다. 구분짓는 삶이 싫다고 외치면서 스스로를 구분짓는 어리석음도 들어 있고 정작 자신은 정제되지 않았으면서 정제되지 않은 세상을 지탄하는 오만도 탈춤에는 들어 있다.

바깥을 욕망하고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만들어 다시 자신을 통찰하는 지혜로움이 탈춤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전승되며 변화되어 온 탈춤 속에 민중들의 그런 지혜가 들어 있는 것이다. 어느 때는 최하층민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 아니면 자신들을 위해 때로는 윗계급에게 봉사하기 위해 놀았던 유희가 탈춤이었다. 또 어느 때는 하층민 스스로 최하층민을 자처하여 원래의 자신을 자만해 보는 모순의 놀이이기도 했다. 낮은 계급이라서, 아니면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집단화한 결속의 놀이가 탈춤이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던 처음, 누가 나누라 하지 않았음에도 나누고 갈랐으며 그 안에서 버텨내고자 신명을 찾았고 집단화를 지향했던 놀이가 탈춤이다.

탈춤에는 개인의 발견도 있고 멜로드라마도 있다. 18세기말 프랑스에서 멜로드라마가 만들어진 배경에 민중의 자기 발견이 자리잡고 있는데 뚜렷한 교류가 없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우리 탈춤 안에 개인을 발견하는 내용과 멜로드라마적 요소가 나타난다. 민중을 주인공으로 하고, 에로틱한 장면을 대중 공연을 통해 드러냈으며, 웃음에 감춘 지성의 번득임도 탈춤과 멜로드라마에 비슷하게 나타났다. 개연성보다 우연성이 작품의 재미를 더 높이는 요소라는 점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무선마이크가 사용되지 않는 탈춤 공연에서는 배역이 치는 대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탈에 가려 안들리고 타악연주에 가려 안 들리고 주변의 웅성거림에 가려 안 들린다. 그럼에도 탈춤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무언극에 대사가 있어 이해되는 것은 아니며 춤에 대사가 있어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일정한 표현방법이 있고 말하지 않아도 소통되는 내면의 언어가 있어 이해된다. 시대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서로 통하고 당대의 언어로 연기하기에 들리지 않아도 이해하게 된 것이다.

탈춤의 춤사위도 그렇다. 크게 어려울 것 없이 그저 손을 흔들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 내가 배운 춤사위는 봉산탈춤, 고성오광대, 동래야류의 일부 춤사위다. 춤동작 순서를 암기하기도 어렵고 움직임 자체가 신체적으로도 힘들어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탈춤을 얕게 그것도 아주 얕게 배우면서 알게 된 것은 땀흘려가며 춤사위를 익히고, 탈에 가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대사를 치면서 느꼈던 바는 동작은 힘들고 숨은 탈에 막히니 대사를 내뱉지 않고는 안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사를 내뱉게 되니 내면도 소리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상을 향해 나를 외치게 된 것이다. 몸이 힘들어지니 정신이라도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몸이 힘들어지자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는 말이 탈춤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고성오광대 오광대놀이과장-말뚝이의 사방치기 춤사위다. 오광대과장은 다른 민속가면극의 양반과장과 내용이 비슷하다. ⓒ심상교
▲가산오광대 오방신장무과장- 중앙황제장군, 동방청제장군, 서방백제장군, 남방적제장군, 북방흑제장군 등이 등장하여 춤을 춘다. ⓒ심상교

허튼춤도 있지만 탈춤의 춤은 그냥 막 추어지지 않는다. 정제화되지 않은 것 같지만 주변사물의 생장과 변화를 그 속에 담고 있으며, 게다가 인간의 내면까지를 녹아낸다. 팔다리의 움직임에 희로애락 담아내는 것이 탈춤이다. 형식화되어 있을 것 같지 않으나 작은 떨림 하나에도 형식화는 선명하고 팔의 방향이나 엇갈리는 몸과 팔에서도 형식화는 생생하다.

탈춤 대사를 읽으며 녹화영상을 보면서 탈춤공부를 시작했다. 알 수가 없었다. 아니 회의가 들었다. 우리의 탈춤은 예술작품으로 왜 이리 투박한가? 투박미라는 것이 있을 수는 있는가? 왜 정리되지 못한 채 혼잡스럽기만 한가? 그러다 탈춤 춤사위 교본을 봤다. 더 오리무중이었다. 팔을 어떻게 돌리고 몸을 어떻게 하라는데 나에게 그 말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대로 따라하면 팔이 엉키고 간혹 그 몸짓은 욕설처럼 보였다. 그래도 탈춤의 역사니 분포니 하는 지식은 쌓여 갔고 대사의 내용 또한 쌓여 갔다. 그러다 조금 그것도 아주 조금 탈춤을 배웠다. 탈춤을 배우면서 느낀 첫 소감은 탈춤의 육체적 고통이었다.

한겨울임에도 땀이 나고, 빈 손으로 하늘을 가르고 덩실덩실 몇 번 움직이는가 싶었는데 땀이 흐르고 근육이 욱신거렸다. 팔을 휘두를 때 헐떡이지 말고 대사를 쳐야지, 반주장단을 구분하면서 춤을 춰야지 하는 생각은 꼭 그날 연습이 끝나고서야 새삼스러워졌다.

몇 가지에 불과하지만 얼치기로 배운 탈춤의 춤사위는 탈춤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탈춤이해에 자신감을 주었다. 어떤 탈춤의 경우, 내용은 저항지향이나 춤은 조화지향임을 알 수 있었고 한 배역의 특정 춤사위는 독립된 춤으로서도 가치와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어떤 탈놀이의 어떤 춤사위는 우주와 세상을 유희하며 철학을 담아내는가 하면 세속적 욕망까지를 보여준다는 것도 알았다. 정과 동의 경계를 알게 하고, 넘침과 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한 쪽 다리를 올리거나 흔들 때 의식해야 할 것이 있으며 엉덩이를 뒤뚱거릴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탈춤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춤을 배워야 한다거나 대사를 읽어보고 장단을 쳐봐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탈춤을 알기 위해 탈춤의 형식화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훈련과정이나 표현의 섬세함 등에서 한국 탈춤은 형식에서 자유롭다. 형식의 자유로움이 형식의 부족이 아니기에 형식의 자유로움은 한국탈춤의 특징일 뿐 다른 나라 탈놀이나 춤에 대비되는 우열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네 탈춤은 그나마 조금 있는 형식성을 버려도 된다. 팔이 아프지 않을 만큼 그냥 편하게 흔들고 미안하지 않을 만큼 다리를 들면서 돌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어깨를 들썩이고 그러기도 민망하면 그냥 슬쩍 슬쩍 걷거나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면, 외로움과 세상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탈춤의 처연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탈춤이 담고 있는 해학과 질박미가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영오광대 포수탈마당-담보를 잡아먹은 사자를 포수가 총으로 쏘아 죽인 장면이다. 재난을 물리치는 벽사의식, 억압과 두려움을 물리치는 자. ⓒ심상교

심상교 : 한국전통연희를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부산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희곡작가.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원고 마감 : 2021년 9월 30일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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