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농촌이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촌에 살다보면 농사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몇 년 전부터 파종시기가 달라졌다거나, 집중호우나 한파로 농작물 피해가 심각하다거나 작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여름철 폭염이 점점 심각해지지만, '실내노동자'는 있어도 '실내농민'은 불가능한 현실이기에 농촌은 위험에 노출된 지역이다. 기후위기는 농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의로운 전환은 산업전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을 줄이고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노동자가 도시에만 있을까? 한국처럼 부재지주가 많고 산업화된 농업국가에서 상당수의 농민들은 사실상 '농업노동자'다. 그리고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동물을 길러도 계약재배나 위탁사육계약이 되어 있을 경우 농민은 계약조건에 따라 일해야 하는 사실상의 노동자이다. 농업은 이미 산업이 되었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농업노동자이다.
농업이 쇠락하고 있고 농민의 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는 소식이 전해진지 오래되었지만 정부에는 농정(農政)이 없다. 대통령선거나 총선의 주요 정책에서 농업정책의 순위가 뒤로 밀린지는 오래된 일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사람인데, 그나마 있는 공약이나 정책에서도 사람에 대한 고려보다 시설에 대한 고려가 앞선다. 도시의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처럼 농촌 내부에서도 대농과 소농의 격차는 커지고 있는데, 정부지원은 대농 중심이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만이 아니라 농촌 내부의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농촌은 이미 불평등한 곳이고, 인구의 고령화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인권조차 위협받는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농촌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기후위기의 직접 영향을 받음에도 농촌은 사양산업이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 어차피 농사로 먹고 살기는 어려우니 에너지 농사를 지으라고 권하는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수소연료전지발전 시설들이 농촌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다. 당연한 결과로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18년 21.9%로 매년 계속 떨어지고 있고, 곡물·육류·채소·과일 등 식품 섭취량의 자급률을 나타내는 칼로리자급률도 2018년 35.1%로 가장 낮아졌다.
이렇게 자급율이 떨어져도 부족한 건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으니 도시인들은 농민이나 농촌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농촌이 붕괴해도 식품산업은 성장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식품산업의 총생산액은 1992년 약 13조 원에서 2019년 53조 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2017년에 하림이 축산 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대기업으로 지정되었고, 대형 농식품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방치된 농촌은 도시의 식량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있고, 농민은 식산업체계의 부속품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농촌에도 전환의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농민의 힘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 노동계에서는 기본원칙이 논의되고 있고, 금속노조는 지금 공동결정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업과 관련해서는 그런 목소리가 정리되지 않고 있고, 이런 과정에서 농민이라는 존재가 점점 지워지고 있다.
해외에도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된 정리는 거의 없는데, 2019년 12월 <액션에이드(Actionaid)>에서 발간된 앤더슨(Teresa Anderson)과 발세라(Maria Ron Balsera)의 ‘농업에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원칙들(Principles for a Just Transition in Agriculture)’은 네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하나씩 원칙을 살펴보면, 첫째,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은 농민과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지 않아야 하고, 기후변화의 압박을 받는 사람들, 소농과 유기농업인, 차별을 당하는 여성농민, 식량을 보장받지 못하는 20억 명의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대형곡물산업과 축산업이 아니라 소농과 여성농민, 토지와 동물의 행복을 책임지려는 농민을 지원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자연을 착취하고 여성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등의 산업농업체계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에,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변화와 노동자들의 투쟁이 연계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이런 사회경제적 도전을 지지해야 기후변화가 해결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둘째, 미래의 식품체계는 자연과 기후를 도울 뿐 아니라 모두가 먹거리를 누릴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식품 생산자와 노동자 소비자, 식품공급망의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 지금은 부유한 나라의 산업농이 농업회사에 의존하고, 가난한 나라의 소농은 농약과 화학비료 보조금에 의존하고, 대부분의 소비자는 식품산업체계에 묶여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더 가난한 소농과 여성농민, 농장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힘을 강화하고 농업정책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드러내도록 지원해야 한다. 가공업자와 대형유통기업이 고의적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대규모 산업농이 보조금을 받지 않도록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지금의 식품체계는 산업농업에서 지속가능하고 계획적인 농생태학이나 산림농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토양과 삼림을 파괴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공장식 축산을 중단하고 육식을 줄이며, 산업화된 목축에 투자하고 빚을 진 농민들이 다른 농업모델을 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뿐 아니라 농업체계가 미래의 기후영향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적응이 계획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고, 가뭄을 개선하고 작물다양성을 늘리는 유기농업이 효과적인 전략으로 다뤄져야 한다.
셋째,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식품체계로 전환될 것인지 만이 아니라, 그런 전환이 이루어질 방식도 설명해야 한다. 이 과정은 정의로운 전환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기후전환이 식품체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주변화된 공동체에 식탁을 마련해줘야 하며 지역사회가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제공해서 상향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와 소농이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기후행동의 강력한 지지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의 첫 단계는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이해당사자와 그들의 권력을 지도로 만드는 것이다. 농민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 지도가 만들어지면 소외된 목소리를 끌어내고 들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문만 열어놓으면 여성이나 비공식 노동자,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이미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들어올 것이기에, 의도적으로 시간과 장소, 참여에 필요한 자원 등을 조직해서 말할 수 있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정부는 효과적인 전환을 추진하기 위해 식품과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산파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해당사자들이 협력해서 해결책과 전략을 개발하면, 정부는 이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 식품체계의 정의로운 전환은 몇몇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다양한 전략, 서비스와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전환과정에서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성인지적이고 변혁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청년이 농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 또한 전환에 필요한 여러 기술과 실무, 훈련과 재배치에 필요한 부담을 농민이나 농장 노동자, 지역사회가 지지 않도록 하고, 효과적으로 국가/지역경제를 보호하고 재구성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농민과 농장노동자, 지역사회에 적절한 사회보장정책을 제공하고, 기후친화적인 식품체계로 전환되도록 공공조달시장을 활용해야 한다.
앤더슨과 발세라가 제안하는 네 가지 원칙은 한국사회에도 매우 유용하다. 농촌사회의 다양한 불평등을 드러내고, 농식품체계가 지배하는 먹거리 시장에서 소농과 여성농민, 농장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하고, 그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며 경제를 재구성하는 것, 그것이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이다.
농업의 정의로운 전환은 매우 시급한 과제라서 당장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 농촌의 문제를 방치한다면 거대한 부조리를 묵인하는 것이고, 이는 식량난이라는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가장 불평등한 공포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