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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의 숨은 잠재력, 군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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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의 숨은 잠재력, 군수경제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북한경제와 남한의 대북정책 (4)

Episode 4. 군수산업의 민수경제발전 견인(내부의 힘)

1997년 가을, 필자는 첫 방북 길에 나섰다.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취재와 관련한 방북이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아직 끝났지 않은, 참으로 어렵던 시절이었는데도 방북이 허용되었다.

유 교수의 <중앙일보> 연재는 '장안의 화제'였다. 평양에서 어느 지방으로 이동하던 중에 옆자리 북측 관계자가 필자에서 귓속말로 슬며시 한마디 했다. "유 선생은 알죠? 저 들판만으로 봐서는 그게 우리의 모습 전체가 아니라는 걸!" 필자는 순간 "알지요!"라고 답했다. 군수공장을 비롯한 '지하 시설물'의 존재를 말하는 것 같아서였다.

북측은 우리의 방북에 앞서 방문자들에 대해 치밀하게 사전조사를 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짐작했지만 짐작과 실제는 달랐다. 필자는 방북한 그해에 계간학술지 <전략연구>(한국전략문제연구소, Vol.4, No.3)에 "북한의 정치-군사관계의 변천과 군내의 정치조직 운영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을 북측 관계자가 거론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북측 보위부(현재는 국가보위성) 관계자는 방북 첫날에 필자를 잘 안다는 듯이 한 말씀 했다. "유 선생, 우리 인민군대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더구만~" 필자는 태연한 척 했지만 놀랐다. 북측이 남측 자료를 얼마나 많이 수집했으면 계간학술지에 게재된 필자의 논문을 보았을까.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다른 관계자가 "저 들판만으로 봐서는 그게 우리의 모습 전체가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지?"하는 식으로 말했던 것이다.

25년이나 지난, 낡은 얘기를 새삼 꺼낸 것은 '고난의 행군' 같은 어려운 때도 군사력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북한은 2002년에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국방공업 우선발전, 농업‧경공업의 동시발전)을 전략적 노선으로 채택하고 국방공업의 우선발전을 위해 질주했다. 그 논리는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 그 과정에서 중공업의 발전이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농업‧경공업도 연쇄적으로, 동시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던 북한이 2017년을 기점으로 전환의 기회를 맞이했다. 2017년은 북한 스스로가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하는 해다. 제6차 핵실험과 함께 '화성'계열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극성'계열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시험발사에서 성공했다(SLBM은 2016년). 핵무력의 완성은 핵억지력과 핵보복타격능력을 갖추었음을 뜻한다.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킨다는 2002년의 전략노선이 나온 지 15년 만에 핵무력을 완성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전력질주' 외에 다른 표현이 없을 것 같다.

북한에서 2018년은 또 다른 전환의 해였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3월전원회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이 5년 만에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2018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으로 변경됐던 것이다.

그해 4.27 판문점선언, 6월의 북미정상회담(싱가포르), 9.19평양정상선언이 진행되던 시점에 북한은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의 수행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하노이)에서 북미관계가 파탄에 빠지면서 북한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과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5개년전략(2016~20년)에 장애가 조성됐던 것이다.

북한은 201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어 '정면돌파전'을 선포했다. 2020년의 환경은 더욱 좋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완강히 유지되는 상황에서 자연재해의 피해가 컸고 코로나19 방역상황은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올해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재편성으로 방향 선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상황은 내적인 힘을 총동원하는 '전환적 대응'을 필요로 했다.

내적인 힘에는 군수산업의 능력도 포함된다. 128만 명의 정규군 병력을 감축하여(군사복무기간의 단축방식 등) 생산현장에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는 한편, 첨단병기 생산체계의 군사기술을 민수산업에 이전시키는 파생효과, 재래식 병기생산체계에서 군수공장, 병진공장, 민수공장 일용직장 등을 민수품 생산기지로 전환하는 대체효과, 비무기 군수용 생산품을 민수부문에 공급하는 낙수효과 등을 적극 고려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군수산업이 민간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대한 '전쟁' 선포는 군수산업 등 특수부문과 민수경제 사이의 담장을 낮추려는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측 관계자가 필자에게 지하 군수시설을 넌지시 암시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지하공장의 규모와 생산력은 끝내 모른 채다). 내부의 힘을 총동원하는 과정에서 절약투쟁으로는 한계가 있다. 군수산업의 자금‧기술‧고급인력 등이 민수경제로 이전하는 움직임이 표면화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암시는 북한 문헌에서 간혹 발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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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중소(中蘇)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남북을 오고간 사람들 : 남의 조직사건과 북의 대남사업>, <박병엽 증언록 1- 조선민주주의인미공화국의 탄생>(공저), <박병엽 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스즈키 마사유키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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