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북한 경제정보의 세계
필자가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로 일하던 1998년 12월의 일이다. 필자는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하던 <통일경제>에 "북한 경제관리 '개선' 방향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 글은 경제관리 '개선'의 움직임이 있음을 북한 문헌으로 입증한 것이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난 지 1년 된 시점에서 경제관리 개선을 구상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북한의 공개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에는 늘 경제기사가 많다. <경제연구>, <김일성종합대학학보: 철학, 경제학> 등의 경제전문지에 수록된 학자들의 글은 대체로 짧지만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 정책이론지 <근로자>는 입수에 어려움이 있는데 이를 구할 수 있다면 정책 지향성을 확인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1998년 12월 당시만 해도 일부 연구자들만이 북한 문헌에 깊이 발을 담구고 있었다. 그 무렵 북한의 개혁‧개방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글이 자주 등장했는데 중국 등의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에 비추어 북한의 앞날을 판단하는 편향(偏向)이 있었다. 자본주의 계량경제학의 시각에서 북한에 관한 추정통계에 집착하는 연구도 있었다.
지금은 북한경제의 연구가 풍성해지고 북한 문헌을 활용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다만 과거의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졸저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의 "책을 펴내며"에서 내재적 접근에 의한 집필 의사를 밝혔다.
이번 연재에서도 같은 분석 스타일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분석을 내재적 접근에 국한한 것은 아니었고 국내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활용했다. 북한경제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방법론과 독창성에 집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필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기관지인 <민족화해> 2021년 3~4월호의 서면인터뷰에서 이렇게 쓴 일이 있다.
개인적 동기를 북한 '경제정보'와 연관시켜 논의를 더 해보자.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가운데 거의 절반은 경제관련 기사다. 연구자들이 이를 충실히 분석 정리한다면 성과를 낼 수 있다. 매일 <로동신문>과 씨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로동신문> 읽기가 '지루하다'는 고백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더러 있어왔다. 선전체 기사들이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보도는 남한 언론들의 보도방식‧기사와 상당한 차이가 난다.
<로동신문>에는 다양한 경제정보가 실린다. 이것을 개인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연구기관들에서 매일‧매주‧매월의 과제로 정해 지속적으로 하면 좋을 일이다. 요즘은 연구소, 언론사 등에서 <조선중앙TV>를 시청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직 시절에 정부 승인을 받아 신문사 '특수자료실'에 방송장치를 갖추어 <조선중앙TV>를 자주 보았다. 매일 볼 수 있었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조선중앙TV>는 경제현장의 단신, 경제당국자 인터뷰, 산업현장 탐방기사, 경제 관련 기록영화 등 공장‧기업소와 협동농장에 관한 내용을 빈번히 방영한다. 그 정보를 정리하면 북한 경제정보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북한정보의 수준은 차이가 난다. 필자가 중앙일보에 입사한 1989년에는 북한의 각 도(道)에 관한 소개기사를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요즘은 이런 정보라면 포털사이트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실향민들이 신문을 스크랩하고 변색될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이다.
북한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정작 품질 높은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학자들의 연구와 지식정보의 세계 사이에 커튼이 쳐져 있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본격화될 때 북한 경제정보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해진다. 그 준비가 필요하다.
통일부는 북한자료 제공과 관련해 올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일반국민과 연구자들의 공식‧공개적인 북한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자료 제공 서비스 개선을 위해 <노동신문> 기사목록을 5월 14일부터 북한자료센터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이었다.
73만 건의 기사목록을 확인한 결과를 가지고 북한자료센터를 방문하면 본문 열람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4월 1일부터 <주간북한동향>(통일부 발간)에 기존의 기사정리에 더해 주요 북한동향에 대한 통일부의 분석‧평가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었다.
통일부의 두 가지 조치는 환영할 일이다. 필자는 민간영역(정부출연 연구기관 포함)에서 세 가지 조치를 추가하기 바란다. 첫째, 북한경제 전문가들이 매일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북한경제 '전환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그리고 <경제연구>와 <김일성종합대학학보: 철학, 경제학> 등의 정보를 훑어야 하고, 여기서 중요한 경제정보를 정리해야 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나 대학 연구소 등은 정리된 경제정보를 간행물로 발간하고 경제정보 정리자의 노고를 실적으로 평가하면 좋을 것이다.
둘째, 일부 대학‧대학원에 개설된 '북한학과' 학생들에게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경제정보를 정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경제 전문가들에 비해 질이 떨어질 수 있지만 정리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반복적으로 이 작업을 수행하게 하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필자가 졸저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과 이번 연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20대 중반부터 북한 문헌을 접하던 환경(특수자료 취급기관인 대학‧언론사 연구소)과 반복된 북한문헌 읽기의 소산이다. 북한경제 '전환기'의 경제기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머지않아 전문가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전문영역에서 미시연구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다.
우리 사회의 대북 인식은 천편일률적이어서 전문가와 독자의 차이가 별반 없어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비쳐진다. 탈북자들의 매체 등장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탈북자들이나 보수 시사평론가들이 유튜브 채널에서 언급한 정보들은 북한의 실상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낡거나 왜곡‧과장된 정보, 전문성과 괴리가 있는 정보의 확대재생산은 북한 경제정보의 체계적인 유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이 북한 경제정보의 공개에 주저하고 '회전문' 정보시스템에 머문다면 북한 경제정보의 세계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학계의 활동을 한 축으로 하면서 다른 한 축은 시민사회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은 셋째 방안으로 이어진다.
셋째, 북한의 경제기사를 효과적으로 정리해 전문가와 일반인에게 알려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인터넷 전문매체에서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경제기사에 대한 '주간단위 해설'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선중앙TV>에 방영된 경제기사를 '주간단위 해설'(동영상 포함)로 보도하는 것이다. 그 실행 과정에서 북한경제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 북한 경제정보에 대한 해설 보도에 국가보안법(특히 제7조)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의 시대정신을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북한 경제정보의 광범위한 정리에 나서야 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소급해 경제정보를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북한의 새로운 5개년계획이 시작된 올해의 경제정보부터 정리해도 괜찮을 것이다.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의 경제기사(텍스트) 해설, <조선중앙TV>의 경제기사(동영상) 해설에 나서는 매체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의 시대정신은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해야 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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