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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수산업의 '소모성'을 '생산성'으로 돌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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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수산업의 '소모성'을 '생산성'으로 돌리려면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군수산업의 민수경제 발전 견인 (2)

미국 DARPA와 북한의 군수산업‧민수산업의 결합

군수산업과 민수산업의 결합은 민감한 현안이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미국과의 무한 군비경쟁에서 패배해 체제 붕괴의 나락을 떨어졌다는 가정이 있다. 이 가정은 소련의 군사력은 '소모성'에 그쳤다는 분석에서 유래한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군비경쟁이 진행되면서 군수산업과 민수산업 간의 분절, 중공업과 경공업부문 간의 심각한 불균형, 소비성 지출의 과다 등이 소련의 경제발전과 후생에 큰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국방성 산하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통해 군수산업과 민수산업이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갖도록 구조화하는데 성공했다. 거대한 군산(軍産)복합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 인터넷의 원조인 아르파넷(ARPA Net, 군수물자 수급관리체계)이 DARPA에 의해 탄생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실리콘 밸리의 첨단기술 개발의 상당수는 DARPA와의 협력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증거는 많다. 군산복합체에 도입된 첨단기술은 일정한 성과를 거쳐 민수산업에 응용되고, 이것은 산업 생태계에서 선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다.

국방과학기술은 민수산업의 기술혁신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술체인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기술혁신이 단기간에 생산 증대로 이어지는지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기술의 선순환구조 자체는 중요한 산업동력이다.

자본주의경제에서 이 과정은 개별기업의 이익‧이윤과 생산성의 관점에서 작동된다. 사회주의경제에서는 계획경제의 전반적 이익의 차원에서 이 과정에 접근한다. 소련은 군수산업과 민수산업의 이원화된 구조 하에서 산업생태계의 기술적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 이원화 구조의 심화는 무엇보다 관료주의와 칸막이(본위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관련 동향을 살펴보면 소련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이 보인다. '미국과의 정전(停戰)상태'의 장기화에 따른 군비 강화의 필요성과 과도한 군사비 지출은 북한으로 하여금 군수산업과 민수산업의 결합을 중시하게끔 만들고 있다. 북한은 군수산업의 '소모성'을 '생산성'으로 돌려야 한다는 내적 긴장감을 갖고 있다.

첨단 전략무기 생산체계와 파생효과

필자의 생각으로는 북한의 군수산업이 민수경제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부문은 대략 10가지다. 이 가운데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도 있고 증거는 부족하지만 추정이 가능한 것도 있다. 각 부문이 완전히 독립적인 것도 있고 영향 관계에 있는 것도 있다. 또한 북한이 이미 공개해온 것도 있고 아예 비밀에 부치는 것도 있다.

첫째, 첨단 전략무기 생산체계와 관련된 것이다. 북한의 첨단 전략무기 생산체계는 국방공업의 산하에 있다. 국방공업은 제2경제위원회가 담당한다. 제2경제위원회의 활동은 비공개이고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북한의 첨단무기 생산체계의 능력은 공개된 첨단무기만으로도 입증된다.

북한이 첨단 전략무기 생산에 도입된 첨단기술을 민수경제에 이전하거나 응용한다면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이다. 국방부문에서 개발한 첨단기술의 민수 이전(移轉)에 따른 '파생효과(spin-off effect)'는 민수생산 공장의 기대수익과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미국 DARPA의 전형적인 방법이거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기술이전 파생효과는 '과학적인 자력갱생'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경제에 상당한 힘이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29일 조선인민군 제26차 군사과학기술전람회장을 방문해 국방과학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2013년에도 국방 분야에서 과학기술 적용의 확대를 지시한 바 있다. 당시 핵무장과 함께 재래식 군사장비에 IT와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첨단장비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인민군대에서 개발한 군사과학기술의 성과와 정형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의 파생효과를 본격적으로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4년 5월 평안남도에 새로 건설 중이던 1월18일 기계종합공장을 방문했는데 "공장의 설계와 시공을 잘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면서 "중앙의 관록 있는 설계집단과 인민군대의 강력한 건설역량을 파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기계종합공장의 건설에서는 정밀기계 설비들의 배치 등이 중요한데 군수산업 공장들을 건설하던 군대의 건설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첨단 전략무기 생산체계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김 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군수산업의 중핵적인 목표와 국방과학부문의 기본과업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 군수산업의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생산체계에 소속된 과학자‧기술자들을 민수경제로 전직(轉職)시키거나 군수자금을 민수경제로 이전(移轉)시킬 수 있다. 전직한 과학자‧기술자들이 민수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면 국가 차원에서 기술교육의 지출을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

군수부문의 연구시설을 민수부문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연구개발 재원과 시설을 이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어느 시점에 나타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북미관계의 개선으로 인해 첨단 전략무기 생산체계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상상력의 범주에 머물 수밖에 없다.

참고로 <로동신문>은 2020년 6월 14일 내각 기계공업성이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강계뜨락또르종합공장, 압록강기계종합공장, 수풍베아링공장 등의 중요 생산 공정에 CNC 기술에 기초한 생산체계를 도입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NC 기술에 기초한 생산체계'는 첨단 전략무기(장거리 로켓과 인공위성의 정밀부품 등) 생산체계에서 응용한 정밀기계 설비가 투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례는 늘어날 것이다.

재래식 병기 생산체계와 대체효과

둘째, 재래식 병기 생산체계와 관련된 것이다. 북한에서 첨단 전략무기 생산체계가 작동함에 따라 재래식 병기 생산체계에서 이미 구조조정 계획이 마련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자강도 강계시 일대 산악지역의 제25호 군수공장을 비롯한 지하공장들에서 생산되던 재래식 병기는 그 시한이 다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첨단화‧정예화 군대, 무장장비의 지능화‧정밀화‧무인화 등을 추구하는 것을 보면 재래식 병기 생산체계의 구조조정 시침(時針)은 빨라질 수 있다.

이 구조조정에서 다섯 가지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 ①재래식 병기공장의 폐기와 민수공장으로의 전환이다. 지상에 있는 병기공장들을 기계제작공업 등의 여러 공업부문의 공장‧기업소로 개조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②지하 군수공장의 용도 변경이다. 지하 시설물을 제거하거나 일부 변경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국방공업의 지하 시설물에 투입되던 엄청난 전력소비를 줄이고 이를 민수경제에 돌릴 수 있다면 전력부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③군수공장의 기존 생산 공정의 일부 전환에 의한 민수품 생산 또는 새로운 공정과 설비의 신설에 의한 민수품 생산이다. 현행 군수공장을 그대로 둔 채 생산 공장의 일부를 민수제품 생산이 가능하도록 바꾸거나 혹은 새로운 생산 공정과 설비를 갖추어 민수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군수공장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의 다각화'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5월 말~6월 초에 자강도 강계뜨락또르공장, 강계정밀기계종합공장, 장자강공작기계공장(만포), 2.8기계종합공장(만포)과 평안남도의 평남기계종합공장 등을 현지에서 지도했다. 이 공장들은 제2경제위원회 산하의 군수공장이면서 동시에 병진공장이다. 즉 재래식 병기 생산을 하면서 민수공장용 기계설비, 트랙터 등을 생산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강계뜨락또르공장에서 "인민경제와 국방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성능 높은 기계설비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강계정밀기계종합공장에서는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내부예비를 적극 탐구동원하고 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벌려 수십 종의 설비들을 자체로 제작"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현지지도 관련보도에서 공장의 생산품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경우는 대체로 병기 생산과 관련이 있다.

▲ 2019년 6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이 강계뜨락또르 종합공장을 시찰했다. ⓒ조선중앙통신

그는 장자강공작기계공장에서는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스키장에 놓을 끌림식 삭도(케이블카)제작 실태를 요해했다. 평남기계공장에서는 총조립직장‧종합가공장‧제관 및 프레스직장 등 공장의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1단계 개건현대화 정형과 현행 생산실태를 요해했다(<조선중앙통신>, 2019.6.1.~2). 김 위원장의 자강도와 평남의 현지지도는 ③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④군수‧민수 병진공장에서 군수생산을 중단하고 민수생산 전용으로 변경하는 경우다. 현재 북한에는 '병진공장'이라는 이름하에 군수품과 민수품 생산을 동시에 하는 곳이 적지 않다. 북한은 이곳에서 군수품 생산을 중단하고 그 생산량만큼 민수품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①,②,③,④를 묶어서 보면 부분적인 혹은 전체의 '전환(conversion)'이라고 할 만하다.

⑤민수공장에서 '군수용 협동품'(부속품‧중간재) 생산을 중지하는 경우 등이다. 군수용 협동품을 생산하던 민수 공장‧기업소(공장 내의 일용분공장‧일용직장)에서 더 이상 그 협동품을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수 공장‧기업소의 민수품 생산량을 늘어날 것이다. ①,②,③,④,⑤를 전부 묶어서 '대체효과(substitution effect)'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전년도의 성과를 지적하면서 이례적으로 "군수공업부문에서는 경제건설에 모든 힘을 집중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전투적 호소를 심장으로 받아 안고 여러 가지 농기계와 건설기계, 협동품들과 인민소비품들을 생산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추동하였다"고 밝혔다.

농기계, 건설기계, 협동품(민수공장들에 필요한 부속품), 인민소비품 등의 생산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아예 밝힌 것은 군수산업의 민수산업 지원시스템이 일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이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일부(2013년 3~5월)에서 확인되는 군수-민간경제의 결합 사례로 종합식료가공기지(인민군 2월20일공장, 인민군 제534군관하 종합식료가공공장), 축산업(인민군 제621호 육종장, 인민군 제549호 돼지공장), 수산업(인민군 제313군부대 관하 8월25일 수산사업소), 건설부문(마식령스키장), 기계공업(평남기계공업공장), 서비스업(《대동강호》 건조‧운항) 등이 있었다.

한편, 현행 민수산업공장을 군대에 이관하거나 현행 군수산업공장을 민수겸용의 병진공장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군수-민간경제의 결합은 군수생산단위의 집행력이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최첨단과학기술을 지닌 군수산업이 민수산업을 지원하는 형태에 그치지 않고 인민생활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모든 부문에 군수산업의 지원이 존재한다.

<로동신문>은 2016년 6월 16일자 기명논설에서 과학기술전당‧미래과학자거리‧려명거리 건설에서의 '군민(軍民)대단결의 위력'을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그해 8월 19일 사설에서 조선인민군 제122호 양묘장, 양식공업의 본보기‧표준으로 전변된 평양자라공장,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 인민군대의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이 낳은 빛나는 결실", "마식령속도에 이어 위대한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조선속도, 만리마속도가 창조"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미래과학자거리‧과학기술전당의 건설에서의 군인건설자들의 공로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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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중소(中蘇)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남북을 오고간 사람들 : 남의 조직사건과 북의 대남사업>, <박병엽 증언록 1- 조선민주주의인미공화국의 탄생>(공저), <박병엽 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스즈키 마사유키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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