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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은 '선전 도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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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은 '선전 도구'가 아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영화, 공공성을 세우는 과정으로

처음 독립하고 받게 된 건강보험료 고지서, 지역가입자로 청구된 보험료는 수입이 불안정했던 내게 적잖은 부담이 됐다. 고지서에 적힌 고객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함께 하는 건강보험 상담사 ○○○입니다." 내 상황에 귀 기울이며 경감 사유와 방법을 안내받은 기억은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에 내가 속해있음을 새삼 확인했던 경험이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들이 투쟁 소식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노동권 보장과 고객센터 직영화를 요구하며 상담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처우 개선에 나서겠지만, 정규직 전환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처우 개선 넘어 노동자 권리 보장의 책임

2000년대 전후 공공부문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과 민영화의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통신, 철도, 발전 등 분야를 불문하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섰고,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수립에 이어 2006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모범적 사용'을 확립해 선도한다는 취지로 내놓은 대책은 핵심업무는 외주화하지 않고, 상시․지속적 업무를 한다면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무분별한 외주화를 막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정규직의 업무와 비정규직의 업무간의 위계를 부여하고,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는 차별을 두겠다는 의미였다. 이 종합대책은 한 공간에서 연속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모두가 누려야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정규직의 특권으로 여겨지게 했다. 비정규직은 권리 주체가 아닌 처우 개선과 보호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후 정부마다 내놓았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신분처럼 작용해가는 과정이었다.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며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간의 전환 규모와 비율을 제시하면서 정부는 정규직 전환 정책의 성과를 내세우지만, 상당수가 무기계약직 또는 우후죽순 만들어진 자회사 상용직이라는 또 다른 간접고용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비정규직에게 이전보다 고용이 좀 더 안정되고 처우가 나아졌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이다. 이미 신분처럼 작동하는 비/정규직 간의 위계를 깨뜨리려는 의지는 없었다.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이 자격 없는 사람들이 특권을 누리려는 시도처럼 여겨지며 '인국공 사태'와 같은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부는 노동자간의 위계를 해체하고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세워나가야 하는 책임을 외면한 채 공정성만을 강조하며 심판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는 정규직, 직접고용과는 다른 고용형태와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신분이 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동등한 자격을 줄 수 없음을 사회적으로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고객센터를 직영화하라는 요구도 이 지점에 놓여있다. 외주화된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고객센터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정부와 공단이 답하라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역할을 함께 만들어온 상담 노동자

우리가 건강보험과 관련해 궁금한 것이 있거나 확인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이 고객센터다.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들은 보험 가입과 자격, 보험료 부과와 조정, 의료급여, 건강검진 등에 대해 안내하고 필요한 조정을 하고 오류가 있으면 바로 잡는 일을 한다. 일선에서 건강보험에 대한 의견을 들으며 공단의 문제와 과제를 확인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은 "단순․반복 업무를 고객센터에서 일괄 처리"하게 해 공단은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상담 업무 외주화로 고객센터의 업무와 공단의 업무를 분리했다. 공단 안에서 통합적인 하나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왔던 역할을 핵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구분하며 끊어낸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업체로의 분리를 넘어 실제 상담 과정에서 건강보험공단 지사로 상담을 이관하거나 전화번호를 안내해 연계하는 것을 감점 처리하며 공단과의 업무 연관성까지 부인하는 지경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보험 상품이 아니라 사회보험을 운영하는 공단이 스스로에게 부여된 공적 역할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의 이야기를 듣고 반영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건강보험이 사회의 공적인 시스템으로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는가는 결국 공공의 이야기를 듣고, 반영하는 과정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수렴하는 과정의 출발지점에 고객센터 노동자가 놓여있다. 공단은 고객센터의 업무를 서로 다른 성격의 업무로 구분 지었지만,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상담에 있어 건강보험공단과 고객센터는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으며 서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공단은 고객센터의 증가된 상담 건수를 내세우며 "국민과의 소통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찬한다. 상담 건수로 실적을 압박하며, 상세한 안내를 할수록 '저성과자'가 되는 구조에서 소통은 어불성설이다. 비용절감, 성과중심으로 고객센터 업무를 외주화시킨 결과는 결국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공공의 소통 창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왔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어야 한다. 정규직 전환 정책은 정권이 특혜를 부여하는 과정이 아니라 공공부문이 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설계하고 추진할 때 의미를 지닌다. 몇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는 숫자를 실적처럼 발표하는 수준에서는 이미 경험한 것처럼 노동자 간의 갈등만 부추기는 꼴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을 공공부문답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맥락이 놓여있음을 확인하고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설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공공성을 세워가는 과정으로

그동안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대해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필요하지만,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과 특혜로 여겨왔다. 이 과정에서 공공기관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생략되어 왔다. 공공부문을 운영해가는 원칙으로 공공성을 세우고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 정규직 전환 정책의 방향을 확인하며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점을 만드는 투쟁에 지금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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