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시작된 ESG 바람이 이제 5등급 허리케인으로 변화 중이다. 많은 매체에서 매일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며칠 전 보도된 공중파TV의 ESG 열풍 탐사보도는 매일 쏟아진 기사와 사뭇 결이 달랐다. 내가 속한 단체 톡방 여러 곳에서 프로그램 시청을 적극 추천하는 글이 올라왔다. 'ESG 경영의 실체는?'라는 제목의 MBC <스트레이트>의 보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 ESG 경영을 우리 기업들이 앞다퉈 선언하면서 구호에만 그치고 있는 실태, 또 ESG 열풍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선 언론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방송은 동시에 대표적인 글로벌 ESG 경영 기업 파타고니아를 소개해 현재의 흐름과 대비시켰다.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대표적 회사인 파타고니아가 내놓은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광고 문구는 아무리 친환경 제품이라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입고 버린 옷이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경고한다. 파타고니아는 1980년대 중반부터 환경 보호를 위한 정기적 활동과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카탈로그에 재활용 종이를 사용하고 물류센터에서는 채광창과 복사열 사용을 통해 에너지를 60% 감축했으며, 실내 모든 물건에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매장의 조명 시스템을 조절하는 등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1990년대 초반부터 환경 보호를 위한 책임을 직원 업무의 핵심 요소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진정성 있는 ESG 기업이 있다. 유한킴벌리는 1984년부터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모토로 환경경영을 실천했다. 2017년 ESG 위원회를 만들고 ESG 경영을 도입한 풀무원은 2018년 회사 대표가 창업 1호 사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말하자면 거버넌스 경영을 선보였다.
방송은 지금의 ESG 열풍에 편승한 많은 기업이 이미지 개선 목적으로만 ESG 경영을 표방한다고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에서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0% 이상이 ESG 경영에 관심이 있고, ESG 경영이 필요한 이유로 이미지 제고라는 응답이 많았다는 예를 들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홍보하고 앞다퉈 ESG 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중 삼성, 현대차, SK, 포스코, 한화, GS, LG는 이미 설치가 되어 있고, 롯데, 신세계, 현대중공업은 올 하반기 중 설치 예정이다. 10대 그룹 외의 많은 기업과 금융회사도 ESG 위원회를 만들었거나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위원 구성은 ESG와 무관해 보인다. 교수, 기업인, 전직 관료, 변호사 등 대다수가 ESG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인물이라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방송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ESG 열풍에 우려를 표하며 '그린 워싱'에 이어 'ESG 워싱(위장환경주의를 뜻하는 그린 워싱처럼 ESG 경영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자산 기준 상위 100대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ESG 위원회(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설치한 기업은 지난해 기준 12곳에 불과했다. <포춘>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에서는 63곳이었다. 위원회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았다. 국내 100대 상장사는 3.75명인데 비해 <포춘> 100대 기업은 4.37명이었다. 아마 올해가 지나며 위원회 설치 기업이 폭증하고 위원회 규모가 확대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업계의 ESG 경영은 이미 많이 진전됐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3월부터 역내 활동하는 모든 금융사 대상으로 SFDR(지속가능금융공시 제도)을 의무화했고 2025년부터는 모든 상장사로 확대하기로 하였다. 영국은 2025년까지 모든 상장기업 ESG 정보공시를 의무화하도록 하였다. 홍콩 역시 2025년까지 금융기관, 상장 기업에 TCFD(기후변화 관련 리스크의 재무공시를 위한 태스크포스) 기준에 맞춘 ESG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아문디, 핌고, 리걸앤드제너럴투자매니지먼트 등 35개 글로벌 대형 투자사는 골드만삭스, HSBC, BNP 파리바 등 27개 글로벌 투자은행들에 친환경 목표를 구체화하라고 요구했다. 2050년 탄소 배출 제로를 위한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석유·가스업체 등 탄소 배출 기업에 자금 조달을 중단, 산림 벌채·탄소 유발 토지 이용 변화 등에 대출 중단, 대출 자금이 환경 파괴에 사용되면 자금 회수 등 강력한 마이너스 제재 등을 제시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 환경경영을 중심으로 ESG 경영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ESG가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정신임이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ESG 경영이 시기상조라거나 혹은 진정한 ESG 경영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세계가 이미 ESG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국내에서 '무늬만 ESG' 혹은 'ESG 워싱'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ESG의 절박함을 입증하는 명백한 징후이다. 진정한 ESG 선언은 격려하고 위장 ESG 선언은 야단쳐서 기업이 올바른 ESG 경영을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시민사회와 정부가 합심해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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