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도기관들의 6대 과업
김정은 총비서는 전원회의에서 경제사업의 '혁신적 개선'을 위해서는 경제지도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6대 과업을 제시했다(6대 과업은 필자의 분류에 의한 것이다).
첫째, 내각과 경제지도기관들이 '경제조직자적 기능'과 통제기능을 복원하여 경제 전반에 대한 지도 관리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경제지도기관들에서는 권한타발, 조건타발만 하며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던 낡은 타성에서 탈피하여 경제적 난관과 애로들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을 대담하게 적극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조직자적 기능'과 통제 기능은 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에서 핵심적인 기능이다. 계획경제에서는 국가경제지도기관들이 '경제적 난관들과 애로들'을 극복해나가는 주체라는 인식이 지배한다.
내각책임제의 기원은 1972년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면서 정무원을 신설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성 주석은 1988년 1월 1일 당중앙위원회, 정무원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정무원사업을 개선하며 경제사업에서 5대 과업을 틀어쥐고 나갈 데 대하여"에서 자신은 국가주석과 당 총비서로서 경제정책과 노선만 제시하고 경제실무는 전적으로 정무원 총리에게 위임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무원책임제가 시작됐고 1998년 헌법 개정에 따라 '정무원'제는 '내각'제로 변경됐다.
둘째, 비상설경제발전위원회의 역할을 높여 경제발전을 '저애'하는 걸림돌들을 제거하고 나라의 경제가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비상설경제발전위원회를 설치하여 경제발전의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없던 발상이다. 다양한 심급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려면 '비상설'이더라도 하나의 부서가 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보인다. 이 태스크포스와 당중앙위원회에 신설된 '경제정책실'은 전환기 경제를 이끌어가는 마차의 양 수레바퀴에 비견될 수 있다.
셋째, 계획 작성단계에서부터 맞물림을 잘하고 경제부문들 간 유기적 연계와 협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그는 "국가경제지도기관들 사이에 존재하는 책임회피와 본위주의를 철저히 타파하고 서로 목적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지지 보충하면서 제기되는 애로와 난관을 뚫고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부문 간의 유기적 연계와 협동 강화의 과제는 계획경제의 강점일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각 성‧중앙기관들 사이의 책임회피와 본위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경제부문 간의 유기적 연계와 협동 강화가 어렵고, 그렇게 되면 부문별로 '따로 노는' 현상이 계획경제 전체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경제계획과 관련하여 북한에서 인민경제계획법이 처음 채택된 것은 199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2차 회의에서였다. 정권 초기부터 계획경제를 수행해온 북한에서 이 법이 1999년에서야 만들어진 것은 조금 놀랄 일이다. 이전에는 헌법 규정 등에서 인민경제계획을 다뤘을 뿐이다.
인민경제계획법에 따르면, 경제계획은 법적 과제이며 계획의 정확한 실행은 기관‧기업소‧단체의 의무사항이다(제27조). 계획사업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위법행위로 취급된다. 이 법에서는 내각과 해당기관의 과제로 △생산지휘체계의 올바른 수립 △계획 실행정형의 정상적 장악 △제때에 그 실행대책의 실행 등을 규정(제35조)하고 있다.
법 제정 당시만 해도 '경제부문들 간의 유기적 연계와 협동 강화'를 규정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수정 보충될 때 이 과제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넷째, 경제조직사업과 지휘를 실속 있게 잘하기 위해 계획규율을 철저히 세우고 생산총화를 매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생산단위들이 시달된 생산계획과 자재공급계획을 '무조건' 수행하도록 내각과 경제지도기관들이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주면서 요구성을 높일 것, 계획규율을 흥정하거나 태공(맡겨진 임무에 태만)하는 현상, 형식적으로 집행하는 현상들과 투쟁할 것 등을 강조했다. 특히 계획단위들이 생산총화(결산)과정에서 서로를 봐주는 현상도 고쳐야 할 점으로 지적되었다.
다섯째, 모든 생산물과 수입물자들을 통일적으로, 숫자적으로 장악‧유통시키는 방법을 찾아내고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물과 수입물자 유통에서 중앙집권적인 통계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는 통계다!' 이 아포리즘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그는 "경제관리문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해결하려면 정치적 방법과 경제기술적 방법, 행정조직적 방법을 옳게 결합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정치적 방법은 당적 지도, 정책적 지도의 측면을, 경제기술적 방법은 생산현장에서의 생산기술 및 과학기술적 측면을, 행정조직적 방법은 경제관리의 측면을 말한다.
기업체 차원에서 보면 정치적 방법은 당 책임비서, 경제기술적 방법은 기사장, 행정조직적 방법은 지배인이 각각 담당하는 영역인데 세 가지를 올바로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경제 간부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일 것과 경제계획 수행을 법적으로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 간부들의 책임성과 관련하여 "일단 세워진 인민경제계획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흥정할 권리가 없으며 오직 무조건 수행할 의무밖에 없다"고 대못을 박았다.
그는 "법부문에서 올해 인민경제계획을 법적으로 강력하게 빈틈없이 담보하는 것을 중핵적인 과제로 내세우고 철저히 집행해나갈" 것을 특별히 언급했다. 이에 따라 계획 수행의 걸림돌인 불합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생산과 건설의 효율을 높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부문법'들을 제정 완비하는 것이 중대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당사업에서도 '경제과업'에 집중
한편, 김정은 총비서는 당사업에서 경제과업 수행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면서 3가지 과업을 제시했다(3대 과업은 필자의 분류에 의한 것이다).
첫째, 당 결정서의 작성과 채택 과정에서 '형식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전원회의에서 제시되는 과업 관철을 위한 당결정을 당중앙의 의도와 광범한 군중의 의사, 자기 단위의 현실적 조건에 맞게, 집행담보와 책임한계를 정확히 따질 수 있게 토의 채택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중앙에서 결정서가 채택된 데 이어 각급 단위에서 해당 결정서를 채택해야 하는데 따른 기본자세를 제시한 것이었다.
결정서의 채택 과정에서 특히 '집행담보'와 '책임한계'를 정확히 따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은 결정서가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집행담보와 책임한계는 당 결정의 실행 여부에 대한 상벌제도를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표현이다.
둘째, 당조직들이 올해 경제과업에 대한 당적 지도, 정책적 지도를 실속 있게 진행하는 '방향타'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각급 당조직들에게 경제과업에 대한 지도를 실속 있게 할 것과 그 방향을 제대로 잡아줄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는 "당 책임일군들이 주관과 독단을 부리지 말고 대중을 당 정책 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교양자, 기수로서의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당 간부들이 정치적 교양자, 기수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주관주의적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3월 3~6일에 개최된 제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는 시‧군당 책임비서들에게 당 정책의 방향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올해 경제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려면 내각과 성‧중앙기관 당조직들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국가‧군대‧근로단체 등 모든 기관‧단체들에는 당조직이 존재하며 내각과 성‧중앙기관에도 당연히 당위원회가 존재한다. 이것은 당-국가체제의 특징이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당조직의 역할을 약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하는 방향에서 경제활성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당간부들에게 행정경제간부들을 밀어줄 것과 패배주의‧보신주의 같은 부정적인 현상들을 극복하기 위한 교양과 사상투쟁을 전개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것은 되풀이되어온 과업들이다. 당 간부들이 행정대행현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행정경제간부들을 잘 지원하는 문제는 단순한 사업태도의 문제를 넘어 당사업(사람과의 사업)의 '관점'과 '실력'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패배주의가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의 지속과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해서도 자력갱생의 경제투쟁을 계속해야 하는데 피로감과 패배주의 증후군이 일부 간부들 속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제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에 참가한 책임비서들의 사진에 나타난 표정에서는 그런 모습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한편, 김 총비서는 그 자신이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적인 자력갱생, 계획적인 자력갱생, 과학적인 자력갱생'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국가적인 자력갱생'과 관련해 "올해 계획에 인민경제 중요부문들에서 요구되는 자재들을 우선적으로 보장한다고 되어 있지만 국가적인 보장대책을 세운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쓴 소리를 했다.
그는 경제지도기관들이 자력갱생의 구호를 왜곡하여 자기의 책임을 아래 단위에 미뤄버리는 태만행위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행위는 국영기업소들을 '비법(非法)적인 돈벌이'로 떠미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러한 지적을 보면 그가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구체적으로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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