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에 대한 북한의 대응
북한은 2018년 이래 제재의 영향을 덜 받는 산업‧부문‧품목의 성장에 집중하는 대응책을 택하였다. 경공업에서 원자재‧설비의 국산화에 노력한 것이 대표적인 전략이었다. 제재의 부담이 덜하고 경제개발구와 관련시킬 수 있는 관광산업에 큰 관심을 보였고 건설‧토목을 통한 내수 경기부양, 석탄을 원료로 활용하는 탄소하나화학공업의 발전 등 우회수단에 집중했다.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단기적으로 물가와 환율의 변동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이렇게 한 결과 물가와 환율의 안정세는 지속되었고 이러한 정책 방향은 2021년과 그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북한은 중장기 대책으로 유휴화폐와 외화를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을 통해 흡수하는 것을 중시했으며, 이 대책은 계속 견지해나갈 것이다.
북한 정부가 자력갱생의 원칙 아래 원료‧자재, 설비‧제품의 국산화를 추진하는 것은 내수 진작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국산화는 일반적으로 수입 대체의 기능을 작동시켜 무역적자를 줄이고 산업 생산을 촉진시킨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국산화 정책을 통해 북한산 제품의 시장 점유율 상승, 국산 설비를 통한 설비 현대화, 자동차‧트랙터 등 기계‧장치 생산 등에서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부 분야에서의 성과를 전 방위적으로 확대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북한의 당‧정 고위간부들은 이에 부심하고 있을 것이다.
국산화 정책이 성과를 거둔 것은 중국으로부터의 기계류 수입에 의한 생산기반 확충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북 제재에 의해 자본재 수입 금지가 지속되면 북한의 국산화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자본재를 포함해 국산화의 비중을 100%에 근접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5% 이내의 중요한 설비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부족한 설비도입의 분야 및 시점 등이 경제운용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북한이 국산화 정책의 추진으로 생산력과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은 옳은 정책 방향이지만 전반적인 확대재생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꼭 필요한 부문의 수입규모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부로서는 △제재 대상 이외의 품목 수입을 예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현 수준의 무역적자를 감내하는 것 △제재 대상 이외의 품목에 대한 수입을 감소시켜 무역적자 폭을 줄이는 것 가운데 하나 혹은 그 중간 정도의 대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는 수출입 제한에 따른 악영향을 줄이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우선 의류‧수산부문의 수출 제한을 내수로 전환할 것이다. 석탄‧철광석도 가능한 한 국내 중공업부문에 투입하는 것으로 전환해나갈 것이다.
북한이 수출의 감소와 수입의 증가로 대처할 수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수입을 감소시켜야 하고 이 점에서 볼 때 국산화 정책은 지속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수입을 감소시키지 않으면 외화보유고를 감소시키게 될 터이고, 일정한 외화보유고를 유지하지 못하면 대북 제재의 장기화에 대처하는 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이 5개년계획에서 정비전략‧보강전략을 중시하고 첫해에 그 틀을 잡아나가려고 애쓰는 것에는 수출입 환경이 일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의 버티기 전략과 중국의 선택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의 장기화로 인해 북한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판단될 때가 되면 대북 경제지원에 나서는 다크호스 역을 자처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무역마찰, 홍콩 및 신장 등의 인권문제, 대만문제, 남사군도 분쟁 등으로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경쟁과 견제를 지속하고 중국에 대해 '전략적 인내' 전략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가치동맹'의 기조 위에서 한‧미‧일 동맹구조를 견고히 하고 북한에 대해서 '변형된 전략적 인내'로 나올 개연성이 있다. 미국의 대북‧대중 '전략적 인내'는 말할 것도 없이 북한‧중국 간의 전통적 혈맹관계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촉진시킬 것이다.
이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한 협상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영변 핵시설 폐기의 절차에 들어가면서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으나, 북미협상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실리외교에 능한 중국은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활용하여 동남아국가들(10개국)은 물론이고 한국‧일본‧뉴질랜드‧호주와의 경제협력관계를 확대해 나가려고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포위)하기 위해 미국‧일본‧인도‧호주로 구성된 '비공식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확장에 나설 것이다.
미국과 중국 상호 간의 '공세와 방어' 과정은 한반도에서 '이해관계의 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 그 충돌이 강하면 강할수록 북중관계는 견고해질 것이고, 중국의 대북 제재는 약화될 것이며, 북한은 그 과정에서 '경제적 수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등의 시장을 중심으로 한 미국‧일본‧중국‧대만과의 '드라마틱한 경제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남한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을 유지‧확대할 수 있는 방략(方略)을 찾는 한편,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복잡한 방정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다시 제재 문제로 돌아가서 중국의 입장을 보자. 중국의 경우 중앙정부는 설사 대북 제재를 준수한다고 표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지라도 지방 무역업자들은 '틈새를 이용한 교역'을 유지해왔고 앞으로도 이를 유지할 것이다. 제재의 '구멍'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구멍'이 상상외로 크다면 중국해관의 통계를 기준으로 북중 무역의 통계를 분석한 일부 내용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과 중국의 지방무역업자 외에는 알기가 어렵고, 이를 알려면 한반도를 지나는 군사위성의 상당 부분을 북중 국경에 세팅해야 할 것 같은데 이것은 비용 대비 효과의 면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의 출발점은 북한 지도부의 핵무기 정책을 변화시키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대북 제재는 북한 지도부의 핵무기 정책을 변화시키지는 못한 채 북한 인민들의 경제생활 향상과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핵문제에서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하던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당초에 기대했던 효과를 발휘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채, 혹은 이제 막 대북 제재의 효과를 보려던 참에 북한과 중국의 협력 강화라는 전환적 상황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대북 제재의 경제적 효과가 분명해질수록, 즉 북한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북한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설 것이다. 반면 북한의 5개년계획(2021~25년) 기간에 대북 제재의 효과가 뚜렷하게 발휘되지 않게 되면 앞으로는 그 효과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북한이 북중 경제협력, 과학기술발전에 의거한 자력갱생으로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성공해나갈 경우 미국의 대북 정책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 있다.
북한과 미국,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미국이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대북정책을 미루면 미룰수록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악화될 수 있다. 미국은 대중국 정책조차도 그 확정에 이르기까지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려고 한다는 정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문제의 해결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정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제재 완화가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고, 이 상황에서 미국이 카드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들 가운데 대북 제재를 지속하면 북한경제가 큰 어려움에 처하고 북한이 '백기를 들 것'이라는 낡은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대북정책에서 '변화의 동학'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재의 판을 다시 정돈할 '새로운 카드'를 내놓는 것에 관심이 있지만 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듯하다. 이 상황을 읽고 있는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버틸 수 있고, 지금은 누가 뭐래도 5개년계획의 실행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와중에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몇 가지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 3월 15~18일에 미국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한국을 방문했고 18~19일에는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미국이 예상보다 한발 빠르게 한‧미‧일의 관계 강화에 나섰고 중국과의 관계를 탐색했다.
그러던 차에 북한과 중국은 3월 22일에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주석 간의 '구두친서'를 발표함으로써 양국의 주변정세에 대한 대응이 신속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적대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책동에 대처하여 조중(朝中)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해 나갈 뜻을 밝혔다.
시 주석은 기존의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방향 견지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지역의 평화안정과 발전번영 등을 되풀이하면서 이를 위해 "새롭고 긍정적인 기여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북미협상의 시계가 멈춰있을수록, 남북 정상의 테이블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한반도에서 '중국 역할론'은 부상할 것이다. '중국 변수'가 지금처럼 중요해진 때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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