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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정의' 바닥 드러낸 자칭 '촛불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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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정의' 바닥 드러낸 자칭 '촛불 정부'

[최창렬 칼럼] 투기 자본주의가 부른 신뢰와 정당성의 위기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은 일제 강점기부터 1995년 서울 강남구 소재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까지의 시간의 흔적을 한국 근현대사와의 연관 하에 풀어나간 소설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강남의 형성 과정에 투영된 한국 현대사의 뒤틀린 모순과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왜곡된 부의 축적과 부동산 투기가 강남이라는 지역과 오버 랩되면서 정경유착과 부패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이 강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을 기본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정경유착, 투기를 매개로 한 부패 사슬이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이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LH(대한토지주택공사) 사건은 그동안 응축된 모순의 일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땅과 아파트 등의 부동산 문제는 비단 특정 계층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번 사건이 공공택지개발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에서 일어났고 신도시 관련 정보에 접근 가능한 공공 영역의 종사자나 고위공직자들의 행태가 부각되고 있지만, 민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전방위로 만연한 투기와 편법은 대한민국 성장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응축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정치권은 선거를 의식한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여야가 특검과 국정조사, 전수조사에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퇴행적 한계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와 관련하여 아무 말도 없는 윤석열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를 여야 정치인들만 모르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더 이상 자본주의의 모순 중 하나로 치부되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노력과 희생보다는 정보와 편법을 활용하는 자가 사회의 권력을 차지하는 구조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 정보를 쫓는 수고의 대가가 수익이라는 괴변이 부동산 부자들이 내세우는 정당화의 논리다. 이러한 사변적 측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행각이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1년 내 열심히 벌어도 고작 몇 천만을 버는 사람들, (이보다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아파트와 땅을 얻어서 한 번에 수억 원을 챙긴다면 사회계약에 대한 파기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토지와 주택이 자본 축적의 방편이며 특권층과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경제권력의 아성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적 성격을 논하는 것이 1980년대의 시대착오적 분석틀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부와 관료, 재벌의 3자 동맹으로 맺어진 관료적 권위주의 요소의 특징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특혜와 반칙, 특권과 부정의가 어우러진 한국의 성장은 세계 10대 경제권이라는 찬란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적 요소에 대한 천착과 사회적 대성찰이 수반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될 수 있다.

2016년 가을부터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2017년 3월 초까지의 탄핵 집회와 촛불시민들의 바람은 단순히 국정을 농단한 정권의 붕괴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응집되어 있는 불법과 편법의 일상화, 정치와 경제의 유착구조, 시민의 서열화 등의 총체적 부조리와 모순을 광정하라는 것이었다.

그 기대를 안고 촛불정부라 스스로 칭하는 문재인 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성과를 낸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수사를 한 사람은 정권의 적이 되었고 바로 그래서 민주당은 위기이다.

그럼에도 위기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검찰을 배제하는 것을 정권의 금과옥조로 삼고 검찰개혁 외의 의제는 아스라이 멀어졌다. 이제 국민의힘은 기사회생했다. 게다가 윤석열조차 힘을 보태면 정권 재창출은 소가 웃을 일이 되고 말았다.

부동산 문제는 시민들의 촛불을 소환할 대형 뇌관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양대 정당 체제의 근간을 허물 수 있다. 우리 시민은 적절한 시기에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민족이다. 4·19 혁명이 그랬고, 1980년의 5·18 민주화 혁명과 1987년의 6·10 민주대항쟁이 그랬다.

투기의 문제는 단순한 경제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정치가 이에 대한 해답과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해결의 단초를 열어 갈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상상 이상의 경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해충돌방지법 제정과 '부동산 적폐'라는 신조어를 동원하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화석처럼 굳어진 투기 자본주의를 얼마나 혁파할 수 있을지 시민들은 불신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신뢰와 정당성의 위기에 정권과 정치가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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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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