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국회를 통과한 신공항 특별법에 대한 분노가 뒤늦게 비등하고 있다. 거대한 국책사업에 필수적인 사전 검토의 무력화, 재보궐 선거를 앞둔 얄팍한 정치적 의도, 가덕도 현장까지 찾아가서 자신과 위신과 권한을 남용한 대통령의 언행, 반대 목소리를 묵살하고 찬성 표결을 압박한 원내 절대다수 여당, 그리고 토건사업의 지역발전 논리 앞에서 다시 무력해진 환경정치의 초라한 모습들에 대한 복합적인 분노일 것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도 다음 날 논평을 내어, 이 특별법이 전전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으며,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시급한 재정을 낭비하며,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와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과도 명백히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여권의 기대와는 달리 특별법에 우호적이지 않다. 대략 특별법이 잘된 일이라는 응답이 3분의 1,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이 과반이다. 심지어 부울경 전체로 보아도 여론은 좋지 않아 보인다.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하더라도 모두가 아는 것처럼 가덕도 신공항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역시 특별법 논의 후반에 뒤늦게 부각된 동남권 메가시티와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논의 역시, 특별법의 적절성과 타당성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중요한 숙제를 남긴다. 다만 이 특별법 자체, 그리고 특별법을 추진한 방식은 특히 냉혹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다. 우리가 분노한다고 이런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냐는 물음이다. 장담컨대, 4월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곧 대선 국면이 시작되면 이와 비슷한, 심지어 더욱 무지막지한 토건 공약이 난무할 것이고 기후위기 대응은 주변으로 더 밀려날 것이다. 가덕도만 하더라도, 2030 부산 엑스포에 맞춰서 완공하려면 이 무리한 토건사업의 뒷배가 될 힘 있는 여당 대통령이 필요하고 더 많은 지원과 규제 완화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대구경북, 흑산도, 울릉도 등 공항 입지 논의가 있던 곳들에서는 왜 부산만 특혜를 주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균형발전을 하려면 우리 동네에도 토건 개발 사업을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공약과 실제는 다른 것이 아니냐며 일단 선거 때는 좋은 말을 던져놓자고 할 것이고, 선거가 지나고 나면 뭔가 비슷한 사업이라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게 새만금 사업의 시작이었고 4대강 사업의 시작이었다. 4대강 사업은 MB 개인의 취향과 욕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 열망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모종의 개발 욕구를 자극한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에, 예를 들어 2050년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 때까지 대략 한 세대 동안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조밀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사업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을 바라는 정치인에게 인기가 없는 일들이다. 중복투자가 되든 기후위기를 가중시키든, 자신의 지역구에서 4차선 도로나 다리라도 새로 놓아야 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5년마다 행정부와 공무원이 리부팅되고, 레임덕을 제외하면 사실상 3년씩만 일을 하게 되는 지금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한 세대 동안 수미일관하게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세우고 집행하고 보완할 수 있는 정당과 정치인은 이 제도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지금 신공항 특별법에서 이른바 시민사회 출신 정치인들, 그리고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발언을 했던 대통령과 장관들이 보인 이율배반에 분노하는 게 정당하더라도, 매우 내키지 않지만 이런 제도가 이런 기후위기 배신의 정치를 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기후위기는 극한적인 조건에서 선택을 강요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낳지만, 더 탄탄한 민주주의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초석이다. 또 재난과 위기 속에서 더 좋은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희망과 당위가 공존한다. 지금의 정치 제도와 정치 문화를 완전히 재편해야 한다는 요구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의 요구이며 흐름이다. 영국 멸종저항이 기성의 대의제를 믿지 못하겠다며 '시민의회'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 체제와 선거 제도가 기후위기 대응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이것도 같이 바꾸자고 주장해야 냉정한 현실주의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철인이나 초인이 되기 어려운 정치인들에게 불가능한 기대를 걸거나 기후위기를 배신했다는 비난만을 되풀이하게 되지 않을까?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기 하루 전, 국회에서는 탄소중립이행법안 마련을 위한 입법 공청회가 열렸다. 의원들이 발의한 유사한 기후위기 대응법안을 함께 검토하는 자리였는데, <중앙일보> 강찬수 기자의 진술 의견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는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 계획을 아예 2050년까지의 30년 단위 계획으로 못 박고, 10년 단위와 5년 단위의 계획도 수립하여 전임 정권 5년간의 성적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탄소중립은 정권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에 담당 기구도 지속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서, 5년 단임의 대통령제로 대표되는 권력 구조도 탄소중립의 순조로운 달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헌법 개정을 통해 바꿔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환경전문기자로서 오랜 시간 국회와 청와대를 지켜 본 결과로 나온 제언일 테다. 나는 이 제언이 슬쩍 붙인 뱀꼬리가 아니라 용머리로 느껴진다. 탄소제로의 시간표를 짜고, 에너지믹스의 수치를 잘 만든다 하더라도 그것을 소화해 낼 정치, 그리고 이를 보장할 정치제도 없이 기후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기후위기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는다면, 정치 제도를 바꾸는 개헌운동과 기후운동을 같이 시작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87년 6월 항쟁으로 어렵사리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이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를 민주주의 상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제도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 중임제든 내각책임제(의회중심제)든 기성의 제도들 중 여러 선택지를 꺼내놓을 수 있고,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부응하여 대의제 자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발상도 가능할 것이다. 에콰도르 헌법처럼 자연법의 정신을 포함하는 '생태 개헌'으로 폭넓은 논의를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국민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 지금의 정치권에서는 공감이 없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에 타이밍을 놓쳤다, 시간이 부족하다... 등등 개헌을 하지 못할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라는 불변의 거대한 현실 앞에서 이런 말들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어떤 정치, 어떤 정치 제도, 어떤 헌법이 기후위기를 대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기후위기를 자신의 일로 염려하는 시민들은 탄소예산이 몇 년 남지 않은 앞으로의 몇 차례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출마한 후보 중 덜 나쁜, 최악이 아닌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 그것으로 선택지를 제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개헌을 매개로 정치를 크게 바꾸는 운동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다음 대선 이전에 정치제도 개편과 생태 개헌이 가능하겠느냐고 회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더 나쁜 쟤들이 집권하면 안 돼/큰일 나"와 "이 기회에 우리도 발전/성장하자"라는 선택지 말고, 다른, 우리 모두를 위한 미래를 위한 선택지가 필요하다. 2021년의 현실 정치에서 개헌이 안 되더라도, '기후시민들'의 개헌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더 많은 기후 의제와 더 진지한 기후 정치를 위해서, 2022년 이후를 위해서라도 안 하는 것 보다 한 만큼의 결과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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