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북한 핵발전소 건설 추진 의혹'을 연일 제기하며 공세를 펴고 있다. 그간 비대위를 이끌어오며 추진한 이른바 '김종인 플랜', 즉 중도혁신·확장 전략과는 궤가 다른 행보여서 눈길을 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31일 '대북 원전(핵발전소) 의혹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탈핵) 정책으로 대한민국 원전은 폐쇄하면서 북한에는 원전을 비밀리에 지어주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원전 추진은 그 자체로 경천동지할만한 중대한 사안"이라며 "누구의 지시에 따라 추진된 것인지 즉각 밝혀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엄청난 사안을 일부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은 NPT를 탈퇴해 원전을 지을 수 없고 한미원자력협정에도 어긋나는 발상"이라며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인 핵보유국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컨더리 보이콧 등 엄청난 제재를 감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북한) 비핵화는 실패했다"는 단정적 표현도 동원됐다.
김 위원장은 다만 "북한에 전력을 지원하기 위한 인도적 차원이라 하더라도 국민 공감대 없이 극비리에 추진하는 사유가 무엇인지 밝히라"는 지적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북정상회담 당시 소위 '도보다리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꺼냈다는 발전소 이야기의 진실을 밝혀 달라"며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정권 차원의 보답으로 북한 원전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등 정치적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최근(신년기자회견에서) 원전 수사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스스로 밝힌 만큼, 정부 스스로 적극적인 수사와 감사를 의뢰해야 한다"며 "정부가 밝히지 않는다면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당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기로 했고, 미진하면 국정조사·특검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별도 기자회견을 열었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역시 "북한이 원전을 군사적으로 전용할 가능성이 충분한데 적법절차 없이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면 이적행위"라며 "진실을 은폐하면 국정조사와 특검으로 밝혀야 한다"고 가세하는 등 보수진영 전체가 앞다퉈 공세에 나서고 있다.
北에 몰래 핵발전소 건설? 과연 가능하기나 한가
이번 의혹이 불거진 '계기'는 지난 28일 SBS 방송의 보도였다. 방송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파일 530개의 파일명을 복원해 기재한 검찰 공소장을 입수, 공개했다. 감사원 감사는 월성 핵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감사를 앞두고 심야에 사무실에 출근해 파일을 삭제한 공무원들은 공용전자기록손상 등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이들이 삭제한 파일 가운데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KEDO(1994년 북미 제네바협정 이행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관련 업무경험자 명단',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_원자력', '북한 전력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 '북한 전력산업 현황 및 독일 통합 사례' 등의 이름을 가진 파일이 있었다는 것은 SBS의 보도 취지와는 다른 면에서 논란이 됐다.
일부 언론과 야당 정치인들은 즉각 이를 근거로 '문재인 정권이 북한 지역에 핵발전소를 지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지난 29일에는 김 위원장마저 공식 입장문을 내어 의혹 제기에 가세했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의 주장에서 약한 고리는 3가지다. △북한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과연 그 자체로 "이적행위"라고 단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가능은 한지 △구체적인 사업 추진이 아닌 정부의 '검토' 자체만으로도 논죄의 대상이 되는지다.
첫째, 북한 지역에 핵발전소를 지어주되 핵무기 개발용으로 전용되지 못하게 감시한다는 방안은 북핵 문제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제안된 방안이었다. 1994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이 무기 전용 가능성이 높은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가로 KEDO를 통해 2기의 경수로 방식 핵발전소를 지어주고, 이 발전소가 완공될 때까지 대체 에너지원으로 중유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제네바 합의는 부시 행정부 들어 중유 제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파탄을 맞았다.
또 지난 2019년에는 러시아가 북한에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폐기를 대가로 원자력발전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미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는 주북한 대사관을 통해 이를 공식 부인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보면, 북한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한다는 방안 자체는 '한국 입장에서는 어떤 교환조건을 붙이더라도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예컨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등이 이에 해당)까지는 아니라 할 것이다. 오히려 1994년 사례에서 보듯 교환조건이 무엇이냐에 따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며, 그렇다면 북미 비핵화 협상 타결 등 특정 조건을 전제로 정부가 북한 지역에 핵발전소 건설을 계획·검토하는 것이 무리한 일인 것만도 아니다.
둘째, 만약 비핵화 등 정당한 교환조건 없이 문재인 정부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유리한 조건으로 핵발전소를 지어주려 했다면, 과연 이것은 가능한 일인가? 김 위원장 본인의 주장 안에 답이 있다. "북한은 NPT를 탈퇴해 원전을 지을 수 없고 한미원자력협정에도 어긋나"며 "우리나라가 세컨더리 보이콧 등 엄청난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한국에 반입되는 핵물질과 핵발전 관련 자재(감속재 등)의 경우 모두 반입 단계에서부터 미국의 통제를 받으며, 미국의 동의 없이는 제3국으로 이전할 수조차 없다.
'합리적 보수'라는 평가를 받아온 이상돈 전 국회의원은 이날 SNS에 쓴 글에서 "야당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에서)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건설해주려 했다는 것인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너무 황당하다"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북한에 극비리이건 공개리이건, 무상이건 유상이건 원전을 지어주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유엔 안보리 결의, 미국의 적성국가교역법, EU 차원의 고강도 경제제재 등을 언급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원전을 수출한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하고 "더구나 극비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것도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인공위성을 피해서 어디에서 공사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 전 의원은 "만일 정말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이런 구상을 했다면 기본상식이 안 되는 발상을 했다는 이야기"라며 "이것은 이적행위도 될 수 없는, 애당초 실현이 불가능한 '황당한 공상'"이라고까지 했다. 형법에 비유하자면 미수범이 아닌 불능범이란 이야기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조건과는 무관하게, '검토'가 잘못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물론 공무원이 감사원 감사를 피하기 위해 업무용 파일을 삭제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지만, 문제라면 '삭제'이지 '작성'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교환조건이 붙더라도 한국 정부·국민 입장에서는 결코 인정할 수 없을 정책, 즉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일본의 식민지배 정당화' 등도 담당 부처 공무원이 '검토'는 할 수 있다. 그 부정적 효과를 추산하고 반대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라든지,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관련 주장이 제기돼 기존 입장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을 때, 정기적으로 하는 정책백서 작성 등 계기에 기존 정책방향의 이론적 근거를 자문자답을 통해 재확립할 필요가 있을 때 등이라면 말이다.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정책을 '실행'하는 것과, 국민적 동의를 논하기 이전 단계에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정책을 검토하는 것 역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30일자 <중앙일보>는 "당시는 각 부처에 기업까지, 남북 경협과 관련된 사안 발굴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제재나 비확산같은 현실적 제약은 아예 제쳐두고 북한이 호응할 만한 아이디어를 찾는 데 더 집중하는 분위기였다"는 한 관련 인사의 발언을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정치평론가 김수민 씨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 이상 북한 원전 건설은 불가능하다. 검토해서 제안까지 했더라도 이는 '북한 너희가 결심을 해주면 이런 게 가능하지(라는 협상카드 성격의 가정적 논의)'를 초과할 수 없다"면서 "한국에 핵발전이 도입된 것도 미국에서 핵발전이 사양산업이 되면서였다. 남한은 원전 밀집국가고 북한은 원전을 간절히 원하지만 하나도 없는 개발도상국이다. 한 쪽에선 생기고 다른 쪽에선 줄어드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흐름"이라고 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의 차원에서 이 사안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김 위원장 등 야당의 공세를 '선거 때문'으로 치부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29일 강민석 대변인을 통해 김 위원장의 주장을 "터무니없다", "혹세무민"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선거철마다 피어오르는 색깔론"이라며 "재보선을 앞두고 흔들리는 지지율에 현실 판단력을 상실한 제1야당"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의문은 남는다. 이번 의혹 공세는, 김 위원장이 그간 선거를 겨냥해 펴온 중도확장 전략과는 방향성이 다르다는 점에서다. 과연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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