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농민과 엔지니어링
이병한 : (.....계속) 마이셀프로젝트 한 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나라와 온 생명 전체를 생각해서도 하시는 일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꾸려나가시려면 어려움 또한 적지 않으리라 예상되는데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드실까요? 혹은 어떤 식의 도움이 가장 필요하실 지요? 마침 한국 정부가 K-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뉴딜을 꼽고 있기도 합니다만.
사성진 : 과찬이십니다. 가야할 길이 아직 멉니다. 역시 자금 문제이죠. 저희의 사업 아이템을 들으시면 긍정적인 반응이 많긴 하거든요. 돈 많이 벌리겠다. 혹은 돈은 조금 덜 벌리더라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고 평가해 주시죠. 그런데 학자가 아닌 이상, 비전만 훌륭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시장에 진입해야 하고, 상품으로서 성공하는 것이 관건이죠. 그리고 시장 진출 이전에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과제가 있기에 투자금은 항상 부족한 형편입니다. 통장 잔고가 비어갈수록 경영자로서 초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 3월에 창업해서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겨왔는데, 특히 10월 무렵 약속된 투자가 철회되었을 때는 정말 큰 위기감을 느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자금 못지않게 우리 회사 내부의 문제도 고민하게 됩니다. 투자금이 유입되면 엔지니어 고용을 늘릴 수 있고 그러면 상품 개발도 더 빨라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겠지만, 과연 내부적으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거액이 투자되었을 때 조직 운영이 원활할 것인가의 숙제도 있죠.
이 : 문외한이라서 그럴까요. 그린뉴딜 등등 그린테크로 돈이 돌면서 굉장히 주목받으실 것 같은데요? 그린뉴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 : 정부에서 발표한 그린뉴딜 사업과 2050년 넷제로 선언은 저희 사업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정부 정책은 그린 리모델링,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그린에너지 사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린 리모델링 관련 부분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미 10여 년 전 MB 정부에서 '녹색성장'으로 포장되어 제안된 내용들이 다수라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더라고요. 그린 뉴딜과 넷제로 선언에서 핵심은 온실가스 감축이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를 기존 산업 시스템 안에서 해결하려다보니 탄소배출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고려되어 있지가 않습니다. 원가 절감을 중시하는 기존 산업모델로는 혁신적인 절감책을 만들어 내기 어렵거든요.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파괴성에 비하여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야 대체산업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시고 육성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마이셀의 균사체 기반 가죽은 기왕의 천연가죽 산업에 비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1%정도 밖에 되지 않거든요. 또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목질 기반의 균사 복합재로 벽장재용 타일을 대체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 그린 리모델링 부문에도 시너지를 낼 수 있겠죠.
이 : 기존 가죽산업의 1%까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니, ‘파괴적 혁신’이 아닐 수 없군요.
사 : 그린 및 탄소 관련 정책에서 왜 농업이 빠졌을까 추측해보면, 한국의 농업규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산업의 사이즈 자체가 작기 때문에 탄소 절감에 대한 기여도도 작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접근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쉽습니다.
먼저 기후위기로 농업 생산 및 식품 안전성/접근성에 대한 우려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2년부터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ity Index-GFSI)'를 발표하고 있는데요. 정작 농경지도 별로 없는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1위거든요. 반면에 식량자급률이 낮은 한국은 매우 위험한 국가군에 속해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기존의 농업에 대한 시혜성 지원보다는 미래농업 R&D에 대한 공공부문의 과감한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경제성과 관련된 부분인데요. '스마트 팜' 관련 농업-IT 융합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어요. 농업 기술에 대한 도전적인 투자로 탄소 배출 감소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성과도 낼 수 있는 것이죠. 기술 표준화를 빨리 이루어내면 해외 수출까지 할 수 있는 그린테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 스스로를 농민이라고도 생각하시나요?
사 : 기존 버섯농업 기술 혹은 발효기술을 이용해 식품 원재료와 가죽 원재료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큰 틀에서 보자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농민이죠.
이 : 미래 농업을 '6차 산업'이라고도 하던데요. 미래형 신농민이시군요?
사 :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습니다. 기존의 산업 분류로는 더 이상 농업이나 바이오산업을 정의하기 어려워요. 제가 좋아하는 수퍼빈이라는 회사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회사이지만, 동시에 인공지능 및 물류 회사이기도 한 것처럼요.
요즘 '부캐'가 유행이잖아요? 저 또한 흙을 만지며 텃밭을 가꾸는 일을 직접 하고 있기에 전통적인 농업인에 가깝죠. 기술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연농과 생태공동체에도 관심이 크고요. 실은 올해 제 가장 큰 고민도 회사 운영과는 별개로 저희 집 500평의 텃밭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예요.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 기후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거든요. 누구에게 무엇을 길러서 선물할까를 생각하며 텃밭을 가꾸는데, 작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깨 농사가 잘 안되었어요. 최근에는 토양 미생물 공부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제 처와 세 딸들과 농생태학을 공부해서 파머스 마켓이나 생태정원처럼 의미 있는 실험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해도 좋을 것 같고요.
저는 마이셀이 정말 잘 되면, 연구소도 산에다 짓고 직원들 집도 생태건축으로 만들어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곧 주민이고, 기업이 곧 공동체가 되는. 회사의 지향과 구성원의 삶의 지향이 최대한 합치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보고 싶어요.
이 : 마이셀프로젝트도 농업 부분 지원 수혜가 가능한가요?
사 : 정부에서 농업에 지원하는 자금이 꽤나 많은데요. 저희 사업은 전통적인 농업으로 분류하기 어려워서 혜택을 받기가 애매합니다. 마이셀이 전통적인 농산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존의 산업분류표로는 저희 사업을 정확히 정의하기도 어려운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점의 전면적 전환과 정책의 재설계 등 공적인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 : 스마트팜도 그런가요?
사 : 스마트팜은 생산물이 농산물인데다가 농업의 틀 안에서 기술을 고도화한 것이라 농업으로 분류됩니다. 농민 입장에서는 애그리테크를 지원하는 것이 용납 안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기술 수혜를 농민과도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공학과의 접목을 수용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점점 융복합 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도 많아질 것으로 알고 있고요. 다만 농업 지원이 한두 가지 곡물에 바탕한 식량자급률로만 고민되고 있는 지점은 안타깝죠. 저희와 같은 농업과 공업이 결합된 미래생명산업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지원하고 투자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이 : 산업의 진화 속도에 견주어 제도 진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로군요. 아쉽습니다. 바이오산업은 한창 각광받고 있는 영역이지 않나요?
사 : 바이오산업은 레드바이오라고도 하는 의료나 제약 쪽에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블루바이오는 청정에너지 쪽인데 정부 지원이나 투자가 제법 일어나고 있는 부분이고요. 농업 부분과 관련된 그린 바이오 쪽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죠. 그린 바이오의 핵심인 미래농업이 활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고 있는 균사체 배양 농업은 청정에너지 산업과 비슷하거든요. 석탄과 석유 채굴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가는 것처럼, 동물의 살에서 적출해왔던 단백질을 기술을 통해 대체해 가는 것이니까요. 궁극적으로는 생태농업과 연결될 수 있는 기술적 진화에도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 : 농민이자 엔지니어, 농업과 공업을 융합시켜 기왕의 생태주의를 넘어서 생명산업을 일구어가는 선구자라고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2. 로컬의 진화 : 제로마이프로젝트
이 : 올해는 "인디펜턴트 테이블"이 출시되겠죠? 마케팅 전략도 궁금합니다. 매우 뛰어난 본부장을 영입하신 걸로 압니다. 스페인 축구 4부 구단을 인수해서 3부로 승격시켜 스포츠업계에서는 전설적인 경력을 가진 분이죠. 아시아인 구단주는 그 분이 스페인 최초였던 걸로 알아요. 처음부터 글로벌 마켓을 겨냥한 것이었을까요?
사 : 박영곤 본부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분을 제외하면 회사 구성원 전원이 모두 엔지니어이기 때문이죠. 공장과 시장을 연결하는 커넥터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같은 글로벌 시티가 대체육 시장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국내 시장 규모가 크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죠.
다만 저희가 정말로 중시하는 지점은 글로벌 밸류 체인을 만드는 것보다 로컬에 집중하는 것이에요. 코로나 팬데믹을 통하여 더 이상은 예전처럼 수요 예측을 기반으로 한 대량생산 체제가 안정적인 구조가 될 수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30년의 세계화가 지고 지역화로 선회할 것이라는 전망이지요. 공항과 항만이 닫히면서 세계 곳곳의 농장과 공장에서 생산되어 전 지구적으로 유통되던 기왕의 식품 공급 체제가 한순간에 붕괴될 수 있음을 체감한 것입니다. 자연스레 로컬 중심의 생산과 소비가 가지는 회복탄력성이 한층 주목받고 있고요. 농업의 생산과 유통과 공급이라는 가치사슬이 어느 정도까지 지역화 될 수 있을지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이 : 구체적인 복안도 가지고 계시는지요?
사 : "제로마이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원재료 생산부터 가공과 유통과 소비까지를 한 곳에서 모두 실현하는 공간을 만들어보는 실험입니다. 기존의 축산업을 보면 농장 따로, 정육점 따로, 고깃집 따로 잖아요. 호주산 소고기, 아르헨티나산 돼지고기 등 그 공간적 거리만큼이나 탄소발자국은 늘어나는 것이고요. 반면에 균사체 대체육은 한 장소에서 배양도 하고 조리도 해서 소비자에게 최종 음식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양양에 가면 커피 팩토리가 있잖아요? 커피가 생산되는 과정 자체를 노출하면서 카페를 운영하는데요. 비슷한 컨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버섯고기 팩토리이자 레스토랑인 셈이죠. 발효기들에서 균사체를 키워 대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그 균사체 고기로 요리를 해서 직접 서빙도 하고 배달도 하죠. 또 배양 부산물 종류에 따라 목질 패널, 화장품 원료, 식품 원료들을 부가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니까, 지역에서 다양한 산업생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사업이에요.
이 : 획기적인데요? 춘천에 가면 스퀴즈 브루어리라는 맥주 펍이 있습니다. 양조장과 호프를 결합시킨 곳이죠. 거기서도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눈으로 볼 수가 있어요. 춘천을 보통 '봄의 도시'라고 하는데, '천' 자가 새겨진 것처럼 물의 도시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 풍부하고 깨끗한 물로 로컬의 고유한 맥주에 "춘천 IPA", "소양강 에일" 등으로 브랜딩하여 판매하고 있죠. 이제는 로컬 기반의 대체육 공장 겸 레스토랑을 만든다 하니, 참신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린뉴딜에 로컬뉴딜까지 결합하는 K-뉴딜의 모델 비즈니스 같네요.
사 : 각 지역마다 맥주 양조장이 있으면 수제 맥주로 특화될 수 있잖아요? 양조장이라는 게 세포 배양이 일어나는 바이오 리액터이죠. 이제 거기서 맥주만이 아니라 고기도 배양하고 가죽도 키워내는 것입니다. 식물성 가죽으로 인테리어를 한 '그린그린'한 레스토랑에서 식물성 고기로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죠. 상상력을 조금 더 발동시켜보면 식물공장과도 결합시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균사체 고기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미생물이 미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는 하거든요. 그것까지도 잡아먹는 탄소중립 공간, 조금 더 나아가면 탄소를 절감시키는 탄소 네거티브 공간으로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 스퀴즈 브루어리에 춘천시의 지원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준비하시는 "제로마이프로젝트" 또한 지자체와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실험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침 여주시장도 드물게 환경운동을 하셨던 걸로 아는데요?
사 : 네, 그렇습니다. 고향도 여기 강천 출신이세요. 제가 살고 있는 이 주변이 다 산이잖아요? 산림자원, 바이오매스를 통한 대체단백질 생산에도 관심이 크거든요. 강천이 산과 강 등 워낙 자연환경이 좋고 해서 새로운 마을의 전형을 잘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기왕의 농업이나 임업만 고수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유입되기는 힘들 것이고요. 제로마이프로젝트 같은 실험이 여기서 진행된다면 분위가가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주역까지만 연결되던 지하철이 강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도 해요. 그럴수록 더더욱 진화한 로컬의 미래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죠. 순환자원을 통한 환경마을이나 6차 산업 등으로 테마를 잘 잡으면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 교육적 효과도 클 것 같습니다.
사 : 맞습니다. 제가 제로마이프로젝트의 사회적 가치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그것이에요. 로컬비즈니스이자 미래형 교육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미생물로 식물성 고기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학교 아닌 학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생산과 소비 과정을 유튜브 라이브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등으로 온라인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요. 제로마이프로젝트를 미래 산업이자 미래교육의 플랫폼으로 전국 곳곳에 깔아보고 싶습니다.
이 : 근사한 비전입니다. 꼭 실현될 수 있기를 저도 염원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유익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3.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
혀끝에 뒷맛이 남아 있었다. 물컹한 식감도 되새김질 해보았다. 솔직히 고무처럼 질기지도 않았지만, 고기처럼 씹는 맛이 썩 빼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세 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빠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온 버섯고기를 먹기는 먹지만, 여전히 생고기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멋쩍게 웃었고, 나도 씩 웃었다.
혓바닥의 돌기에 남아 있는 감각에 집중하다가 문득 송곳니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분명 고기를 먹은 셈인데 어금니의 저작(咀嚼) 기능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입 안의 송곳니는 인류의 진화사를 깊이 품고 있다. 고기를 씹어 먹기 시작했던 그 태초의 출발을 내밀하게 감추고 있는 뼈이다. 우리의 뼈로서 남들의 살을 뜯어먹은 것이니 육식은 곧 다른 종에 대한 인류 우월감의 근원이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육식은 늘 불과 힘과 남성성등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즉 육식이 우리를 인간으로, 지구의 지배적인 종으로 만들어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고로 고기를 먹는 행위는 인류가 먹이사슬의 꼭대기,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의례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고기를 불에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에너지로 커다란 두뇌를 가지게 되었다. 브레인의 퍼포먼스가 여타 종을 압도하며 생각하는 존재로 도약한 것이다. 고로 미래의 맛, 육식의 미래는 과학과 공학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역사학적, 인류학적 문제이다. 혹은 인간이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미래학적, 철학적 과제이다.
삐딱하게 보자면 식물성 대체 단백질의 보급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비관적인 관점에 기초해 있다. 식습관을 바꾸어낼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삼시세끼 채식을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적으로 극복해 낼 수도 있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밥상머리 교육이 이미 틀어진 고로 공학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고기를 탐하는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는 어려운 길보다는 대안적인 인공고기를 제공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힘들여 의지를 발동하여 행동을 바꾸어낼 필요조차 없어진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똑똑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방법을 찾아내줄 테니까. 미래에도 우리는 고기를 계속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자주 더 많이 먹어도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명공학(Bio Engineering)에 지구공학(Geo Engineering)도 합세한다. 생태주의자들로서는 못마땅하기 그지없을 과잉 공학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걱정이다. 20세기 초에도 인간은 조직적으로 동물의 품종을 개량하기 시작했다. 더 맛있는 고기를 더 많이 더 빨리 만들어내기 위하여 자연선택을 거스른 인간선택, 인공개입이 난무했다. 동물을 향한 우생학의 발전은 곧장 부메랑이 되어 인간들로 되돌아와 인종주의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조직적으로 동물의 살을 배양해내겠다는 세포농업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마이셀프로젝트의 도전을 응원하는 쪽이다. 다시금 인간이라는 모순적 존재의 진화사에 바탕해 추론해보자면 본인의 건강과 동물의 보호와 지구의 환경을 위해서 식단을 바꿀 사람의 비중이 절반에도 이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30년 후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3초의 미각적 쾌락에 기우는 것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식탁에 앉아서 미래를 논하고 지구를 생각하는 일은 어쩐지 '비인간적'이다. 과연 학습과 습성으로 본능과 본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사람이 먼저 바뀌기를 기다리노라면 지난 30년의 반복, 돌림노래가 되지 않을까? 더 이상 그렇게 한가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10년이야말로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인 고로, 우리는 정말로 사생결단 사활적으로 임해야 한다. 온 마음 온 몸을 다하여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도 한 가지 방법에만 의탁해서는 리스크가 너무 큰 것이다. 잡다한 대안을 골고루 준비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사람들에게 고기를 주되, 다른 방식으로 생산하는 쪽이 첩경이 될 수도 있겠다. 새로움은 장착하고 해로움은 제거한 '미래의 맛'을 제공하고 '미래의 멋'을 선사하는 것이다.
과연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이다. 세상 모든 일이 밥그릇 하나에 모두 담겨 있다. 인류의 과거사가 밥 한 공기에 담겨 있고, 인류의 미래사가 밥 한 그릇에 달려 있다. 육식과 채식 사이, 생태와 공학 사이, 농업과 공업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 멸종과 회생 사이, 21세기 인류의 숙제가 죄다 밥상차림 하나에 걸려 있는 것이다.
4. 스토리와 히스토리
'만사지식일완'은 동학쟁이 선조들이 즐겨 쓰던 말이다. 밥이 곧 하늘이라 하였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 거라 하였고, 하늘로 하늘을 먹자고도 하였다. 사람이 하늘이다(人乃天), 만인이 하늘이라 이르셨을 뿐 아니라 만물과 만사도 하늘(事事天 物物天)이라고도 하셨다. 공교롭게도 여주는 동학과도 연이 깊은 땅이다.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묘소가 자리하는 곳이다. 하늘과 맞닿는 금사면 주록리 터 좋은 땅에 묻혀 있다. 나는 이미 두 차례 방문해 보았다. 헌데 여주는 해월만 묻혀있는 곳이 아니다. 세종도 모셔져 있다. 아름드리 세종대왕릉이 아리땁게 꾸며져 있다. 참으로 범상치 않은 곳이다. 나는 한국문명사에 두 번의 빅뱅, 두 차례의 개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째가 한글창제, 문자개벽이요. 둘째가 한글로 지은 독자적인 경전(<용담유사>) 창작, 사상개벽이다. 한글과 동학이 있었기에 한국은 중국의 아류가 아니라 한국이 될 수 있었다.
문자개벽과 사상개벽 다음에는 문명개벽이라 생각한다. 미래문명, 신문명은 농업문명으로의 회귀가 아닐 것이며, 산업문명의 지속은 더더욱 아니 될 것이다. 농업과 공업의 공진화, 오래된 에코와 새로운 바이오의 공진화, 생명과 문명의 공진화로 말미암은 생명문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문명으로 진화하는 길에 사성진 대표 같은 이는 보물이고 보배이다. 야심만만한 사업가라기보다는 절박하고 절실한 아비로 느껴졌다. 2030년의 포부를 물었더니, 살아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본인도 건강하고, 가족도 건강하고, 이 지구도 건강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만큼 임박한 기후재앙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애당초 창업 또한 희망보다는 두려움에서 출발한 것이란다. 재깍재깍 대멸종의 초침이 멈춤 없이 달리고 있으며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빨리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시스템의 변화는 너무나 느리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대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질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폭풍전야, 모순이 쌓이고 쌓여 폭발 직전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또한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근대문명이 촉발한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대폭발하면 불확실성 또한 극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래희망은 대기업 총수가 아니라 마을 이장이란다. 산골에 들어와 살다보니 동네 이장이 마을 공동체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이장의 자질 여하에 따라 마을에 환경유해시설이 대거 들어올 수도 있고, 자연을 살리는 쪽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여주에 대한 애정도 물씬했다. 처는 초등학교 단짝 친구에서 평생가약 부부로 연을 맺은 사람이다. 입시 열풍 바람을 타고 8학군 강남으로 이사 갔다가, 가정을 일구고 고향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각박한 뜨내기들의 경쟁으로 삭막한 서울에서 탈출하여 토박이 정서가 가득한 여주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린뉴딜과 로컬뉴딜의 융합, 장래의 강촌 이장으로 적임자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사성진 대표는 굳건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뻗어 자라나는 나무를 닮은 사람이었다. 과거의 틀로 보자면 사업가이다. 경영자라고도 할 수 있고, 자본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업문명시대의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자본과 노동의 구분은 이미 낡고 닳은 구닥다리 패러다임이다. 그는 그 어떤 노동운동가보다 진지하게 체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었고, 그 어떤 생태주의자보다 환경을 염려하고 있었으며, 그 어떤 보수주의자보다 더 땅과 흙의 가치를 옹호하고 가족과 지역의 오래된 유산을 튼튼히 붙들어 매고 있었다. 탁자에 펼쳐져 있던 <뉴타입의 시대>라는 책과 2층 하얀 칠판에 쓰여져 있던 <팬데믹 시기 우리 가족 생활 수칙>이 그의 캐릭터와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웅변하고 있다. 부디 훈훈한 창업스토리에 성공스토리까지 보태어 애그리테크, 그린테크, 어스테크(Earth Tech)의 선구자, 히스토리가 되기를 바란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여주역까지 전기차를 태워주셨다. 기차에서 곰곰 복기하노라니 환경재단에서 발표했던 PT의 한 동영상이 떠올랐다. 꼭 이루어내고 싶은 일이라며 국내 고유의 고등균류를 활용해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을 분해하여 다양한 산업소재로 바꾸어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국내에서 발견된 '뮤코청양엔시스'라는 토종 곰팡이가 폴리카보네이트를 분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죽은 나무들이 쌓여서 생명이 번창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나무 잔해를 분해하여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토양으로 바꾸어낸 핵심 주역이 바로 곰팡이와 버섯균이었다. 이제는 그 균사체를 활용하여 지구를 가득 덮어가고 있는 플라스틱을 분해해 내고 싶다는 것이다. 다시 생명의 기운이 생동하는 푸른 지구를 되살리고 되돌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함에도 근본적으로는 플라스틱 자체를 줄여야 할 것이다. 여주 방문의 유일한 오점은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에서 사용한 일회용 종이컵이었다. 전원주택까지 걸어가는 1시간여 동안 찜찜함이 통 가시지가 않았다. 실제로 코로나19 탓에 도처에서 일회용품 사용이 도리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그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두발 벗고 나선 스타트업이 있다. 트래쉬버스터즈의 곽재원 대표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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