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투기자본 매각 반대와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했다. 월요일을 빼고 매일 걸어서 청와대까지 행진 중이다. 2월 7일을 도착일로 하는 행진은 애초 김 지도위원을 포함해 3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50~60명으로 늘어났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지난달 22일부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5명이 단식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행진을 하고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실을 예정이다.
김진숙 복직은 정부의 책임
결자해지. 일을 만든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노동자 김진숙의 해고는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결과이다. 그의 복직은 곧 과거 정권이 저지른 국가폭력을 바로 잡는 일임이 명확해졌다. 그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원인 역시 명확해졌다. 해고의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 책임자들도 역시 김진숙의 복직문제는 노사간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전두환 정권이 저질렀던 국가폭력을 용인하는 일이고 불의에 동참하는 일이다.
김진숙은 전두환 정권에서 자행한 노동 탄압의 희생자이다. 1986년 전두환 정권 시절 공안당국은 노조 대의원으로서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온갖 폭행과 고문을 자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여 집에 연금하였다. 그런 경찰 조사에 동조해 회사는 부당해고하고, 전두환 군부정권 하의 검찰과 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듯 그의 해고는 전두환 정권의 노동탄압 정책의 결과임이 분명해졌다. 김진숙의 해고는 정부가 직접 자행했던 국가 폭력의 결과이다.
그의 해고가 부당했음은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인정된 바 있다. 2009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김진숙의 해고를 국가의 반노동정책에 항의하였던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하였으며 그의 복직을 권고하였다. 작년 2020년에도 재복직권고안을 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복직권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 기관에서 부당해고로 인정하고 복직을 권고하였음에도 정부조차 그 권고를 묵살하였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나 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복직권고를 실행에 옮기려는 조치가 없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달라졌는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실제 조치가 없다. 지금도 그의 복직을 노사간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긴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외치는 적폐 청산은 권력기관들 사이에서 권력을 재분배하는 문제만 아니다. 권력기관을 개혁하면 적폐가 청산되는가? 과거 정권시절 권력기관에 의해 피해를 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게 실제적 회복 조치가 이뤄질 때 비로소 적폐가 청산되는 것이다.
국가의 폭력을 바로 잡는 일에는 정년이 없어야 한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어도 지금도 일제의 만행에 대해 현재의 일본 정부에게 책임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가 개개인들에게 저지른 폭력을 바로 잡는 일에는 시한이 없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과거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폭력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그 책임이다. 민주화와 적폐 청산은 구호와 주장에 담겨 있지 않다. 실제의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김진숙의 복직은 국가 폭력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과거 정권의 잘못을 사과하는 것은 오히려 용기있는 일이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정권이 저지른 국가 폭력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있는 민주정부이기를 기대한다.
김진숙의 복직은 한진중공업의 책임
김진숙의 해고는 한진중공업(1986년 당시 대한조선공사)이 자행하였다. 그럼에도 한진중공업은 김진숙 노동자에게 그동안의 급여와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은 배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자신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 기관이 결정한 복직권고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김진숙을 해고한 명분은 무단결근이었다. 당시 회사는 그가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김진숙에게 부당한 인사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회사의 부당 인사에 항의하며 출근투쟁을 하는 김진숙을 폭력으로 제압하였다. 그의 해고는 경찰과 회사의 합작품이었다.
한진중공업은 과거에 저질렀던 김진숙에 대한 해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김진숙의 복직은 35년 전에 저질렀던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탄압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다. 그를 복직시키는 것은 시혜도 아니며 배임도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다. 35년 동안 그의 복직을 거부하고 배제해왔던 오만함을 사과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김진숙의 복직은 어용화된 노동조합을 바로 잡는 일
김진숙은 당시 어용노동조합의 잘못을 지적하고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촉구하였다. 노동자들의 식사와 화장실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당시 어용화된 노조나 회사, 정부 당국은 단순한 요구조차 폭력으로 탄압하며 해고하는데 서로 협력하였다. 비인간적인 근로 조건의 개선을 요구한 노동자를 탄압하는데 협력했던 노조의 부끄러운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다.
과거 청산은 멀리 있지 않다. 35년 동안 해고자로 살아온 김진숙을 복직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 곧 과거 청산이다. 35년 전 국가와 회사, 노동조합이 합작하여 저질렀던 잘못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35년 동안 그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우리 모두의 함께 지혜를 모을 수 있다.
그의 복직과 명예회복 운동은 김진숙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과거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의 희생자들을 치유하는 출발이다. 특히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했던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토대이다. 그는 해고될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해고 이후에도 언제나 동료 노동자들의 존엄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때로는 정문에서 짓밟히기도 했고 때로는 크레인에 올라가 먼저 떠난 동료들의 고통을 온 몸으로 짊어지기도 했다. 그의 투쟁과 헌신은 해고의 불안과 고통 속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지켜낸 힘이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그렇게 지켜졌다. 그의 헌신과 노고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 우리 종교인들이 한 노동자의 복직 문제에 깊이 관심하고 연대하는 것은 그가 노동자들의 존엄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너희 가운데 가장 낮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그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온 몸으로 실천해 왔다. 우리는 그를 지지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사랑의 빚진 자들이 그를 사랑하고 그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진숙이 온몸으로 지켜온 노동자 존중이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지켜줄 것이다. 김진숙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해 투쟁은 곧 우리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과와 책임, 용단을 기대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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