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여야는 후보자의 도덕성·인성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박 후보자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일부 논란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 답변을 피하면서 최소한의 대응만 했으나, 엄호에 나선 여당 의원들은 의혹을 제기한 야당 의원이나 제보자를 공격하기도 했다.
고시생 폭행 논란에 민주당 신동근 "고시생이 손가락 잘린 노동자처럼 약자냐"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은 박 후보자의 '사시 존치 요구 시위대 폭행' 의혹을 정조준했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힘없는 고시생들을 폭행하고 협박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박 후보자가 가진 약자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자는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도 (사시 존치 요구 단체의) 대표라는 분이 저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해서 사건이 계류 중"이라며 직접적 입장 표명을 피하면서도 시위대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당산동에 있는 제 숙소, 오피스텔에 저보다 훨씬 덩치가 큰 청년들 대여섯 명이 밤 10시에 나타났다"며 "제가 없는 대전 집 아파트에, 밤에 제 아내 혼자 있는데 초인종을 눌러서 대여섯 명의 사시존치 주장하는 분들이 나타났고, 고등학교 2학년짜리 둘째아이 등교길에도 피켓팅을 하면서 나타났다"고 했다.
박 후보자는 "원점(사시 부활)으로 회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제가 장관으로 일할 수 있다면 사시 존치를 바라는 많은 분들의 애타는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임시적으로라도 뭔가 구제 조치가 가능한지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 후보자 엄호에 나섰다. 송기헌 의원은 "야당에서 지금 증인으로 요청하는 분이 (사시 존치 주장 단체의) 이아무개 대표인데 이 분이 고발한 사건이 총 58건이다. 박 후보자도 지명된 후 3번이다 고발됐다"고 말했다.
같은 당 신동근 의원은 "이 분들의 절박성, 5년 10년 준비하다가 갑자기 없어지니까 거기에 대한 절박성이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분들이 그러나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비정규직으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손가락 잘려가면서 일하는 노동자도 아니고 말이죠"라고 하기도 했다.
이 발언 때문에 논란이 일자 신 의원은 오후 발언 순서에서 "마이크가 꺼지면서 폄하처럼 (잘못 전달)됐다"고 했으나, 실제로 이 발언은 그의 오전 발언시간 마지막 부분에 나온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작 부분에 있었다. 이 논란성 발언 뒤에는 법무부 노조 관련, 인사 관련,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 관련 질의가 마이크가 켜진 상태에서 길게 이어졌다.
금융범죄 용의자와 야유회 등 친분 의혹엔…백혜련 "정치인 애환"
야당은 박 후보자가 지난 2018년 8월, 다단계 불법투자 등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투지업체 대표 김모 씨를 전남 담양의 야유회 행사에서 만난 데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김 씨가 당초 계획에 없는 행사인데 '이 행사는 박 후보자 중심의 행사'라고 하면서 '올 수 있는 고객·투자자들이 다 올 수 있게 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며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명 정치인이 함께하는 것을 보니 (투자) 보증수표나 다름없다고 보고 (투자자들이) 대거 투자했다"고 했다.
박 후보자는 "야유회에서 김 씨를 처음 만났고 그 후로 만나거나 연락한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김 의원은 "참석자들은 두 사람이 매우 친밀해 보였고 김 씨가 '갑'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진술했다. 노래 부르라 하면 부르고, 춤추라 하면 계곡물에 들어가 춤추는 것이 보기 민망했다고 한다. 이래도 처음 본 사람이냐"고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박 후보자는 김 씨는 친문 성향 정치단체 '못난 소나무'의 공동대표여서 당시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자신은 낙선인사차 해당 행사에 참석한 것이라며 "당 대표 출마(하고 예비경산 탈락)한 이후, 전국에 낙선인사를 다니는데 김 씨가 아닌 그 단체 다른 대표 한 분이 연락이 와서 다녀가라 해서 간 것이다. 중앙지검에서 철저히 수사하고 저에 대해서도 아무 장애 없이 수사하기 바란다"고 했다.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춤추라면 춤추고 노래부르라면 불렀다고 김 씨가 '갑'이라고 하는데, 정치인이 그렇다"며 "지역구 의원들은 다 안다. 선거 시즌에는 뭘 시켜도 해야 하고 거절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치인의 애환이 느껴졌다"고 박 후보자를 감쌌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그러나 "한 표라도 얻기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의 비애'에는 공감하지만, 김 씨에게 한 것의 100분의 1만이라도 사시 존치 (주장) 고시생들에게 했으면 어땠을까? 돈 있고 표 있는 강자한테는 저렿게 약하고, 힘 없고 '백' 없는 고시생들에게는 강한 것인지 씁쓸하다"고 꼬집었다.
패스트트랙 폭행 의혹엔 침묵…'초등학교 아들 세대주' 논란엔 "위장전입 아니다"
박 후보자는 2019년 패스트트랙 사태 당시 자신이 야당 당직자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데 대해서는 "이 사건은 수사를 거쳐 남부지법에 계류 중인 사건"이라며 재판 중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과거 고등학생 시절 자신이 청소년 폭행 사건에 연루됐던 일에 대해서 민주당 최기상 의원이 "청소년기에 방황을 하셨다고 들었다"고 우회 지적하자 박 후보자는 "대단한 정의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친구가 일방적 맞은 것을 참지 못해서 그랬는데 옳지 못했다"며 "그 때는 제 나름의 그런 환경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2년 정치를 시작하면서 자신과 배우자가 대전으로 주소를 옮기는 바람에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서울 강남 대치동 아파트 세대주가 됐던 일에 대해서는 "선거를 위해서 (본인·배우자가) 위장전입할 필요가 없었다"며 "아들은 초등학교 졸업을 40일 남겨 놓은 상황에서 전세 기간이 남아있어 불가피하게 주소를 남겨놓은 것이지 위장전입이 아니다"라고 적극 해명했다.
박 후보자는 이와 관련 "2012년에 처음 의원이 됐을 때 제가 살던 서초동 미도아파트을 6억 원에 처분하고 (가족이) 다같이 대전에 가서 대전 사람이 됐다"며 "지금 그 아파트는 21억 원이 됐다"고 진정성을 강조했다.
선산인 임야와 콘도 회원권 등 재산 일부가 공직자 재산등록에서 누락된 것이 고의적 재산 은폐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는 "그 부분은 제 불찰이었다"며 "선산은 공시지가 2000만 원 상당인데, 재산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 부분을 신고하지 못한 점은 이유를 불문하고 제 불찰이라 생각한다. 지적에 동의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전시의원 비리에 "민망" 유감표명…법무법인 사건수임 의혹엔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다"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이 폭로한, 박 후보자 지역구 관계자들의 공천 헌금 강요 의혹에 대해 그는 "대전지검의 무혐의 결정문과 대전고법의 재정신청 기각 결정을 봐달라", "판결문에 나와 있다"며 직접 언급을 피했다.
다만 그는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주변 관리만큼은 낙제점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나는 모른다'는 것은 비상식·비합리적"이라며 "주변 관리를 이렇게 한 분이 법무 행정을 하고 검찰·교도행정을 지휘하겠느냐"고 지적하자 "의원 지적에 상당부분 공감하고 유감이다"라고 했다.
그는 "지역 책임자로서 장 의원의 지적에 공감한다. 민망한 일이었다"며 "그러나 저는 지방의원들에게 거의 100%에 가까운 자율권을 줬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항변했다.
2012년 설립된 법무법인 '명경'에 자신이 초기 출자금 1000만 원을 납임하고 박 후보자의 친동생이 이 법인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과 관련, 국회 법사위원으로 활동한 박 후보자가 법무법인의 성장 배경이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 법무법인은 박 후보자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서구 둔산동에 있다.
박 후보자는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로펌의 사건수임내역 등을 공개하라고 하자 "민간 로펌이라 제출이 어렵다고 한다"며 "제가 마음대로 밝힐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사무장인 동생의 보수월액 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안색을 굳히며 "한번 대전에 내려가셔서 제 동생이 평균 이상 월급을 받는지, 명경 관련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시라. 제 동생은 가난하다"고 했다. 그는 "제 아우가 먼저 (거취) 결정을 할 것 같다. 제 아우 성품은 저보다 더 강직하다"고도 했다.
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인 2012년 4월에 법무법인 설립에 참여했느냐. 당시 법률상으로는 위법은 아니지만 의원 임기가 시작된 후에는 출자금을 빼지 그랬느냐'고 지적하자 박 후보자는 "공익 변호를 의원 4년 임기 중에 한두 건은 해보고 싶었다"며 이것이 자신의 "꿈"이었다고 했다.
이용구·윤석열·한동훈 등 구체적 사건 지휘 의견은 함구…"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공수처로 이첩해야"
구체적 현안 사건 지휘 방침을 묻는 질문에는 후보자 신분으로 답변하기 부적절하다고 답변을 피했다. 이용구 법무차관 폭행 의혹 사건 관련 지적에 박 후보자는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이 배당돼 엄정하게 수사하는 것으로 보도상 봤다"며 "제가 여기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이나 어떠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만 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이 정도 사안이면 이 차관이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자 그는 "뭐라고 말씀드릴 위치에 있지 않다"며 "엄중한 수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책임소재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서울중앙지검 실무자들이 이른바 채널A 사건 관련 한동훈 검사장의 무혐의 처분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결재를 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한 검사장 휴대폰 한 번 안 열어보고 무혐의로 끝내는 게 맞느냐'고 따지듯 묻자 박 후보자는 "박 의원의 옆 자리에서 제가 천착했던 사건"이라고 간접적으로 공감을 표하면서도 "시간을 좀 달라"고만 했다. 같은 사건에 대한 민주당 다른 의원들의 질문에도 그는 "현재 입장에서 제 견해를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인·장모 관련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역시 "제 위치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했고,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제가) 아직 후보자 신분이다. 임명되면…(살펴보겠다)"고만 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제기했던 노무현재단 계좌추적 의혹에 대해서도 "의견이 없다. 제 입장에서 말할 사안이 아니다"라고만 했다.
박 후보자는 다만 이 사건들과 관련, 공통적으로 "수사는 혐의가 있으면 해야 하고, 다만 수사는 신속·엄정하게 해야 하고 모든 사건 수사는 통일적 기준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강조했다.
유일하게 뚜렷한 답변이 나온 것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출국금지 불법 논란이었다. 그는 "검사(이규원 대검 검사)가 수사 대상인 사건이니까 공수처에 이첩해야 하지 않느냐"는 한 청문위원의 질의에 "법에 의하면 현 상태에서 이첩하는 게 옳다. 이첩해야 할 단계"라고 답변했다.
박 후보자는 또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취지가 좋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안 지키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이 사건 관련 법무부에 제기된 의혹을 거론하자 "저도 절차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도 "왜 이 사건이어야 하느냐? 왜 이 사건 검찰수사가 절차적 정의의 표본이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조 의원이 "절차적 정의가 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다"라고 재지적했지만 박 후보자는 굽히지 않고 "사건의 본질이 절차적 정의냐 실체적 정의냐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장관으로 일하게 된다면 공익제보 여부의 문제, 수사자료 유출의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말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차후 검찰 인사를 할 때 추미애 현 법무장관처럼 검찰총장과의 협의 없이 할 것이냐는 질문에 박 후보자는 "인사권과 관련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라고 (검찰청법에) 된 부분의 맥락과 관행을 검토하겠다"며 "어떤 경우라도 '밀실(인사)'이라는 지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총장과 장관의 사이는 법적 관계다.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총장이 실재하는 이상 당연히 인사를 함에 있어 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협의는 안 하고 그저 의견을 듣겠다는 말이냐'고 야당 의원이 되묻자 그는 "법룰에 '의견을 들어'라고 돼있다"고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박 후보자의 청문회 답변 태도에 대해 항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일운일답식으로 짧은 질문을 건네고 답변을 요구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박 후보자가 바로 답변하지 않고 "말씀하시죠", "질문하시죠", "마저 질문을 다 해주시죠" 등의 말로 답을 피하거나 아예 답변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일이 종종 일어나면서다.
국회법 60조는 "위원회에서의 질의는 일문일답 방식으로 한다. 다만 위원회 의결이 있는 경우 일괄질의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전주혜 의원은 "후보자가 공직후보자가 아니라 다선 의원으로 앉아있는 것 같은 인상"이라며 "'선택적 답변'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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