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현지 시각) 바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를 권좌에서 몰아낸 미국은 과연 이전과 같은 패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미중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이며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향후 미국 패권의 향방과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미래를 조망해 봤다. 구체적으로 바이든 집권의 의미, 트럼프 집권과 퇴장의 의미, 미중 관계와 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 등 세 분야에 걸쳐 알아봤다.
지난 13일 진행된 인터뷰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며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전화 인터뷰 등을 통해 내용을 보완했다.
프레시안 : 이번 미국 대선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혜정 : 이번 대선은 트럼프에 대한 찬반 투표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미국의 주류와 민주당이 고대했던 트럼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극단적 분열이었다. 따라서 새로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과감한 개혁을 주도할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확보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 위기, 경제 위기, 인종 갈등, 기후 위기 등 4대 과제 해결을 중심으로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 회복, 미국 민주주의 및 중산층의 복원이라는 정치적 과업에 나서겠지만 그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66.7%라는 높은 투표율, 그리고 바이든(8128만 표)과 트럼프(7422만 표)가 각각 역대 최다 득표 1,2위를 기록한 데서 드러나듯 이번 대선은 트럼프의 진퇴를 놓고 미국이 두 쪽으로 나누어 벌인 거대한 정치적 싸움이었다.
주류 엘리트(Establisnment, 워싱턴의 관료·정치인·언론 등 기득권 집단)와 중도·진보 진영은 트럼프가 미국의 패권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며 결단코 그를 축출하려 한 반면, 백인 중하층을 중심으로 한 보수층은 미국우선주의와 백인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며 한사코 그를 지키려 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은 저지됐지만 그 대가는 미국 사회의 극단적 분열이었다. 우선 트럼프 자신이 대선 이틀 후부터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했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하는 일은 제17대 앤드루 존슨 이후 150여 년 만에 처음이다.
또 지난 1월 6일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해 폭력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이날 의회의 선거인단 인증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중 8명, 하원의원 147명이 대선 결과에 따른 선거인단 선출에 불복 의사를 밝혔다. 나아가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50-70%는 '이번 선거가 조작됐다', '트럼프가 정당하게 승리했다'고 믿고 있으며 공화당원의 3분의 2 정도는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는 물러났지만 트럼프주의는 살아있다'라든가 '공화당은 트럼프당'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트럼프가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영향력이 일정하게 감소할 것이고 민주당에서도 탄핵 등을 통해 트럼프 견제를 시도하겠지만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미국은 1860년대 남북전쟁 이래 최악의 정치적 양극화에 직면해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국민적 통합을 이룩하고 미국의 패권을 회복하며 훼손된 민주주의와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광범위한 정치적 합의 기반을 이룩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프레시안: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는 경우는 드문 편에 속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경제가 상당히 좋았는데도 재선에 실패했다. 트럼프의 패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역시 코로나19 방역 실패 때문인가.
한마디 덧붙이자면 한국, 특히 진보 진영에서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그의 승리를 예상하거나 기대했던 분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노동자 계층 옹호 등 트럼프의 민중주의적 면모 때문에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 금권세력을 중심으로 한 막후의 정치 실세)가 그의 제거를 주도했다는 음모론적 시각도 있다.
이혜정 : 코로나 대선은 맞는데 딥 스테이트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된다. 딥 스테이트는 기득권 내 엘리트들의 일종의 음모론인데, 이번 선거에서는 반 트럼프 연합이 광범위하게 결성됐기 때문에 딥 스테이트라기보다는 제도권(Establishment)의 단결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즉 코로나19와 주류엘리트의 단합, 이 두 가지가 같이 작동됐다고 보는 것이 맞아 보인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고, 이런 확신 때문에 지금도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7월 한 세미나에서 나는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날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고 트럼프는 100% 결과에 불복할 것이며, 바이든이 진다면 바이든을 찍었던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 특히 트럼프를 떨어뜨리기 위해 샌더스나 워런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념적 성향을 접으면서 바이든을 찍었음에도 트럼프 재선을 막지 못하는 절망을 미국 정치권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는데 지금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크게 보면 2016년 대선과 2020년 대선 모두 패배한 쪽이 선거 결과에 사실상 승복하지 않은 셈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2016년 대선 승리를 주류엘리트로부터 승인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다. 뮬러 특검이 2019년에 보고서를 냈는데 트럼프 입장에서 보면 2016년 선거에서 이긴 정당성을 트럼프의 반대쪽, 특히 제도권(Establishment)이 한 번도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 트럼프 쪽은 이번 대선은 선거 시스템이 조작됐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라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앨 고어가 대법원 판결에 의한 선거 패배를 받아들인 것과 같은 승복의 문화는 이제 사라진 것 같다.
트럼프는 2019년 첫 번째 탄핵을 건넌 이후 2020년 선거 국면에 돌입했는데 당시 실업률이 50여 년 만에 최저였고 증시는 가장 활황이었으며 실질임금도 증가하는 등 상당히 괜찮은 경제 성적표를 들고 있었다.
물론 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한 건 오바마 때부터였고 그럼에도 경제적 양극화가 완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경제가 바닥에서 올라온 것은 맞았다. 트럼프는 자신을 인종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소수 인종의 실질적 경제 성장을 자신만큼 이뤄낸 정치인이 있느냐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2017년 1월 대통령 취임 바로 다음 날부터 차기 선거운동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이전과 상황도 달랐다. 2016년에는 공화당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사실상 공화당을 장악했고, 선거자금도 충분히 모았다. 실탄과 조직이 충분했고 경제 상황도 너무 좋은 데다 상대인 민주당은 중도와 진보로 분열돼있었다.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전인 2020년 1~2월 트럼프는 낙승을 예상했을 것이다. 또 상대 후보로 바이든이 나온다면 대선 3수생인 데다가 기득권이고 적폐이기 때문에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트럼프를 주저앉혀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경제가 꺼질 때가 됐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헛된 희망 가지지 말라고, 불경기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고 실제 이들의 희망과 달리 현실 경기는 매우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코로나 때문에 확 바뀌었다. 미국은 현재 코로나 확진자가 2391만 명, 사망자 39만 7400명으로 세계 최대의 코로나 감염국가다. 코로나 방역으로만 본다면 세계 최대의 실패국가인 셈이다. 이미 지난해 4월 초 뉴욕 주의 코로나 사망자가 3000명을 넘었는데 이는 9.11테러 사망자 2998명을 넘긴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돌파한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방역 실패로 인해 경제마저 어려워지면서 결과적으로 중도파와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바이든 지지로 옮겨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라는 변수를 빼고는 2020년 선거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즉 코로나가 이번 미국 대선의 게임 체인저가 된 셈이다.
딥 스테이트는 당연히 트럼프를 주저앉히고 싶어 했겠지만 딥 스테이트만 달라붙어서는 이렇게까지 안 된다. 광범위한 반(反) 트럼프 연합이 결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 공화당 내에서 순수한 보수를 하자는 '링컨 프로젝트'(미트 롬니 등)부터 민주당 진보를 대표하는 샌더스까지, 일단 트럼프를 주저앉혀야 하기 때문에 연합으로 모이게 됐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진보 진영에서 보면 민주당 주류는 용서할 수 없는 세력이지만 그럼에도 일단 트럼프를 주저앉히기 위해 연합전선에 참여한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바이든은 나이도 많은 데다 기존 정치권 인사라 개혁적 인물이라 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개혁을 위해서는 샌더스 같은 진보 정치인의 집권이 필요하다고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트럼프라는 정치권 외부 인사의 경선 승리를 허용한 반면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에 이어 이번에도 바이든이라는 제도정치권 내 인물이 승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혜정 : 민주당은 아직까지 당 지도부가 나름 당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공화당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티파티라는 시민사회의 극단적 보수세력이 득세하면서 당 지도부의 통제력이 사실상 무너졌다.
민주당 쪽을 살펴보면, 사실 바이든은 경선 초기에 성적이 좋지 않았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 등 초기 예비선거에서 줄곧 밀렸다. 그리고 지난해 1월 미국 주류의 의견을 대변하는 <뉴욕타임스>는 민주당의 바람직한 후보로 에이미 클로버샤‧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꼽았다. 기존 제도권(Establishment)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자신들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제도권을 지키려면 자기 쇄신을 통한 재생산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바이든은 그런 아이디어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당파적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클로버샤), 그리고 제도권 인사는 아니지만 개혁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샌더스처럼 극단적이지 않고 일정하게 타협이 가능한 사람(워런)을 지지한 것이다. 바이든에 대해서는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승리 이후 3월 3일 슈퍼화요일에 대승을 거두면서 승기를 잡았는데, 슈퍼화요일을 전후해 민주당의 주요 경선 후보가 줄줄이 사퇴한다. 1일 부티지지, 2일 클로버샤, 4일 블룸버그, 5일 워런 등이다. 이는 민주당 주류, 즉 당 지도부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은 사태 전개 방식이다.
샌더스 쪽에서는 민주당 주류가 장난을 쳤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제임스 클라이번이라는 흑인 정치가이자 원내 총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클라이번이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바이든을 지지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결국 샌더스는 이후 4월 8일 후보에서 사퇴하게 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전까지 바이든은 모금도, 조직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본선에서 도저히 트럼프를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한 민주당 주류에서 중도 후보들을 불러 모은 것 같다. 이 막후에 오바마 관여 여부에 논란이 있었는데, 이 상태로 가면 샌더스가 본선 후보로 나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그렇게 될 경우 본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 중도 후보들을 불러 모아서 사퇴를 종용한 것 같다.
민주당 주류에서는 샌더스가 확장성의 한계가 있다고 봤다. 샌더스가 라틴계나 젊은 층에 소구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워낙 아웃사이더이기도 하고 본인이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도 하니까. 또 흑인 계층에 소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류의 사후적 설명이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정치적 분열 중
프레시안 : 바이든이 역대 최다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민주당은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 됐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에 불복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의회에 들어가서 폭력 시위를 벌였다. 사실상 미국이 두 쪽으로 갈라졌는데, 이같은 대선 불복 사태를 미국 내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이혜정 : 유례가 없는 건 분명하다.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정치적 분열이다. 선거 결과 불복은 처음이다 보니 엄청난 충격이다. 의사당이 점거를 당하는 사태까지 일어난 것은 갈 데까지 간 것이라고 본다. 미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쇠락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레이건 행정부 때 만들어진 민주주의기부재단(NED)이란 단체가 있다. 미국 민주주의를 해외에 알리고 전파하기 위한 단체다. 여기서 발행하는 <민주주의 저널>(Journal of Democracy)은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자신들이 미국 민주주의를 다루게 될 줄은 몰랐다며 한탄하는 글을 내보냈다. 미국 민주주의는 세계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고 세계에 수출해야 하는데, 이제 미국 민주주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이미 2016년 대선 이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이 미국 내에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번 선거 직전에 미국 언론에 미국의 선거 절차가 망가졌다고, 위험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대선 이후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3세계나 러시아,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은 이들 국가들에서 보이던 민주주의 후퇴 징후가 미국 내에서 보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프레시안 : 선거 절차가 망가졌다는 게 선거인단제도와 같은 제도적 문제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거제도 운영의 문제인가?
이혜정 : 둘 다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란 줄이고 줄이면 결국 수의 정치다. 즉 표의 숫자가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고, 표 대결에서 지면 평화적으로 권력을 내주는 게 기본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선거 부정에 대한 명백한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선거에 불복하는 것을 보면 2000년 당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끝까지 갔어야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사건이나 사고는 한 번에 생기지 않는다. 경고등이 계속 켜진 상태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나하나 규범들이 계속 깨져나가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구덩이를 너무 깊게 파서 이 구덩이에서 나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프레시안 : 트럼프는 졌지만 여전히 공화당은 트럼프 당이라는 지적이 있다. 공화당의 4분의 3 정도는 트럼프 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트럼프의 정치적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얘기고 그래서 민주당은 그의 2024년 대선 출마를 막기 위해서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할까?
이혜정 : 어쨌든 기존 세력들은 트럼프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대한 트럼프를 소위 '손절'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상원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인데, 트럼프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에 대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트럼프 이후 시대로 진입하게 되니까 탄핵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 공화당 절반 정도가 트럼프 편이라고 평가받는다고 하는데, 어쨌든 공화당 지지자 중에 3분의 2, 많이 보면 4분의 3 정도는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트럼프와 갈라서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해도, 적어도 공화당원의 3분의 1은 트럼프가 가져갈 것이다.
그렇지만 공화당 안에서도 이 기회에 독립을 하자는 사람이 있고, 민주당이나 진보진영에서는 더 이상 트럼프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최대까지 트럼프의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탄핵 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원에서 탄핵이 이뤄지려면 의석의 3분의 2까지 필요하니까 최종 탄핵은 어려울 것이다. 또 매코널이 19일까지는 탄핵 절차를 밟지 않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실제 탄핵 표결이 진행된다고 해도 트럼프 퇴임 이후다. 그래서 탄핵 문제는 다음 정치적 스케줄로 넘겨 놓고, 그럼에도 대의와 진영의 요구가 있으니까 최종까지는 일단 갈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11월 선거 이후 바이든이 선거인단 306명을 확보했다고 언론들이 보도한 순간에 대선 패배를 인정한 대단히 소수의 공화당원들이 있고, 각 주의 선거인단들이 실제 결정된 12월에 인정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공화당 하원 지도부는 그 때까지도 인정하지 않다가 이번에(1월 6일 선거인단 인증)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일이 지날수록 조금씩 트럼프에서 멀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에 와서 탄핵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또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 트럼프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회 난동에 대해 트럼프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정치적으로 트럼프를 다르게 통제하자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의 공화당 장악력이 갈수록 떨어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그가 공화당의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트럼프가 금치산자가 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지 않는 한 트럼프는 절대 정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트럼프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탄압이 들어가면 갈수록 영웅 서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정치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거세할 수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의 유산이 아른거릴 것
프레시안 : 미국 주류 입장에서는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2차 대전 이후 미국 정치의 초당적 합의였던 세계 패권 유지, 즉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수호한다는 미국의 특권과 의무를 포기하고, 가족 등 측근을 등용하고 기존 정치 관례를 무시한 채 백악관에서 재선 출마를 선언하는 등 민주주의를 훼손한 트럼프를 용납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가 이번 대선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어쨌든 트럼프는 지난 4년간 미국을 이끌어온 최고지도자였다. 그의 재임 4년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선 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하길 바라지 않았나. 파리 기후협약 탈퇴하고 이란 핵 협상을 파기하는 등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대외 정책이 미국 내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나?
이혜정 : 원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2차 세계대전 개입을 반대한 찰스 린드버그 등이 만든 구호다. 당시 그 사람들은 남북미 대륙 전체에서 미국이 자급자족 가능하니까 아메리카 대륙을 요새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는 나치, 왼쪽으로는 일본이 있는데, 남북미 대륙은 이들과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는, 그래서 국방력이 필요하지만 개입은 하지 않는 것을 주장했다.
트럼프가 이야기했던 미국우선주의와 관련, 트럼프에게 입력돼있는 것은 자유무역과 동맹은 미국이 당하는 것이라는 점과 독재자 즉 푸틴, 시진핑, 김정은 등과 같은 스트롱맨과 게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오바마를 포함해서 주류 정치인들을 공격할 때 계속했던 이야기가 미국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시당하는 것을 넘어 동맹이 미국을 등쳐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하고 미국의 군사력으로 동맹을 지켜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손해만 보았고 동맹국들은 이득을 보면서도 미국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려면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전쟁은 안하겠다고 한다. 기존 군사력 운용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건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 국방비는 계속 오르고 있다. 군인들이 예산 신청하면 오히려 의회에서 얹어주는 정도가 됐다.
그런데 미국 내에서 트럼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중국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즉 중국에 대해 일정하게 강경책을 구사해 중국의 부상을 적극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이건 합의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 내부의 논의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다고 해서 언제 사회주의 포기한다고 했냐고 하겠지만, 아무튼 중국에 대해 새로운 대응 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 중국이 첨단기술 탈취 등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 정부도 계승할 것 같다. 특히 경제적 민족주의는 상당히 많이 계승될 것 같다.
바이든이 'Buy American'(미국 제품 구매)을 내걸기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무조건적 자유무역은 지양해야 한다는 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게 2001년인데 당시 미국이 가입을 허용한 것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정치적으로 자유화되고 경제적으로도 개방적 체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이 미국식 체제를 닮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가졌던 이러한 기대가 완전히 깨졌다는 것이다.
또한 진보까지 전부 포함해서 트럼프가 재임 중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점을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부분은 바이든도 계속 가져갈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부과해놓은 대중국 보복관세를 당장은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 않나.
다만 파리 기후협약 탈퇴와 이란 핵협상 파기, 다자주의에서 빠져나온 것, 동맹에 대해 미군 주둔 비용을 요구한 것, 주독 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결정 등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레시안 :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의 패권 추구가 미국 내부의 가난과 폭력을 가져왔다면서 미국우선주의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했는데, 트럼프의 대내정책이 중산층 복원과 경제적 불평등 완화에 기여했다고 보나?
이혜정 : 현재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경제적 민족주의자인 것은 맞지만 민중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즉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경제적 포퓰리즘을 제대로 시행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선 트럼프는 중산층 복원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실행하지 않았다. 반면 법인세를 엄청 낮췄다. 대기업에 특혜를 준 것이다. 공화당 주류는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옹호하고 균형예산을 중시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균형예산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다. 트럼프 지지로 넘어온 사람들이 티파티였는데 이들은 균형예산을 위해서 복지고 뭐고 다 날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 때는 연방정부가 폐쇄되기도 했고 국방비를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여기서 자유롭다.
그래서 트럼프의 정책 프로그램은 중구난방이다. 국내적으로 오바마가 했던 환경규제도 하지 않고, 대규모 감세를 하면서 예산 적자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중산층에 대한 투자나 보호 이런 것도 없다. 오바마케어를 날리겠다고 하면서 어려우면 그냥 현금으로 주라는 식이다. 트럼프는 그냥 필요하면 돈을 쓰겠다는 사람이다.
또 국방에서 보면 트럼프는 군사력은 증강하는데 전쟁은 안하겠다고 한다. 미국 안보의 기존 매뉴얼은 자체 군사력 확보와 함께 동맹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다. 즉 동맹 자체가 안보 자산이라서 동맹에게 역할을 주고, 다른 강대국을 견제하려면 동맹과 같이 협의해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동맹을 무시하고 돈이나 더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
국방비를 쓰는 기본적인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당장 준비 태세 확보가 있고(유사시 곧바로 군사력 출동이 가능한가), 장기적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서 군비를 확충해야 한다. 미국은 전 세계는 물론 우주와 사이버공간에도 사령부를 두고 있으며 이 모든 작전 영역에서 절대적 우위를 유지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중동의 대터러 전쟁에 묶여 있고, 오바마 행정부 이후 시퀘스터(예산 자동 삭감)로 강제적으로 국방비가 삭감되니까 당시 미군 합동참모본부에서 예산 삭감이 미국 국가 안보의 가장 큰 적이라고 불평할 정도였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거 다 풀어줬다. 재래식 병력과 핵 풀어줬고, 예산 풀어줬고. 군부 입장에서 보면 이른바 '소원 수리' 한 셈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러시아와 핵 군축 조항도 날렸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기존 입장에서는 동맹도 강조하고 역할을 줘야 하는데, 이건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이렇게 한 건 미국이 존경받기 위해선 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로써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방예산 제한을 감수해야 했던 미 군부로서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략경쟁의 부활을 명분으로 대규모 군비 증강에 착수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의 이름으로 새로운 중국 견제 전략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프레시안 : 중산층 복원한다고 하면서 인프라 투자는 안 하고 법인세 인하하고. 새로운 전쟁 안 하겠다면서 국방비는 늘리고. 이런 식의 행태는 뭐라 해야 하나. 정치적 편의주의라고 봐야 하나?
이혜정 : 트럼프는 정권 유지를 위해 기존 정치세력과 일정하게 거래를 했다. 예컨대 트럼프는 "딸에게는 도저히 설명하지 못할" 정도의 온갖 성추문에 휩싸인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복음주의자들이 그를 지지한 것은 그가 낙태를 반대하고 보수적 성향의 인물을 대법관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티파티 등 자유지상주의자들과 대기업은 탈규제와 감세를 이유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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