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천국(天國) 노회찬] 시즌1을 마무리합니다. 도서출판 일빛을 통해 2월 말경 책으로 묶습니다. 시즌2로 찾아뵙겠습니다.
1.
2020년 마지막 '음식천국 노회찬'은 노회찬재단 설립 2주년을 앞두고 노회찬재단 식구들이 송년 평가회를 겸해 '길동무 노회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끼였다. 장소는 연희동 일식당 '카덴'(연희로173 거화빌딩). 카덴(花傳·화전)은 인기 스타 쉐프 정호영이 운영하는 우동 가게와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으로 유명하다. 정호영 요리사는 2015년 JTBC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요리 프로그램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뒤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계 인기 쉐프로 자리 잡은 명사이다.
생선요리를 특히 좋아한 노회찬은 정호영 요리사가 방송 스타가 되기 전부터 일식당 카덴의 맛을 알고 있었다. "환갑잔치는 무슨…"이라며 겸연쩍어하던 노회찬이 개인적으로 가까운 당 후배들과 보좌진 십 수 명을 초대해 자신의 60회 생일(1956년 8월 31일)을 기념한 곳도 이 집이다. 정호영 요리사는 이 '조촐한' 환갑잔치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러분들과 같이 오셔서 회갑 기념 식사를 매우 유쾌하게 하셨어요. 저도 1층까지 내려가 배웅하고 기념 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
즐거웠던 그 60회 생일잔치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한 분들이 카덴을 노회찬재단의 한해 마무리 장소로 선택했다. 재단 식구들은 조돈문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조현연 특임이사, 김형탁 사무총장, 박규님 운영실장, 이강준 사업기획실장, 주현미 기록연구실 국장, 이성재 홍보기획국장, 김우림 운영실 차장 등이다.
노회찬재단의 핵심 사업은 3가지. 노회찬 추모와 기록사업, '노회찬 정치학교' 등 제2, 제3의 노회찬을 양성하는 정치교육 사업, 그리고 '6411 정신'으로 상징되는 노회찬 정신의 계승·발전 사업이다. '6411 정신'이란 2012년 노회찬이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를 수락하면서 한 연설의 요지. 노회찬은 이 연설에서 진보정치의 사명을 '청소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철거민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힘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수많은 투명인간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2019년 노회찬 1주기를 맞아 이 연설의 정신을 '6411 버스 정신'이라고 명명하며 노회찬의 호소에 화답했다.
"노회찬 정신은 무엇일까요? 정의당은 간명하게 그것을 '6411 버스 정신'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6411 버스 정신'은 우리 정치가 한 번도 제대로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거명하는 것이고 권력 밖으로 밀려난 시민들을 정치의 한복판의 데려오는 것입니다. '6411 버스 정신'은 사회 경제적 약자에 대한 막연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아닙니다. '6411 버스 정신'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배제된 한국 민주주의를 바꾸겠다는 정치적 소명입니다. 그래서 노회찬 정신의 또 다른 한쪽 날개는 '진보정당'입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19년 7월 23일 자 '노회찬 정신의 양 날개, 6411버스와 진보정당')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 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0, 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故 노회찬의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2.
- 재단의 2020년 한 해 활동을 평가하고 다음 할 일을 생각해 봅시다
"올해 저희들은 노회찬의 6411정신을 좀 더 구체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회찬재단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새삼 확인했습니다. 노회찬은 6411연설을 통해 비단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진보진영 전체의 과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6411 정신'의 실천입니다. 노회찬재단은 앞으로 최대한 많은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만나 그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그 목소리에 실린 바람들이 노회찬재단의 활동을 통해 당당히 정당에, 의회에 전달되고 제도화되는 일에 앞장서고자 합니다."
"당신 자신은 멈추지만 당은 당당하게 나아가라고 한 유언의 의미를 재단과 정의당 모두 깊이 되새기고 살려 나가야 합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가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물세 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그 다섯 분도 역시 마찬가지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故 노회찬의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3.
"사람들은 당시 노회찬의 6411연설을 무명의 노동자들을 위한 진보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없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부를 때 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 지를, 그리고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되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자각이 진보진영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회찬이 뿌린 씨앗입니다. 노회찬재단은 더욱 믿음과 기대를 쌓아서 보다 많은 분들이 재단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노회찬재단은 6411정신을 실천하고 6411노동자를 위한 재단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겠습니다."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 진보정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습니까?"(故 노회찬의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 노회찬재단과 정의당과의 바람직한 관계는?
"정의당과의 관계 설정은 재단 창립 당시부터 중요하게 논의되었습니다. 결론은 재단과 당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상호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과 재단은 불가분의 관계여야 하지만 노회찬 정신은 정당이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않을 때 더 큰 전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노회찬은, 진보정당 밖에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워낙 많은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진보정치 활동을 못 한 것에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 노회찬을 좋아하고 지지하지만 정당 활동이 부담되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 노회찬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아직은 중도개혁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들, 예컨대 노무현-문재인 정권을 지지한 분들 등등. 이런 분들이 정당을 의식하지 않고 노회찬재단을 지지하고 후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노회찬정신의 확산에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노회찬재단은 국가 보조나 정당 지원 없이 운영되는 독립적인 재단법인이다. 현재 회원은 80% 이상이 일반 시민이고 15~20%가량이 정의당 당원들로 추산되고 있다. (☞ 바로 가기 : '노회찬재단' 홈페이지)
4.
카덴의 오너 쉐프 정호영 요리사는 일본 오사카의 츠지조리전문학교에서 유학한 뒤 유학 동기들과 이자카야 카덴을 창업해 현재 우동을 비롯한 여러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카덴'이라는 이름은 요리학교 실습실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과 처음 배울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는 다짐의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요리는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를 도우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카덴은 연희동 한성화교학교 건너편에 3종류의 식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큰길가의 빌딩(거화빌딩) 1층에는 다양한 일본 우동을 맛볼 수 있는 '우동 카덴'이 있고 2층은 넓은 공간의 일본식 주점 '이자카야 로바다야 카덴'이다. 이 건물 뒷골목에는 최근 파스타와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비스트로 카덴'이 문을 열어 세 식당이 이름하여 '카덴 시리즈'를 이룬다.
2층 이자카야는 정호영 쉐프의 솜씨가 한껏 발휘된 일식 주점. 낮 점심에는 일본식 정식을 먹을 수 있어 가족단위 예약 손님이 많은 곳이다. 저녁에는 회와 구이, 조림 등 주로 생선을 베이스로 하는 안주에 술을 즐길 수 있다. 1층 우동 카덴은 연희동에 앞서 합정동 카덴이 먼저 유명세를 얻어 점심 때는 대기자 명단이 길게 이어질 정도다. 음식 프로그램에 붓가케 우동과 튀김우동 잘하는 집으로 소개되었지만 정말 많은 종류의 우동에 깜짝 놀랄만하다. 대야만 한 큰 그릇에 면은 3번까지 무료 추가. 우동집에서 이자카야, 비스트로까지 카덴은 사실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각종 매체와 유튜브, SNS 등에 소개 글과 품평이 넘쳐나는 집이다.
정호영 요리사가 기억하는 노회찬은 "언제나 격의 없이 대해 주시고, 비싼 메뉴는 거의 시키지 않는 분"이었다.
"주문은 주로 같이 오시는 분들이 했는데, 어쩌다 본인이 직접 주문하는 경우에는 비싼 메뉴는 거의 주문을 안 했어요. 그래도 반가워서 제가 서비스를 드리면 굉장히 미안해하셨지요."
2016년 8월 31일 카덴에서 있었던 노회찬의 60회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동지들은 노회찬에게 답례로 '피부마사지 10회' 사용권을 선물했다.
그해 4월에 있었던 창원 총선 때 기흉(氣胸)으로 고생했던 노회찬의 지친 혈색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출연 전 보좌진들에게 등 떠밀려 피부관리실에 들리곤 했던 노회찬은 그 사용권을 2년 동안 6번 사용하고 4장은 이 세상에 남기고 갔다.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뜻이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은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위로입니다." 노회찬이 '마음의 스승'으로 존경했던 고 신영복 선생의 글귀로, 노회찬도 생전에 즐겨 인용했던 말이다.
노회찬은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길동무를 자임했던 사람이다. 길동무는 그가 동지들을 부를 때 즐겨 사용했던 말이기도 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그 길을 걷는 길동무들이라고 합니다."
노회찬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오랜 길동무들은 다만 비탄 속에만 있지 않았다. 그를 잃은 슬픔은 반드시 그를 기리고 생환(生還)해내는 기쁨으로 바뀌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노회찬이 바란 것처럼 이 세상을 정녕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려면 말이다.
"우리는 노회찬이 살아온, 고되지만 정의로운 삶을 잘 알기에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애석합니다. 이렇게 속절없이 그를 보낼 수도 없습니다. 그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야 하지만 그가 가졌던 꿈과 삶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하고 싶습니다."(2018년 9월 9일 노회찬재단 설립제안자 일동의 제안문 중에서)
이제 노회찬은 별이 되었고, 노회찬재단은 그 별빛을 따라 함께 걷는 이들의 길동무가 되고 따뜻한 위로가 되어야 할 숙명과 숙제를 안고 있다.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은 2019년 1월 24일 "노회찬의 정치철학을 계승해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사회 약자의 권리 향상 등과 민주주의, 진보정치의 발전을 꾀하고 평등하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출범해 2020년 말 현재 노회찬을 사랑하는 수많은 후원회원들의 소중한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진보정당의 공동 대표로, 이 부족한 사람을 선출해주신 것에 대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락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보정의당이 존재하는 그 시각까지, 그리고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동안,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심상정 후보를 앞장세워 진보적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모든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이 진보정의당을 거듭 세우는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넣겠습니다. 여러분, 함께 합시다, 감사합니다."(故 노회찬의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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