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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앞에서 멈춘 연어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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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앞에서 멈춘 연어의 귀향

[함께 사는 길] "남대천의 보는 사라져야 한다"

"와아"

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강물에 사람 팔뚝만 한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취재 중에 이런 기분 좋은 감탄사를 터트려본 게 얼마 만일까. 장관이었다. 카메라 셔터조차 한 호흡 멈춘다. 연어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이란 노랫말처럼,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1만6000킬로미터의 귀향길

지난 10월 19일 환경연합 생태보전국 신재은 국장·김중원 활동가와 함께 양양 남대천을 찾았다.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 회원이자 초등학교 교장인 김동수 씨가 안내를 위해 시간을 내주었다. 그이는 양양에서 나고 자라며 오랫동안 남대천의 변화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남대천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출발해 양양군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다. 총 길이는 54km로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하천 중 가장 길다. "남대천 상류에는 물고기들이 모이는 밭이란 이름의 어선전이란 마을과 어성천이란 이름의 계곡이 있을 정도로 예부터 물고기들이 많이 서식했다. 지금도 봄에는 황어가 바다에서 올라오고 여름에는 은어가, 가을에는 연어가 산란을 위해 남대천을 찾는다." 김동수 씨의 설명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대천에는 가시고기, 꺽지 등 총 34종의 어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 남대천을 오르는 저 연어들은 2~5년 전 남대천에서 태어난 녀석들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어린 시절 잠시 남대천에 머물다 동해를 통해 큰 바다로 나가고 북해도 수역을 거쳐 베링해와 북태평양까지 간다. 바다에서 살다 산란할 때가 되면 다시 남대천으로 돌아오는데 무려 1만6000킬로미터가 넘는 바닷길을 헤엄쳐 올라온다.

힘겨운 여정에도 연어들은 굳이 거센 물살을 헤치고 강을 거슬러 오른다. 그러다 적당한 곳을 찾아내면 꼬리로 자갈을 파고 그 안에 알을 낳고 자갈로 덮는다. "강바닥을 보면 군데군데 색이 다르다. 연어는 알을 낳고 자갈로 묻는데 저 밝은 부분이 알을 낳아 둔 흔적들이다." 김동수 씨의 안내에 따라 강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색이 다르다. 자세히 보니 연어 한 마리가 그 옆을 지키고 있다. 산란을 마친 연어는 암컷이건 수컷이건 얼마 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죽는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산란을 하고 생을 마치는 것이다. 그렇게 생을 마친 연어는 수중곤충이나 다른 수중생물들의 먹이가 된다.

▲ 연어가 남대천을 거슬러 오르다 내수면생명자원센터 부화장으로 이어진 수로를 오르고 있다. ⓒ함께사는길
▲ 남대천을 오르는 연어. ⓒ함께사는길

남대천 상류로는 못 올라

이 연어들의 고향은 엄밀히 말하면 내수면생명자원센터 내 부화장이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내수면생명자원센터는 1985년부터 연어 자원조성과 자원관리를 목적으로 치어 방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대천 하류에서 어미연어를 포획해 알을 채집하고 인공적으로 수정 및 부화를 시킨 후 30~50일간 부화장에서 자란 어린 연어를 방류해오고 있다.

과거에는 남대천 상류인 어성천계곡이나 법수치계곡까지도 올라가 알을 낳았다. 하지만 현재는 남대천 하류에 위치한 내수면생명자원센터보다 상류에서 연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보 때문이다. 바다와 가까운 남대천 하류에 위치한 내수면생명자원센터까지는 무난히 올라올 수 있지만 그 위에는 수많은 보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보가 너무 많다. 제아무리 힘이 좋은 연어라고 해도 보를 넘는 건 힘들다. 보를 넘었다고 해도 보 안의 물은 정체되어 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특성상 정체된 물에서는 헤맨다." 한국수산자원공단 내수면생명자원센터 김두호 센터장의 말이다. 보는 방류 사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은 양양 남대천 어린연어 적정 방류량 산정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구간을 남대천 전 구간이 아닌 남대천 하구에서 용천보까지로 한정했다. 보 때문에 연어를 수용할 수 있는 남대천 구간이 짧아졌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도 보 철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며 씁쓸해했다. 내수면생명자원센터는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이고 남대천은 양양군이 관리하는 지방하천이다. 또한 해양수산부도 내수면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연어 방류 외에 남대천 복원과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환경부가 그나마 하천 생태계 복원에 관심이 있지만 남대천에서 환경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보로 영향을 받는 것은 연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양양군이 진행한 '남대천 은어 등 자원조사 및 증대방안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남대천의 어족 자원 감소의 주된 원인으로 보와 댐을 지적했다. 그나마 연어는 내수면생명자원센터에서 인위적으로 산란 및 방류를 통해 어느 정도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두호 센터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연어 회귀율이 줄었다며 걱정이다. 김 센터장은 남획과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곳으로 올라오던 연어의 70퍼센트가 바다에서 잡힌다. 어망이 발달되다 보니 더 잘 잡힌다. 올핸 어민들에게 연어를 사서 방류사업을 진행해야 할 지경이다." 김 센터장의 말에 신재은 국장이 "최근 발표된 LPI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 같은 전 지구적인 추세에도 미국은 연어 회귀율이 늘었다. 보고서는 미국의 댐 철거를 주요한 원인으로 짚었다"고 말을 잇는다. 신 국장은 "남대천 역시 남획과 기후변화 영향도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보라는 장애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함께사는길
▲ 연어가 지나간 자리. 밝은 부분은 연어가 알을 낳은 흔적이다. ⓒ함께사는길

거꾸로 가는 복원 사업

내수면자원생명센터에서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가다 만난 한 농민은 "첨에 보를 지을 때만 해도 논이 많았지. 그런데 지금은 거의 다 메워졌어. 5만 평에서 1만 평 정도 남았나. 농민들은 불만이 많지. 논도 줄고 물 사용량도 줄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물 이용료를 똑같이 내라고 하니 불만이지. 저 물 다 필요도 없으니 보 허물고 관정 놔달라고 군청까지 갔었어. 헌데도 들어주길 않네"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만 신기답보, 가둔지보, 문서리보 등 3개의 보가 있다.

이 마을 보들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보들이 오래전 논농사 때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지어졌다. 김동수 회원은 "예전에도 보는 있었다. 물이 필요한 시기에 참나무를 잘라 강을 막아 농업용수를 확보했다가 홍수가 나면 저절로 터졌다. 나무로 막은 보는 아무리 잘 막아도 틈이 있어 그 틈으로 물고기들이 이동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다 콘크리트 고정보다. 또 물이 필요한 시기는 5월에서 9월까지인데 일 년 내내 막아놓을 필요가 무엇이 있나. 무엇보다 주변의 논들 상당수가 메워졌다."고 현실을 짚었다. 실제로 1980년대 양양군 논 면적은 3426ha였으나 2019년 1845ha로 줄었다. 때문에 상당수 보들의 용도가 유명무실해졌고 이에 대한 관리 및 철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양양군도 모르지는 않는다. 양양군은 2015년 남대천의 어족자원 감소원인이 보와 댐 등으로 하천의 종적 연속성이 단절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자 남대천 수계에 대한 보 및 어도 개선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남대천과 후천(남대천 지류 중 하나)에 설치돼있는 농업용 보 37개소 중 농업용수 기능이 쇠퇴한 3개의 보를 철거하고 보강이나 대체시설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9개의 보에 대해 정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한 남대천에 연어 자연산란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양양군은 남대천 르네상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대천의 자연성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친수공간을 조성하겠다며 총사업비 699억7900만 원을 투입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이 가시화되면서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를 그대로 두고 어도를 개선했는데 연어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김동수 회원은 비판했다. "연어가 남대천을 찾는 시기는 10~11월로 갈수기다. 어도에 물이 흐르지 않아 연어가 오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업 대부분이 둔치 개발, 호안 정비, 자전거도로 설치 같은 자연성과 거리가 먼 개발사업들이다. 양양군은 남대천 하류에 수상레포츠 체험 공간도 조성할 계획이다. 심지어 남대천 하류에 징검다리 보 2개를 추가로 설치했다. 연어 자연 산란장을 조성한다면서 그 길에 장애물 2개를 설치한 것이다. 현장을 둘러본 신재은 국장은 "사실 작은 보 하나 철거하는데 1억 원 정도면 된다. 그리 큰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며 "환경부에서도 하천 복원을 위한 보 철거 시범사업 대상지를 찾고 있다. 남대천이 시범사업으로 선택된다면 그 성과가 눈에 띄게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 남대천을 가로 막은 보에 어도가 설치되어 있지만 어도를 이용하는 연어는 보이지 않는다. ⓒ함께사는길

연어, 그리고 사라진 고기들을 위해

남대천은 낙산대교 아래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간다. "남대천 물고기는 바닷물 맛을 봐야 한다. 상류에서 알을 낳고 바다에서 성장한다. 이제 그런 물고기들이 보이질 않는다. 연어는 인위적으로라도 관리를 하지만 칠성장어를 비롯한 다른 어종들은 관심 밖이다. 얼마나 많은 어종이 사라졌는지 우리는 상상도 못 할 것"이라며 김동수 씨는 안타까워했다. 신재은 국장은 "특정 종을 복원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천 복원, 서식지 복원이 답"이라고 말했다. 연어, 그리고 또 남대천에서 사라져버린 물고기들에게 고향의 물길을 거슬러 오를 자유가 다시 허락되어야 한다. 남대천의 보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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