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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2021년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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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2021년이 위험하다

[시민정치시평] 바이든 승리의 원인과 의미

2020년 미국의 대선은 바이든의 승리로 결정났다. 다소 복잡한 미국 선거제도 때문에 서류상으로 완전한 결론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바이든이 다음 대통령이 된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다. 바이든 당선자와 트럼프의 격차는 2016년 트럼프 본인이 대승 (landslide)이라 칭했던 힐러리 클린턴과의 차이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만을 보면 낙승에 가깝다. 그러나 바이든과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거였다. 트럼프의 실정을 감안한 '블루웨이브'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구조적 변수를 고려하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불리함을 극복하는 과정에는 대략 세 가지 요소—거대 선거연합, 바이든의 개인적 득표력, 그리고 언론의 역할—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과연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했을까? 선거 직전의 피상적인 지표들을 고려해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이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볼 수 없었던 굵직굵직한 실정과 거짓의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타임스가 선거전에 공개한 트럼프의 세금 신고 내용은 그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성공한 비지니스맨' 이야말로 그가 리얼리티 쇼를 통해서 구축한 자신만의 정치적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나라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감염자와 사망자를 내고 있는 미국의 보건정책 실패를 생각한다면, 이번 대선은 민주당이 어지간해서는 질 수 없다는 예측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다. 실패의 그림자가 워낙 커서, 1992년 이후로 재선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이 없다는 점 정도가 유일하게 트럼프에 유리한 지점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예측의 기저에는 큰 전제가 있다. 바로 유권자들이 이런 실정의 정보를 자신의 투표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정치학을 배울 때 거의 빠짐없이 다루는 전통적인 경제투표이론, 즉 현직 대통령은 경제 성과에 따라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지난 20여년간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정서적 양극화 (affective polarization)' 앞에 무너진다. 정서적 양극화란 다른 사회 집단이나 정당의 용납하기 힘든 정치적 의견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 대척점에 있는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이다. 미국에서의 정서적 양극화는 1990년대 이후 공화당의 두드러진 우경화와 특유의 미디어 환경을 통해서 극단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상당수가 지지정당의 공약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단순히 반대세력에 반대하기 위해 투표를 하고 있다. 투표에 있어 상대정당이나 정파에 대한 적대심 때문에 '우리편'이 누구인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서적 양극화 현상은 특히 오바마 당선 이후 두드러지게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 반오바마-반이민자 정서에 기반한 티파티 (Tea Party)가 미국 전역에 풀뿌리 운동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2016년에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의 정서적 양극화는 더 심화되어 피자게이트 (Pizzagate)나 QAnon운동과 같은 극단적인 음모론마저 적지 않은 공화당 지지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정서적 양극화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다. 트럼프 지지자에게 있어 정책 실패나 스캔들과 같은 객관적인 준거는 민주당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에 비교해 보면 사소한 문제다. 바이러스 사망자가 폭증하고 직장을 잃어 월세를 못 내게 되더라도, 선거날이 되면 '좌파들을 혼내주기 위해 (to own the libs)' 투표소로 향하는 것이다. 2020년 선거의 결과는 결국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트럼프가 얻은 전국 투표수는 약 7000만 표로, 이는 12년 전 오바마가 세운 기록을 넘어선다. 워싱턴은 '사회주의 엘리트들'로 가득 차 있고, 이들부터 미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트럼프 파퓰리즘이 이번에도 정서적 양극화를 통해 대단한 동원 효과를 보여준 것이다.

바이든의 승리는 이런 난관을 돌파한 결과물이다. 그 원동력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버니브로 (Bernie Bros)'로 대표되는 비민주당 진보성향 지지자들과 '링컨프로젝트 (Lincoln Project)' 등을 통해 활동했던 반트럼프 공화당 인사들을 모두 아우르는, 선례를 찾기 힘든 광범위한 선거 연합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승리였다. 이런 거대 연합은 이른바 '트럼프 컨트리'에는 속하지 않지만 온전히 공화당의 텃밭인 지역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 주의 마리코파 카운티는 7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에 투표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또한 중도성향의 안정성에 온화한 아버지 이미지를 결합한 바이든 본인의 개인적 득표력도 일정한 성과를 냈다. 실제로 동시에 치러진 하원 선거와 비교해보면 바이든은 민주당 하원 후보들보다 약 2~3% 정도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에는 투표하지 않지만, 바이든에게는 표를 던진 사람들이 상당했다는 증거다. 이런 개인적인 장점이 조지아, 미네소타, 위스컨신 등 여전히 민주당에 친화적이지만은 않은 경합주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드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언론 보도와는 달리, 당내 경선을 포함해 대선 후보 여론조사 내내 경이로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던 지지율 역시 이런 바이든 개인 득표력의 방증이다.

미국 언론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선거 운동 기간 말미에 헌터바이든(바이든의 차남)의 '노트북' 루머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른바 '이메일 게이트'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던, 휘발성이 높은 소재였다. 그러나 미국 주요 언론은 이 소문이 그야말로 루머에 불과함을 명확히 했다. 2016년과 같이 '트럼프는 이렇게 주장하고, 민주당의 반응은 이러했다'는 식의 기계적 중립 (false equivalency)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도덕성을 중시하는 일부 반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투표자들의 투표율이 낮아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많은 미국인들은 '정상의 복원'을 축하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선거를 이긴 만큼 바이든 당선자와 민주당은 만만치 않은 도전을 앞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서적 양극화가 선거 후에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 바이든 정부가 앞으로 국정을 정상화하고 재선을 준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국 내 우익 파퓰리스트들이 2016년 선거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발견했다면, 2020년 선거는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세력이 강건함을 확인하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는 정보야말로 사람들이 집단행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트럼프주의에 참가하는 것이 일종의 집단 행동이라 할 때, 선거 후 트럼프주의 강화는 자명하다. 여기에 트럼프 집권 기간 동안 쌓인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해져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서적 양극화는 심화되리라 예측된다. 코로나 위기 극복과 경제 회복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돌파하는데 있어 이런 거대한 적극 반대세력의 존재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바이든의 거대 선거연합은 선거가 끝남에 따라 자연스레 와해될 것이다. 이미 선거 당일부터 남부 중남미 이민자 이탈표를 두고 민주당 내 진보주의자들과 중도파 의원들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선거기간 함께 했던 공화당 인사들의 경우, 반트럼프주의를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공유하는 정책 노선이 거의 없다. 결국 강력한 트럼프 세력을 압도하기 위해 엷고 넓게 퍼질 수밖에 없었던 민주당 앞에 쉽지만은 않은 2021년이 기다리고 있다 하겠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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