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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서울시정의 책무, '원전 줄이기'에서 '핵폐기물 떠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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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서울시정의 책무, '원전 줄이기'에서 '핵폐기물 떠안기'로

[초록發光] 새 시장, 서울시의 책임과 역할을 말하라

더불어민주당이 시행한 당헌 개정 당원투표는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잘못을 저지른 자당의 정치인이 또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고 국민에게 속죄하기 위해 만든 장치를 스스로 허문 것이니 명백한 정치 후퇴다.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이라 하더라도, '정치하는 것들은 다 똑같다'는 상식을 강화시켰고 유권자들에게 차악 중의 선택을 강요하는 꼴이니, 겸허히 심판받고 행동으로 만회하겠다는 다짐은 우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우리는 수많은 차악과 차선 사이에서 선택하거나 반발하며 이 땅의 정치를 만들어왔으니 그리 절망할 일은 아니고, 앞으로 그 중에 보다 나은 정당과 후보를 뽑는 고민을 외면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적어도 무엇이 최선이고 정당한지를 확인하고 공유한 가운데서 선택하는 차선이고 차악이어야 한다.

이낙연 대표는 당헌 개정 투표 결과를 설명하며, 이제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찾아서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새 부산시장과 서울시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덕성과 능력이어야 한다는 뜻일 테다. 두 단체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자리를 비우게 된 연유가 있으니 그런 덕목을 우선시하는 것은 일견 온당하다. 제1야당과의 관계에서 요석을 좌우하는 선거가 될 테니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새 단체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우리에게 필요한 부산시와 서울시는 어떠해야 할까? 사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이런 중요한 부분에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큰 정책 방향이 둘 사이의 당락을 좌우한 적도 없다. 그게 한국 지방자치제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올해 재선에 성공한 파리시의 안느 이달고 시장의 선거 공약 같은, 즉 도심 주행속도를 시간당 30㎞로 제한하고, 에어비앤비를 제한하여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며, 도시농업을 확대하는 것 같은 내용을 기대하기란 난망하다. 서울시, 부산시 같은 큰 광역시도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해야 할 역할이 있음에도 그런 측면에 대한 성찰은 극히 부족하다.

서울시만 놓고 이야기해보자. 2011년 10월부터 세 번의 임기 동안 박원순 시장은 무척 많은 일을 했다. 박 시장에 대한 인간적 또는 정치적 호오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차분한 논의도 불가능한 분위기이지만, 새 시장과 새 서울시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평가와 성찰을 해야만 한다. 내가 보기에 박 시장은 어떤 면에서 매우 뛰어난 역량과 태도를 가졌고, 다른 단체장들이 할 수 없던 일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벌였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시정을 돌아보면 ‘창의’와 ‘혁신’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는 매스컴과 국제 회의에서 주목받을만한 사업들에서 성과를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 사회가 그에게 기대하고 요구했던 굵직한 사업을 외면한 적도 많았다.

환경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신곡 수중보 철거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회피했고, 혼잡통행세 확대는 논의 궤도에도 올리지 않았던 반면, 목적이 여전히 아리송한 서울역 고가공원 조성은 거버넌스를 들러리 세워 밀어붙였고, 한강대교 공중보행길 공모전과 영동대로 및 광화문 지하도시 같은 사업들을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하려 했다. 박 시장 임기 동안 소통과 홍보의 소프트웨어는 발전했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사업 방향은 '토건시장'의 그것과 일면 다르지 않았다. 나의 이러한 평가가 잘못이라면 다른 평가를 제시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봄의 새 시장과 새 서울시는 어떠한 방향이어야 할지를 제안하면 좋을 것이다.

이 기회에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도 다시 돌아보면 좋겠다. 박 시장이 후쿠시마 핵사고 다음 해인 2012년부터 시작한 이 에너지전환 사업은 좋은 메시지를 던졌고 많은 호응도 얻었다. 그러나 그 실제 성과에 대한 논란은 적지 않았다. 과연 서울시가 실제로 원전 1기 생산량만큼의 전력 소비를 줄였는지, 서울시의 인구 감소 효과 말고 이 사업 자체의 효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업 방향이 잘못이었다기 보다는, 원전 하나 줄이기가 수반하는 어려움과 시와 시민이 나누어야 할 부담은 생략한 채 단기적 성과를 드러내는 데에 치중했던 게 잘못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에 박 시장과 서울시는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으로 서울시 차원의 탈핵과 에너지전환 사업의 의미가 없어지거나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 반대다.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 시대에 걸맞은, 더욱 진지하고 심도있는 사업이 요구될 따름이다.

▲지난 2일 열린 "대한민국 방방곡곡 가져가라 핵폐기물" 캠페인 청와대 앞 장면. ⓒ장영식

부산에너지정의행동이 9박 10일동안 진행한 "대한민국 방방곡곡 가져가라 핵폐기물" 행사가 11월 2일 청와대앞 기자회견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정책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부실하고 부당한 절차와 내용의 공론화를 되풀이하고 있는 가운데, 핵발전소와 폐기물 처분 문제로 삶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지역들이 직접 나섰다. 이들은 모형 핵폐기물통을 트럭에 싣고 부산과 울산, 경주, 울진, 대구, 영광, 대전을 거쳐 서울로 오면서 핵폐기물 처분은 모두의 문제임을 알렸다. 서울에서는 10여년 전에 관악산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지으면 된다는 공학자를 규탄하러 서울대 앞에 들렀고, 국회와 광화문, 서울역에서 '다이-인'을 펼쳤으며, 문대통령의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제대로 풀라며 청와대 앞까지 도달했다.

이들은 이제 "핵폐기물은 서울이 가져가라"고 내심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서울의 문제가 아니면 다른 이슈에 밀려 묻혀 버리는, 오직 해당 지역민의 고립된 님비 투쟁이 되고 말았던 전철을 끊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 영화 <동경핵발전소>의 도쿄 도지사처럼, 전 국민의 일이 되기 위해서는 핵발전소와 폐기장을 수도에 유치하라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허황된 것일까? 전국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10% 가까이를 소비함에도 전력자립률은 2%에 불과한 서울시가 25기의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폐기물 중 적게는 3기 분량, 많게는 98%를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어림 중간쯤으로 말한다면 서울시에 필요한 것은 원전 하나 줄이기에서 나아가 "10기 핵폐기물 떠안기"가 아닐까? ‘떠안기’라는 표현 자체도 공연히 부당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책임지기"는 약한 느낌이니 일단 이렇게 써 본다.

어쨌든 이 10기 폐기물의 분량은 서울시 어딘가의 부지 제공으로, 아니면 비용으로 치러져야 할 것이다. 서울시에서 답이 없다면 한국 어디에도 답은 없다. 물론 앞으로 서울시를 포함하는 수도권은 온실가스 감축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충남과 인천, 강원도에서 줄어들어야 할 석탄화력발전 대체 비용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잘 설명할 수 있고 공감을 끌어내는 것도 좋은 정치인의 덕목이다. 이 어려운 일을 지역민들 사이의 갈등과 이권 싸움으로 몰아가지 않고 전 국민과 모든 정치인들의 일로, 그리고 다른 정치경제의 모색으로 만드는 게 좋은 정치의 책무다. 어떤 도덕적이고 유능한 사람들이 나서든 내년 4월은 서울시의 책임과 역할을 말하는 선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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