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제자와 동료를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전북 사립대 교수.
그러나 이 교수는 28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 선고가 나자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전북시민행동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하고 나섰다.
다음은 전북시민연대가 발표한 기자회견 전문이다.
'전북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폭력 사건' 무죄 선고한 사법부가 유죄다
항소심이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피해자의 안위를 걱정한 적 없던 판사는 항소심 선고가 있던 날까지 오롯이 피고인을 배려하고 염려하였다. 편파적인 그의 태도를 전북 미투시민행동의 시민들이 재판이 있을 때마다 지켜보았기에 오늘의 재판결과를 예상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사건 재판결과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아니라 판사의 성인지감수성이 문제다.
법정에서 판사는 "진술보다 확실한 건 증거 아니겠습니까!"라며 이미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방청연대에 온 시민들을 보며 호통 치듯 말했다.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해자가 만진 것을 '어떤 증거'로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객관적 증거'는 어렵기에 '피해자의 진술신빙성'을 주로 다투는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이해했다면, 수많은 사실 확인서의 피해를 고발하고 증명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오늘의 무죄선고는 결단코 있을 수 없다.
사법부가 가해자의 거짓말탐지기 거짓 반응은 쉽게 무시하고, 피해자들이 어렵게 용기 내 미투했으나 재판과정에서조차 끊임없이 난도질당하면서 반복된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무참하게 피해자의 목을 짓밟는 선고를 한 것은 그 자체로 유죄다.
성범죄피해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하기는커녕 "이해가 안된다"며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에게 큰소리치는 재판부가 계속해서 다른 성범죄재판을 하는 것이 지속된다면 사법부의 정의실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재판 방청연대를 하러 온 시민들에게 재판부가 "재판이 증거로 하는 것이지, 여론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눈에 힘을 주고 큰소리치는 것을 보고 들었다.
방청연대의 목적은 피고인의 재판에서 사라지기 십상인 피해자의 권리가 잘 보장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또한 시민이 재판을 방청하는 것은 시민의 알 권리다. 그 권리를 존중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되레 호통치고,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가 신청도하지 않은 비공개재판을 유도한 재판부는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1심에서 무죄도 아니고 충분한 심리를 거쳐 유죄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에서 또 피해자들을 소환하여 피고인 앞에서 고통스러운 증언을 하도록 했다. 권력 있는 교수였던 피고인을 '외간남자'라고 칭하는 재판부의 인식은 가부장적이며 이 사건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이 단순 기습추행이 아니라, 위력에 의한 성폭력임을 알고는 있는지 의문이다. 이 나라가 떠들썩하게 '미투'를 외친 것은 보기 싫은 사람을 지목하여 마녀사냥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는 한명이지만 수많은 세월,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이 사건 공소제기된 피해자들이 처음부터 형사고소를 했던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요청에 언론에 자신의 피해사실을 다른 피해자와 연대하는 마음으로 알렸던 것이다. 가해자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 성폭력을 일삼았지만, 그가 가진 권력에 감히 목소리 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나마 일터였던 학교를 나왔고, 용기 낸 피해자가 목소리 낸 것을 경찰에 연계되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됐던 것이다.
재판과정 내내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가해자변호인으로부터, 가해자의 가족들로부터, 재판부로부터 끊임없이 2차 피해와 모욕을 당했다. 도대체 이 피해자들이 무엇을 원하여 자신의 삶을 욕되게 하겠는가. 정의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의 끝이 결국 무죄라면, 앞으로 어떤 피해자가 권력을 가진 이의 횡포와 폭력을 발설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의 무죄선고는 이로써 성폭력가해자의 앞날을 꽃길로, 피해자와 그를 지지하던 이들의 앞날을 가시밭길로, 아직 피해를 말해보지도 못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앞날을 깜깜하게 만든 것이다.
대법원은 반드시 이 사건을 파기 환송하여 다시 심리할 수 있도록 응답하길 바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성폭력가해자가 반성이 아닌 반격을 할지라도, 거짓과 위선으로 연기하는 가해자가 더는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정의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 함께 선 우리는 피해자와 함께 끝까지 연대하고, 성폭력 통념에 맞서 성 평등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우리의 요구
▲피고인의 권리만 보장하고 무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를 규탄한다!
▲사법부는 성폭력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성인지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교육을 실시하라!
▲법원은 조용하게 방청하는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라!
▲대법원은 문화예술계 박교수 항소심 무죄사건 파기 환송하라!
2020년 10월 28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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