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중)
2020년 9월 기준으로 기초연금 신청을 '포기'하는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5만9992명에 달했다.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적용되는 제도이니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은 당연히 이 제도를 신청하고, 누릴 수 있다. 그런데 6만 명이 이를 포기했다. 이 수치는 기초생활수급자 노인 전체 인구인 49만 명 중 12.3%에 이른다. 그리고 이 숫자는 매년 늘어가고 있다. 강병원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2017년 9.8%, 2018년 10.7%, 2019년 11.4%로 매년 약 1%씩 증가해 2020년 12.3% 까지 증가한 것이다.
왜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을 포기할까?
그렇다면 왜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은 기초연금 '신청'마저 포기하는 것일까. 복지급여를 계산할 때 기준으로 삼는 소득인정액 계산에서 기초연금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초연금이 오르면 오히려 그만큼 생계급여가 삭감되고 있다.
이는 기초연금이 시행되고 '줬다뺏는 기초연금'으로 상당 기간 동안 비판받은 문제다. 대다수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은 기초연금을 받더라도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돼 버리니 사실상 기초연금을 신청할 유인이 사라진다. 심지어 기초연금이 오를 때마다 자신보다 형편이 나은 노인들은 기초연금 인상분만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지만 자신의 소득은 늘 제자리에 머무는 역진적 상황도 감수하고 있다.
이 감수를 왜 노인 개인이 해야 하는가. 게다가 기초연금만 문제가 아니다. 기초연금이 소득인정액에 포함되며 의료급여 수급에서도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고령일수록 다양한 건강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에게 의료급여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잡히게 되어 의료급여에서 탈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 때문에 일부 노인들은 기초연금을 포기하는 것이다. 일선 복지현장에서 조차 어르신의 의료급여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기초연금 신청 포기를 권장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 역시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으로 전액 포함시키는 현행 방식이 연쇄적으로 낳은 것이다.
사실상 국가가 기초생활수급 노인을 포기한다
이쯤 되면 수급 노인이 기초연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국가가 수급 노인들의 문제를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에 수급 노인들은 오랜 기간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집회, 기자회견, 토론회, 면담 등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당신들이 이 사회에서 당당하고 존엄하게 기초연금 수급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그러나 정치권은 번번이 빈곤노인들의 기초연금 문제를 '나중'으로 미뤄왔다. '차상위계층'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에, '복지사각지대 발굴'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수급 노인들의 요구를 지연시켜 온 것이다.
수급 노인들은 정부가 지적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빈곤과 불평등 해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시민 모두가 안다. 숫자로만 보아도 2020년 9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6살 이상의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3.4%이고, 2~3년 전에 비해 2~3% 정도 줄었으나 타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한국의 노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고통의 올림픽을 만들고, 빈곤 노인의 수급권 박탈을 방기하는 것이 국가가 잘 하는 일일까.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애인연금, 국가유공자수당처럼 기초연금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해야
해법은 간단하다.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면 된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서 딱 한 단어를 고치면 되는 일이다. 지금도 장애인연금, 장애인수당, 아동보육료, 양육수당, 국가유공자수당 등은 소득인정액 계산에 포함하지 않고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기초연금도 위 급여처럼 예외를 적용하면 된다.
올해부터는 생계급여를 계산할 때, 근로소득의 30%는 소득인정액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받는 기초연금만큼은 전액을 소득인정액에 포함해 '줬다 뺏는 기초연금' 나아가 '포기하는 기초연금'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와 때 지난 긴 장마와 폭우로 인해 쪽방촌에 살거나 거리에 내몰린 빈곤노인들의 삶이 얼마나 사회적 위기나 재난에 취약한지 다시 한 번 곳곳에서 터져 나오게 되었다. 이들의 삶을 다시 또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국가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해결하자. 당사자 노인, 복지·노인단체들이 오래전부터 해결을 요구하고, 언론에서도 집중 조명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다음 해 예산안에 10만 원이라도 부가급여로 지급하는 방안을 합의했다. 하지만 복지부의 소극적 입장과 국회 최종 과정에서의 무관심으로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기초연금 전액도 아니고 약 30% 금액이라도 별도로 인정하자는 제안마저 수용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2020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현재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소득인정액 계산에서 기초연금을 제외하거나 이게 어렵다면 일부라도 공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소득인정액 계산에서 기초연금을 제외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 가장 빈곤한 노인들도 기초연금을 누릴 수 있고, 의료급여 탈락 우려 없이 기초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국회, 내년 예산에 10만 원 부가급여라도 책정해야
올해 시작한 21대 국회가 기초연금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곧 2021년 예산안 심의가 본격화된다. 지난 2018년, 2019년처럼 우선 10만 원이라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는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면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의 가처분소득이 10만원 올라가고, 의료급여 탈락 우려도 줄일 수 있다. 불확실한 위기가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2020년의 사회에서 국가는 무엇을 지켜야 하며,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를 잊지 않아야 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들어 온 시민 모두에게 국가는 최소한의 지원을 당장 해야 한다.
'공공성'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는 사회에서 다시금 필요한 것이 '환대'일 것이다. 또한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이기는 방법도 환대일 것이다.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 이런 말을 한다.
노인을, 노년을 환대하는 사회를 위해 빈곤노인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자.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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