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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방역'의 '사각지대'...재외동포와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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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방역'의 '사각지대'...재외동포와 이주민

[휴먼 라이츠 브리핑]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국민이 더 안전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최근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됐다. 선별지급이든 맞춤형이든 지급 자체에 찬성하지만 이 글에서는 1차 재난지원금 대상에서도 제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환기하고자 한다.' K방역'의 강력한 안전망에서 벗어나는 이주민과 국내 재외동포들의 존재 말이다.

예를 들어 이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경기도에서는 선구적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을 시작했지만 '외국인 제외' 원칙을 고수했다. 서울시는 애초에 이주민과 함께 국내거주 재외국민들도 함께 제외했다. 제외된 사람들은 한국 국적자로 주민등록까지 마친 재일동포들이다. 활동가들이 복지행정 관계자에게 문제 제기한 결과 서울시의 방침은 신속히 변경됐다. 그 후 외국인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부여하지 않는 것을 '평등권 침해'로 판단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받아 서울시는 외국인 주민 전원 지급을 결정했다. 똑같이 인권위의 권고를 받은 경기도는 최근 결혼이민자와 국내영주권자 외 일반외국인 주민들에게는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의 경우처럼 애초에 잘 몰랐거나 의도적인 배제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무지함과 무관심은 차별과 배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는 재외동포나 이주민을 지역의 주민으로서 정당하게 인정하지 않고 '외국인'이라는 한 묶음으로 취급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인 태만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언론과 일반시민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무심했다는 것도 재난시대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의 선진적인 코로나 대책의 이면에서 소수자들의 안전과 인권문제는 여전히 예외적이거나 우선순위가 낮은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공론화하기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혐오가 사회문제가 되어왔던 중국 조선족은 코로나 발생 직후부터 보수언론이 발신하는 '중국 포비아'의 희생양이 되었다. 초기에 종교단체 '신천지'나 청도 대남병원에서의 집단감염의 경우 조선족 신도나 간병인이 감염 확대의 원인이 되었다는 부정확한 정보가 퍼지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짜뉴스는 생활방역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점차 사라져갔지만 역사적으로도 감염병과 제노포비아가 결합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재난시 공포의 원인과 책임을 타자에게 귀착시키고 이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기 쉽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조선족만큼 강력한 커뮤니티가 없거나 한국문화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고려인과 이주민들의 경우, 경제문제와 언어문제가 밀접하게 연동되고 있다. 단순노동자로서 가장 먼저 해고와 휴직 대상이 되어 경제적 궁핍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보험료나 통신비도 체납되면서 기본적인 안전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자문제 등으로 출국-재입국할 경우 자가격리로 인해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지고 원룸과 같은 좁은 거주 공간에서 가족들이 격리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진다. 고려인들은 재외동포 중에서도 한국어가 서툰 편이며 한국사회에서 나날이 갱신되는 온라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다. 자녀들은 언어의 문제와 동시에 IT장비나 기술의 부재로 인해 온라인 수업에서도 소외된다. 경제문제는 실업, 보육,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학습지체가 언어습득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지는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

항공편이 끊기면서 '불법' 상태가 된 이주민들도 증가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에 대해 법무부는 빠른 시기에 자진출국을 유도하고 질병관리본부와의 연계 아래 출입국관리법의 '통보의무 면제제도'를 운영했다. 미등록자가 안심해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피검사자의 신원정보를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할 의무에서 의료기관을 면제하는 제도다. 다만 평상시 출입국관리국의 단속의 불안 속에서 건강보험 없이 사는 미등록자들이 단속을 유예한다는 정부의 '감언'을 믿고 스스로 의료기관을 찾을지는 회의적이다. 기록이 남기를 꺼려하는 미등록자들은 언젠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검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사용해왔던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미등록체류자'로 전환하는 등 코로나 상황에서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에 나름 민감하게 대처해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초기에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내몰고 단속할 경우에는 깊숙하게 숨기 때문에 오히려 사각지대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면서 출입국관리보다는 방역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을 호소했다(국무조사실 2020.4.29). 국가방역을 최우선과제로 보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미등록자에 대한 보호가 방역 사각지대을 가시화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미등록자나 성소수자 등 평소에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쉬운 사람들이 재난시에 더 강력히 타자화되는 순간이다. '우리'와 '그들'을 양자택일로 설정할 때 국민의 안전과 소수자의 인권은 언제든지 충돌될 수 있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 방역은 우선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방역과 상관없이 인권은 늘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의 모범적인 방역체제 확립은 한편에서 이처럼 국가의 방역, 국민의 안전, 소수자의 인권 사이의 위태로운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재외동포와 이주민들은 열악한 직장과 거주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생활을 하는 한편 재난지원금이나 각종 재난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 재난 상황 속에서 언제든지 숨어야 할 사람을 가시화하거나, 거꾸로 구해야할 사람들을 비가시화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누구나가 불안을 안고 살지만 혐오와 배제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문제는 방역이 아니라 사회구조 그 자체에 있다. 이 악순환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드러냄으로써 방역·안전·인권이 함께 나아가는 정교한 체계를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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