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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괴물'이 아닌 아동의 현실을 보라

[인권으로 읽는 세상] 보호수용제가 아동 성폭력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

아동 성폭력 범죄자 조두순의 오는 12월 출소를 앞두고 '조두순 대책'이 넘쳐난다. 법무부는 일대일 보호관찰 및 24시간 위치추적 계획을 발표했고, 안산시는 CCTV 설치 확대 계획을 밝히며 관계기관 합동대책회의를 열었다. 국회에서는 연일 조두순 감시법, 접근금지법, 공개법, 격리법 등의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아동 성폭력을 비롯한 강력 범죄자들을 출소 이후에도 보호수용시설에 추가로 구금할 수 있는 '보호수용법'도 그 중 하나이다.

정치권 모두가 '피해자 보호'를 이야기하며 대책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할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조두순과 같은 '괴물'을 강력하게 처벌하기만 하면 아동 성폭력 없는 세상이 된다는 듯 더욱 강한 처벌 정책만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조두순이 감옥에 있었던 지난 12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정말로 안전했는지, 그동안 아동 성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질문하게 된다.

법이 없어서 처벌을 못했나

조두순 사건에 전 사회적 분노가 모인 이후, 2010년 형법 개정을 통해 유기징역 상한이 15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고 가중처벌 상한 역시 25년에서 50년으로 늘어났다. 형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형량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법정 형량 상향과 함께 '신상 공개'(2000년), '전자발찌와 취업 제한'(2006년), 'DNA채취'(2010년), '화학적 거세라고도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2011년)가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부가적인 조치로 도입됐다.

이렇듯 지난 20년간 강력한 처벌 정책을 반복적으로 도입하고 확대해왔지만, 정작 아동 성폭력 범죄 발생은 줄어들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매년 발표하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 분석>에 따르면, 아동 성폭력 범죄자는 2016년 2884명, 2017년 3195명, 2018년 3219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분석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입을 모아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 아동 성폭력 범죄자 중 절반 가까이가 집행유예 처분에 그친다는 것이다. 법정 형량이 늘어나고 여러 처벌 정책이 도입되었지만 정작 수많은 가해자들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빠져나가고, 그나마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경우에도 각종 감경사유를 적용받아 낮은 형량을 받곤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최근 'n번방'과 '웰컴투비디오'로 공론화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 강화된 양형기준을 발표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가해자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감경요소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한계도 명확했다. 조두순 역시 재판에서 주취로 인한 심신미약과 고령을 감경사유로 인정받아 감형된 바 있다. 2018년 형법 개정 이후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에 제약이 생겼지만, 지금까지도 수많은 성폭력 범죄 재판에서 '우발적'이라거나 '앞날이 창창하다'는 등 가해자의 입장에 선 판사의 자의적 판단이 형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며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은 법제도가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있는 법제도조차 제대로 정확하게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해왔다. 더 강한 처벌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법이나 정책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보호수용제 도입 시도가 감추는 것

지난 9월 16일 '조두순 격리법'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수용법을 김병욱 의원이 대표발의한 데 이어 9월 23일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도 '조두순 보호수용법'을 발의했다. 이미 비슷한 내용의 보호감호제도가 있었지만 열악한 시설 환경과 수용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 반복, 형기를 마친 후 장기 구금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중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2005년 폐지된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잔혹한 범죄가 있을 때마다 '사회로부터 범죄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말과 함께 재도입 시도가 끊이지 않아왔다. 2010년, 2014년, 2016년에 걸쳐 법무부는 보호수용제 도입을 위한 입법예고를 했고, 그때마다 보호감호제를 명칭만 바꿔 부활시키려는 시도라고 비판 받아왔다.

보호수용제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대상자 축소, 수용자 자율권 보장, '치료' 목적 등을 내세우며 기존의 보호감호제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포장해도 보호수용제는 국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추가적인 형벌권을 부과할 수 있는 위헌적이며 반인권적인 제도일 뿐이다. 보호감호제는 이미 폐지되었지만, 폐지 이후에도 적용 예외를 두어 지금도 여전히 수감되어 있는 피보호감호자가 있으며 이들이 기약 없는 구금에 집단단식으로 항의했다는 소식이 2017년 전해지기도 했다. 이미 범죄 행위에 대해 법에 의한 처벌을 받았음에도 재범 가능성을 이유로 또다시 가두는 것은 법에 의해 제어되어야 하는 형벌권을 언제든 국가가 남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재범 가능성을 강조하며 공포와 불안을 부추기는 것은 전과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 또한 강화한다. 설령 범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로 보기 어렵다고 해도 이는 추가적인 구금을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법원이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도록 해야 하는 문제이다. 또한 기존의 범죄자 수감제도는 징벌뿐 아니라 교정교화의 목적도 함께 가지고 있다. 보호수용제를 범죄자 교정의 수단처럼 말하는 것은 현재 수감제도가 범죄자 교정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성폭력 범죄자에게 엄격히 법을 집행하는 일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보호수용제를 대안처럼 말하며 '범죄자 인권' 대 '시민의 안전' 대립구도가 드러날 때, 아동 성폭력 문제의 본질은 가려진다. 보호수용제 도입 논의는 아동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며 '괴물'이 벌이는 잔혹한 범죄로만 성폭력을 전형화 하며 왜곡한다. 조두순 대책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에는 지난 시간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엄격하고 철저하게 법 집행을 하지 않아온 국가를 향한 분노가 깔려있다. 그럼에도 이를 성찰하지 않고 또다시 보호수용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극악한 범죄자 일부만 사회에서 떼어내면 안전이 보장되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성폭력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국가의 책임을 가리는 일이다.

'괴물'을 넘어서는 아동 성폭력의 현실

얼마 남지 않은 조두순의 출소에 많은 관심과 분노가 모이는 데에는 2008년 사건 당시 범죄의 잔혹성을 강조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며 사회적 관심이 모였던 배경이 있다. 극악무도한 아동 성폭력 범죄와 '괴물'로 표상되는 범죄자가 강조될수록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은 높아진다. 아동의 일정을 학교와 학원으로 빽빽이 채워서 낯선 사람과의 접촉 가능성을 줄이는 게 아동 성폭력에 대한 자구책처럼 여겨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실제 아동 성폭력의 대부분은 일상에서 가까운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2019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 분석>에서도 300건의 전체 성폭력 사건 중 90%가 아는 사람에 의한 범행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아동 성폭력 상담 통계에 따르면 가족과 친인척에 의한 피해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학교나 유치원에서 일어난 피해라고 한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오랜 시간 동안 은밀하게 이루어지면서 당사자와 주변인 모두 범죄로 인지하기가 어렵고, 피해를 드러내는 것을 가족이 가로막기도 한다. 가족관계 또한 성폭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음에도 가족은 친밀한 공동체라는 환상 속에 친족 성폭력은 가려져왔다. 지난 10년간 친족 성폭력 범죄는 2배 증가했지만 구속 비율은 절반으로 감소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를 드러내며 사회로부터 보호받기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기사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은 10% 내외로 추정되는데, 아동 성폭력 신고율의 경우 이보다 더 낮게 본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성을 더욱 금기시 하는 문화에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기 어렵고, 친족 성폭력의 경우 가족관계가 단절되거나 해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며, 경제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 스스로가 피해를 마주하기 어렵게 하며 대응을 가로막는다. 그동안 아동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범죄자 처벌도 강화되어 왔지만, 그 논의와 대처는 조두순 사건과 같은 특정 사건만을 주목하며 만들어져 왔다. 친족 성폭력으로 드러난 개별 사건들에 대해서는 '패륜'이라며 분노하지만, 아동에 대한 보호책임이 전적으로 가족에게 전가되는 상황에서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조건을 어떻게 바꿀지, 여전히 가정과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해도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를 어떻게 찾아내고 지원할 것인지, 아동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는 제대로 공론장에 등장하지 못했다. '괴물'과도 같은 아동 성범죄자 처벌에만 몰두하는 사이, 늘어만 가는 아동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이 제대로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조차 없는 '사회'는 변하지 않아왔다.

아동 성폭력 대책이 지녀야 할 관점

지난 20년간 아동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 사회는 범죄자에게 어떻게 더 강한 처벌을 할 것인지 에만 골몰해왔다. 조두순 출소를 계기로 다시금 아동 성폭력 대책이 논의되는 지금, 아동이 살아가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거나 은폐하며 보호수용제 도입과 더 강한 처벌만을 반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전과는 다른 방향에서 근본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더욱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아동 성폭력이 더욱 가시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피해자인 아동이 존재 자체로 취약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아동이 놓여있는 조건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아동 성폭력 대책으로 주로 제시되는 가해자 강력 처벌 방침은 아동이 놓인 취약한 조건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충분하다.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해온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책은 아동을 일방적인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 바라보며,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동에 대한 보호 의무를 가족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돌봄을 받을 아동의 권리를 국가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피해를 드러내기 힘든 아동의 목소리를 이 사회가 어떻게 들을지 고민할 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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