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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없어도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 바뀌어야

2020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의 한 청소년이 거리에 나가 한국의 원외정당, 노동당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노동당에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다. 선거 직후 그 청소년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8월, 노동당 부산시당위원장은 청소년이 선거운동을 하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1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의 '공직선거법'은 복잡하고 이런저런 규제도 많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데서 선거법 위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런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단지 현행 선거법이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현재는 만 18세 미만)의 선거운동은 모두 불법'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즉, 만 18세 이상이 했다면 아무 문제 없을 일인데, 오로지 나이가 문제였던 것이다.

청소년의 입을 막아온 악법

'공직선거법' 제60조는 "미성년자(18세 미만의 자를 말한다)"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선거운동'이란 보통 떠올리는 것보다 훨씬 그 범위가 넓다. 후보자나 선거사무원의 조직적 선거운동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선거 관련 표현이나 참여가 모두 해당되는 것이다. 법에서는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제58조)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누구를 찍어 달라고 말하기만 해도 선거운동이다. 인터넷 기사에 어느 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댓글을 달아도 선거운동이다. 비록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등은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그 '단순한' 의견개진이나 표시가 대체 어디까지인지는 불분명하다. 일단 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 및 판례상으로는, 어느 후보가 꼭 되어야 한다거나 어디에 표를 달라는 내용을 게시하는 것은 확실하게 선거운동에 해당한다.

이처럼 너무 포괄적으로 규정된 선거운동 개념은 진작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선거법의 여러 규제와 맞물려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직선거법'에 따라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선거운동을 아예 금지당한다. 그러니 사실상 선거 기간만 되면, 청소년들은 선거에 관련된 정치적 표현을 거의 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선관위가 인지하여 조치할 가능성은 낮지만) 청소년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누구를 찍으라고 이야기하기만 해도 불법이 된다. 공개적 지지 선언 같은 것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일견 황당하게까지 보이는 이 악법이 실제 위력을 발휘한 것도 여러 차례다. 예컨대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관련 인터넷 UCC(User Creative Content)에 대한 기준을 발표했는데, 그중에는 '청소년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으므로 UCC도 만들거나 게시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2012년 총선을 앞둔 3월, 한 청소년이 서울 관악을 지역 후보 단일화에서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해 달라는 게시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선관위로부터 삭제 요구 등 제재를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2018년 지방 선거, 몇몇 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는 선거법을 비판하며 "나는 가족에게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찍으라고 했다. 그럼 나는 선거법을 위반한 셈이니, 자수한다."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 삭제 요구 등을 받았다. 그중 인천의 한 청소년은 선관위에게 고발당하여 경찰에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한다거나 반대한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선거권은 18세로 확대되었지만……

2019년 12월,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2020년 총선은 만 18세, 10대/청소년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 일부라도 참여할 수 있는 첫 선거로 치러졌다. 사실 선거운동 금지 조항도 이전까지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적용되던 것이었는데, 선거권이 만 18세로 확대되면서 선거운동 관련 기준 역시 동시에 만 18세로 완화된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 조항 때문에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첫걸음인 18세 선거권의 의미도 퇴색된 면이 있다.

우선, 선거권 연령은 낮춰졌더라도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 때문에 청소년들의 집단적 정치 참여는 여러모로 발목을 잡히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87조는 "구성원의 과반수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로 이루어진 기관·단체"는, 단체나 대표의 명의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금지한다. 이는 청소년들이나 고등학생 등이 주된 회원인 단체들의 각종 선거 관련 활동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후보자나 정당 관계자를 초대하여 정견을 묻거나 요구를 전달하는 대담·토론회를 여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다.

그러니 가령 어느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교육감 후보들을 초대하여 교육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하려 하면 불법이다. 설령 학생회장이나 임원이 만 18세 이상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학생회칙상 학생회의 회원은 '전교 재학생'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고등학교 학생회 구성원은 과반이 만 18세 미만,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청소년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 18세 유권자 중 고등학생이거나 10대/청소년의 신분인 사람들의 경우 생활하는 공간이나 소속된 단체 등은 고등학생들의 모임이거나 청소년단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로 인해 그러한 단체 차원에서의 선거 관련 활동은 대부분 할 수 없게 막혀 있다. 만 18세 선거권이 시행되었지만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선거의 장에서 알리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제약이 많은 것이다.

또한 만 18세가 되는 생일이 지난 이후에야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기에, 중·고등학교 등의 공간에서 선거에 관련된 정치적 발언이나 활동이 위축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예를 들면, 한 교실에서도 생일이 지나 만 18세가 된 청소년은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청소년은 청소년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선거법 때문에 자유로운 토론의 기회나 공정한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이런 비상식적인 법 탓에 오해가 생겨 사람들이 더욱 위축되기도 했다. 만 18세 미만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운동도 금지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던 것이다. 현행 선거법은 청소년'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금지하지만 청소년'에게' 선거운동을 하는 것, 예컨대 청소년들이 듣는 자리에서 지지를 호소한다거나 청소년에게 후보자가 명함을 주는 일 등은 금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 법 조항에 여러 사회적 고정관념이 얽혀, 주로 청소년들이 있는 곳(고등학교나 등하굣길 등)에서는 선거에 관한 활동을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잘못된 인식을 갖기 십상이었다. 중앙선관위가 '학교 내외'에서의 선거운동 금지 여부를 거론하며 국회에 보완 입법을 요청한 것도 이런 오해를 부추겼다. 이처럼 청소년이라서 정치나 선거에 관련되어선 안 될 것만 같은 거부감, 청소년들은 선거 주변에 얼씬거려서도 안 될 것만 같고 청소년들에게 그런 내용을 알려서도 안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야말로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란 악법이 초래하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도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본다. 2022년 지방선거, 어느 지역 교육감 후보가, '학생들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요즘 애들 머리 기르고 하는 것 보면 다 불량 청소년 같고 너무 보기 싫다, 학생인권조례들 폐지하고, 옛날처럼 밤 11시까지 공부시켜야 한다'라는 발언을 했다. 아마도 다수의 청소년들이 분개할 것이다. 그들은 SNS에 그 후보를 비판하는 반대 의견을 쓰기도 할 것이고, 그 후보의 낙선을 요구하는 게시물을 공유하기도 할 것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그 청소년들을 모두 불법 선거운동을 한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지금의 선거법이다.

'공직선거법'은 시민들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밑바탕은, 구성원들이 정치적 의견을 밝히고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비판 또는 지지를 이야기하는 등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선거운동의 자유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형성하는 것이 선거권의 전제가 된다고 그 의의를 인정한 바 있다. 사람들의 말을 틀어막고 위축시키는 선거법은 전면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나 청소년이라는,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이러한 아주 기본적인 인권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도 결코 정당할 수 없다. 청소년도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 인정한다면 말이다.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의 문제와는 별개로 선거운동 나이 제한은 폐지되어야 한다. 선거권 연령과 선거 관련 정치적 표현을 허용하는 연령이 일치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투표 참여도 할 수 없는데 말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이중의 배제일 뿐이다. 18세 선거권 이후의 과제로 정부와 국회가 한시라도 빨리 18세 미만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 정당활동 금지 등의 적폐 법률들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총선 때 기소된 노동당 당직자도 처벌을 면할 수 있기를, 나아가서는 2022년 대선과 지선에서는 청소년들의 정치·선거 참여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이 교육감 후보를 비판했다고 선관위에게 경고와 고발을 당하는 모습 대신에, 청소년들이 교육감 후보 지지 선언 등의 형태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현실이 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청소년들이 만든 단체, 학생회 등이 경쟁과 차별로 뒤틀린 교육 제도를 비롯해 여러 청소년인권 현안에 대해 공약을 내놓으라고 대통령 후보들에게 요구하고 공약을 평가하며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유권자들이 그런 청소년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투표 선택에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또 한발 진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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