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미‧중 GDP 격차축소 가속화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매우 빠르게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면서 미‧중 간의 전략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의 GDP는 1960년 미국의 10%, 미·중이 수교에 합의한 1972년 2월 9%에 불과했으나, 2010년 말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됐을 때는 미국 GDP의 40%에 도달했다.
미국 대외정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 패권을 거머쥔 20세기 초부터 미국은 자국 GDP의 40%를 넘는 경제대국이 부상할 경우 무역, 금융, 자원을 이용해 도전을 좌절시키곤 했다. 전후 첫 번째 목표가 1970년대의 소련이었고, 두 번째가 1980년대의 일본, 이제 세 번째로 2000년대의 중국이다.
소련이 미국 GDP의 42%에 달한 1970년에 미국이 전략방위구상(SDI)을 포함해 대대적인 군비경쟁을 일으킨데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석유가 하락으로 소련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이 미국 GDP의 38%에 달한 1985년, 플라자합의를 비롯해 본격적인 엔고 현상을 야기해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에 빠져들게 했다.
중국이 미국 GDP의 40%를 뛰어넘게 된 계기는 2007~8년 무렵으로, 당시 미국은 리먼 브라더스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중국에 적극 대처할 수 없었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경제위기의 급한 불을 끄고 이라크전쟁에서 한 발 뺀 뒤 '아시아 재균형정책'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은 고속성장을 계속해 2019년 미국 GDP의 63% 수준까지 뒤쫓아온 데 이어,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올해 말에는 70%에 이르러 격차를 좁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GDP 성장률 예상치를 보면, 올해 미국은 –8.0%, 중국은 +1.0%이다. 미국 부르킹스 연구소는 2028년 즈음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봉합과 첨단기술전쟁 본격화
중국의 고속성장은 미국이 주도해 만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이루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만든 국제규범에 따른 정공법으로 중국의 도전을 억제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해 중국을 때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중 공세는 무역분야에서 시작됐으나 첨단기술과 군사, 이데올로기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로 시작된 양국의 무역전쟁은 올해 1월에 6개월마다 재연장을 결정하기로 하는 내용의 제1차 무역합의를 채택해 일단 위기를 넘겼다. 얼마 전 미‧중 무역합의의 효력을 연장하기로 해 내년 1월 차기 행정부 출범 때까지는 무역전쟁이 휴전상태를 이어가게 되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서방 국가들의 대규모 투자를 받아들여 제품을 값싸게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이처럼 중국은 글로벌가치사슬(GVC)의 최하위 단위로 세계 경제에 관계 맺기 시작했으나, 이제는 하청생산기지를 넘어 첨단기술제품의 개발로 글로벌가치사슬의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일본경제신문>(2020.8.13.)이 발표한 2019년 74개 세계 첨단기술제품의 시장점유율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2018년에는 1위 제품이 10개로 세계 3위였으나 2019년에는 1위 제품이 12개가 되었다. 이로써 중국은 1위 제품이 11개에서 7개로 줄어든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제2위의 첨단기술제품 수출국이 되었다.
중국은 첨단기술 분야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의 지위까지 넘보며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한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2015년 중국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내걸며 대규모 투자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기술의 자립화를 이룬다는 야심에 찬 구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은 첨단기술제품의 원천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반인 클라우드 서비스, 컴퓨터 서버, 반도체 제조장비 등에서 여전히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미국은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소재인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분야에서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추진해 중국을 글로벌가치사슬에서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작년에 중국 최대의 D램 업체인 푸젠진화반도체(JHICC) 수출입을 금지한 데 이어, 세계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 회사인 타이완반도체제조회사(TSCM)의 중국 위탁생산도 금지했다.
미국의 대중 공세는 작년 5월 화웨이와 114개 계열사에 대한 거래제한에서 시작해 금년 6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국가안보위협기업 지정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미국의 칼끝은 텐센트(위챗), 바이두, 알리바바 등 IT기업을 향하고 있다.
높아지는 군사적 긴장과 이데올로기 전쟁
미국은 타이완에 무기수출을 확대하고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주장과 활동을 국제해양법상 '불법'으로 규정하며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을 강행하는 등 대중 공세를 군사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작년 6월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타이완을 국가로 호칭한 데 이어, 7월에는 타이완에 22억 달러어치 무기수출을 승인하고 올해도 4대 이상의 정교한 무인항공기의 판매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8월 9~11일 1979년 단교 이래 40년 만에 최고위급 인사인 알렉스 에이자 미 보건후생부장관이 타이완을 방문해 '보건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이어서 에이자 장관은 차이잉원 총통과 회담을 갖고 미-타이완 FTA 문제를 논의하였다.
미국은 군사력 증강을 위해 2018년 2월 '핵태세보고서(NPR)'에서 저강도 핵무기 개발을 담은 신핵전략을 발표했는데, 지난해 12월에는 우주군을 창설했으며, 그해 8월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탈퇴한 뒤 인도-태평양 지역에 중거리탄도미사일의 전진배치를 구상하고 있다. 또한 내년 2월에 끝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연장 조건으로 중국이 포함되는 New-INF조약을 제시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항모킬러 둥펑-21D와 괌 킬러 둥펑-26의 실전배치로 미국의 서태평양 전진기지 괌도가 중국군 탄도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가자 이곳에 배치했던 B-1B 전략폭격기, B-2 스텔스 폭격기를 미 본토에 이동배치하는 대신에 이 지역으로 동원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8월 17일 동해 해상에서 미 B-1B 전략폭격기 4대, B-2 스텔스 폭격기 2대 등 총 6대가 동원된 대규모 공중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은 2014년 이래 6년만인 올해 7월 미 항모 2척을 동원한 '자유의 항행 작전'을 잇달아 실시하였다. 동중국해에서 타이완군의 한광(漢光)훈련에 맞춰 해상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남중국해에서도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했다. 한편 올해 들어 현재까지 미‧일 양국은 연합해상훈련을 7차례나 실시했다.
대중국 공세는 이데올로기 분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올해 5월 미 백악관은 중국전략보고서에서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이데올로기 경쟁으로 규정하고 중국이 자유권 등 미국의 신념에 도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시진핑 정권에 들어와 강화된 당국가 체계를 비판하며 시진핑을 정부수반인 국가주석이 아니라 공산당 책임자인 총서기로 불렀다.
중국 정부가 2017년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을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로 위장해 설치한 정치범 캠프에 100만 명을 강제수용하고, 올해 5월 28일 전인대에서 홍콩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자 미국은 중국정부의 인권탄압을 이슈화하고 있다. 또한 7월 21일에는 휴스턴 중국영사관을 폐쇄시켰다.
7월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을 '세계 패권 장악에 나선 전체주의 독재국가'라 비난하며 중국 반체제 인사와 손잡고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해 세계적 차원에서 공산당 체제 변화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중의 세 대결과 한국의 길
본격화된 미‧중 전략경쟁은 이제 양국 차원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세 대결로 이어지고 있다. 양국은 기존 동맹국들이나 일대일로 참가국 등 우호세력의 결집에 나서고 중간 입장의 국가들을 끌어당기거나 최소한 중립 입장에 서도록 외교활동을 하고 있다.
백악관의 중국전략보고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한국과 일본, 호주, 대만, 인도, 아세안의 정책이 비전과 접근법에서 서로 부합된다며 협력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주한미군, 주일미군과 인도-태평양사령부를 통해 역내 국가들과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도 일대일로 참가국들을 중심으로 세 결집에 나섰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서도 왕이 외교부장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외무장관과 전략대화를 가진 뒤 이탈리아‧네덜란드‧노르웨이‧프랑스‧독일 등 유럽 5개국 순방에 나섰다.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싱가포르 방문에 이어 부산을 방문해 8월 22일 한‧중 전략대화를 가졌다.
북한이 코로나19 중국책임론, 홍콩보안법 제정에 대해 중국편을 들고 있다. 이처럼 돈독한 북‧중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외교수장이 방한한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전선에 한국의 참여를 막고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양국 협력을 강화할 것을 설득하려는 목적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대미 관계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중 전략대화를 연 것은 우리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속통로의 신설 및 확대 운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막힌 한‧중 교류를 회복하고, 한‧중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및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연내 서명을 마무리해 경제활력을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로서는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해 북한의 전략도발을 막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만약 북한이 오는 11월 3일 미 대선 이전에 북극성 3호와 같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도발을 감행할 경우, 내년 1월 어떤 미 행정부가 들어서든 북‧미 대화 재개가 어렵게 될 것이다. 이번 한·중 간에 조율이 이루어진 대로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코로나19 상황을 보아가며 6년 만에 방한한다면 이 같은 우리의 수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미 대선이 끝난 뒤에는 미‧중 전략경쟁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높고,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가 미‧중 대결의 중심에 놓이게 될 경우 전쟁의 위험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이 한반도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과 관련해 현재 북한 핵 문제,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대일로 구상 문제, 중거리탄도미사일(INF) 배치 문제, 남중국해 해상교통로 문제, 화웨이 제재 동참 문제,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문제 등은 우리의 안보적, 경제적 이해가 걸린 과제들이다.
북한 핵문제는 미‧중의 선택이 아니라 양국의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이미 개방성, 포용성, 투명성 원칙에 입각한 신남방‧신북방 정책과의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중국을 겨냥한 공격형 INF 배치는 수용하기 어렵지만, 남중국해 해상교통로 확보 문제는 안보적, 경제적으로 우리 국익과 직결된다.
화웨이 제재 동참은 정부 차원과 기업 차원을 구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안보문제가 걸려있어 정부의 대미 협력은 불가피하나, 기업 차원에서 화웨이 장비의 사용은 스스로 판단할 사안이다. 전방위적인 경제번영네트워크 참여는 어려울 것이나 첨단기술분야 등 제한적인 참여는 가능할 수 있다.
우리 국익과 직접 관련 없는 사안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면서도 미‧중의 요망사항에 대해 헌법적 가치와 경제적 이익, 군사적 연루 위험성 등을 고려해 협력의 대상과 범위를 선별한 뒤 당당함과 분명한 설득으로 적극적인 협의에 나서야 한다. 대국의 압력이나 눈치보기가 아니라 우리의 원칙과 국익에 기초해 전략적인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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