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하 계급투쟁의 시대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 운영만 재벌과 관피아의 기득권 구체제로 회귀하고 만 게 아니다.
21대 국회 또한 여전히 70여 년 동안 온갖 기기묘묘한 쇼를 연출해 왔던 구시대 여의도 기득권 극장정치를 무늬만 바꾸어 계속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보수-진보가 아닌, 0.1% 금수저와 99.9% 흙수저의 상하 계급투쟁 시대를 살고 있다. 보수-진보의 진영논리는 착각과 착시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강남의 부동산 금수저 계급은 대를 이어 금수저를 낳는다. 강남에 아파트나 집을 가지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해서 노영민 비서실장과 청와대 수석들을 보라.
흙수저 계급 출신 청년들이 금수저 계급으로 신분 상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선 대학부터 1990년대 이전과 달리 이른바 신분 상승의 유력한 사다리였던 '스카이대(서울대, 고대, 연대의 영어 명칭 앞글자만을 합쳐 SKY라고 부른다)'에는 흙수저들이 발붙일 수조차 없다. 부동산 광풍과 똑같이 돈을 앞세운 금수저의 사교육 광풍을 당해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20대 청년 기자와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등 이른바 20대 '사짜'들도 거의 대부분 강남을 비롯한 금수저 계급 출신이다.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나누었던 과거의 계급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사회변화와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의 계급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지금은 국제 금융거래의 단지 1~2%만이 무역 거래고 나머지 전부가 환투기 거래인 금융자본주의 시대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부자는 금융자산과 부동산 부자다.
한국의 부자는 그들 스스로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67억 원 이상은 갖고 있어야 부자라고 말할 정도이다.(KB경영보고서 '2019 한국 부자보고서' 참고)
기후위기 또한 계급투쟁이다
기후위기 비상행동 또한 이제는 명확히 금수저와 흙수저의 계급투쟁이다.
기후위기 가속화를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99.9% 흙수저 계급이 연대와 연합의 정치투쟁을 통해 국가와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금수저 계급과 계급투쟁에서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
보수는 핵-화석연료 마피아 세력이고 진보는 햇빛발전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세력이라는 식의 진영논리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진보로 분류되는 참여연대 출신 김상조(청와대 정책실장)의 그린뉴딜 알레르기 반응은 단지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송영길(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 등 586세대 가운데 상당수가 찬핵을 공공연히 표방하거나 아니면 겉으로는 침묵하면서 찬핵 입장을 견지한다.
기후위기의 적응과 극복 대책으로서 경제성장과 개발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한시라도 빨리 생태국가와 생태사회로 밑바닥부터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면 상황은 더 암울하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의 엘리트 금수저들은 경제성장과 개발 이데올로기 중독자들이다. 이들의 중독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치료 방법은 그들로부터 금수저를 빼앗는 수밖에 없다.
도대체 100만년 이상 밀봉해서 안전하게 저장하고 관리할 수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방법이 있냐고 물으면 이들은 침묵한다.
도대체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다 고갈되면 어떻게 경제성장과 개발이 가능하냐고 물으면 이들은 침묵한다.
도대체 지구 기온이 1.5도 올라 한반도 해안지대가 바닷물에 잠기고 나머지는 사람이 아예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이들은 침묵한다.
돌멩이가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조만간 과학기술이 '짠'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들고 나타날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만병통치약이자 답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온전히 정신을 차리고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금수저 계급 가운데서도 갈수록 점점 더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기후는 정치다
우리는 이런 엘리트 금수저 계급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그것도 무장투쟁이 아니라 비폭력 평화와 공존의 끈질긴 정치투쟁, 대화와 설득을 통한 패러다임 전환의 생태적 전환 방식으로 말이다.
금수저 계급은 타자를 죽이는 경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적자생존을 뼛속까지 체질화한 극단의 개인주의자들이다.
이들에게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속에서의 공존과 공생, 연민과 공감, 공동선 추구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도 이들은 화성 이주니 뉴질랜드 지하 벙커니 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지극히 개별화된 방책밖에 없다.
수해가 난 지역에 생업을 팽개치고 달려가 돕는 사람들은 우리의 평범한 주권자들, 장삼이사 이웃들이다. 시간이 돈인 금수저 계급은 결코 그런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
미디어에 나오는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이는 쇼일 뿐이다.
결국 금수저-흙수저의 계급이 없는 세상, 20대 청년들이 공정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는 99.9% 흙수저들이 각성해서 지금의 체제를 뒤집어엎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당연히 기후는 정치다.
정치의 주체를 금수저 계급에서 흙수저 계급으로 바꾸어야 경제성장과 개발을 끝장내고 안전하고 공정하게 살 수 있는 지역순환 경제의 공생공락 사회,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 사회로 전환이 가능해진다.
온실가스 배출을 온실가스 흡수의 한도 훨씬 이하로 감축하는 탄소제로, 탄소 마이너스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당연히 기후정치는 선거정치이자 운동정치다.
금수저 계급의 엘리트 대의정을 무너뜨릴 수 있는 흙수저 계급의 풀뿌리 민주정치는 99.9% 인민들의 연대연합 정치이자 선거정치와 운동정치를 결합한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정치다.
그래서 운동정치를 부정하고 오직 선거정치의 엘리트 대의정만을 민주주의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최장집 류의 금수저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은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악질 범죄집단의 하수인들일 뿐이다.
시민사회운동의 시대는 끝났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죽 시민사회운동은 필요하고 또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운동이 한국 사회와 국가의 의제를 주도하고 선거를 포함해서 시민 정치운동을 주도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보수-진보의 진영운동 시대 또한 지났다.
'6월 항쟁'을 기점으로 민주화운동의 시대가 저문 것과 똑같다.
1987년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이끌었던 학생들과 시민, 노동자-농민들은 직선제 헌법 개정과 함께 6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직선제라는 선거제도가 곧바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7년 12월의 대선에서 당시 거의 모든 민주화운동 단체들은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 후보 단일화론, 독자 후보론 등으로 갈가리 찢겨 분열되고 말았다.
연대연합의 운동정치를 통해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한 직후 돌아온 선거정치는 운동정치의 연대연합을 냉엄하게 무너뜨리고 말았다.
무너졌던 운동정치가 다시 연대연합을 통해 부활한 것이 2016/2017 촛불혁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운동정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선거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촛불을 통해 시민에서 주권자로 한 차원 높게 각성한 인민들은 이제 극장정치의 단순한 관객으로만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는다.
주권자들이 주체로 나서는 운동정치는 노동현장을 비롯한 삶의 현장 곳곳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연대와 연합의 운동정치 무지개를 꽃피우는 중이다.
녹색당-정의당의 집권 전략, 합당 또는 풀뿌리 연합정치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다.
정당은 명확히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고자 하는 강령을 가지고 이에 동의하는 당원들을 조직해서 정당정치 활동을 벌인다.
대의정에서 정당의 집권은 오직 선거에서 이기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정당의 모든 활동은 선거 정치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당 또한 오직 선거만을 위한 정당이었다.
그런데 기존의 정당과 전혀 다른 새로운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정치 전략을 내세우며 등장한 것이 진보정당과 녹색당이다.
포데모스(Podemos·스페인 극좌 정당), 시리자(Syriza·그리스 극좌파연합),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이탈리아 생태주의 정당) 등 대의정의 한계를 돌파하고 극복하기 위해 밑바닥에서부터 지역 주민의 생활 정치운동을 조직해 대의정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결합한 서구와 미국의 새로운 정치세력 전략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한국 정당은 선거를 오직 여의도 엘리트 유명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정당 분열과 통합 등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이른바 중앙정치의 자극성 드라마 무대로 활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 선거는 정당의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주권자의 연대연합 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폭넓은 정치 무대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특히 풀뿌리 지역에서는 합종연횡(合從連橫)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양한 연합정치 전략을 지역 실정에 맞게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국공합작 전략은 성공한 연합정치 전략의 대표 사례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녹색당과 진보정당은 이 같은 선거정치 무대를 주권자가 주체로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정치 무대로 얼마든지 충분히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녹색-진보 정당은 기존 정당처럼 이른바 중앙무대의 녹색-진보 엘리트 극장정치 쇼를 연출했을 뿐이다. 풀뿌리 지역주권자를 조직하는 운동정치 없는 선거정치, 그것이 녹색-진보정당이 21대 총선에서 궤멸 수준으로 패배한 핵심 요인이다.
선거구 단위인 226개 지방자치단체에는 먹거리, 미세먼지, 교육, 교통, 의료, 복지 등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 의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녹색-진보 정치활동가는 거대 양당의 정치꾼들처럼 이들 지역 주권자들의 민원해결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민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절차와 방법을 알려주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실행하도록 주민을 조직하는 주권자 민주주의 정치의 촉진자 역할, 이것이야말로 녹색-진보 정치활동가가 충분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운동정치다.(☞ 관련 기사 : 진보-녹색 정당운동은 왜 실패했나, 한국 정치의 현장은 시군구 지역이다)
당장 수많은 토론회와 설명회, 간담회를 통해 화석연료 자동차의 도심지 통행을 단계별로 제한하고, 도로를 도시의 가로수 허파 숲과 햇빛발전소-바람발전소로 만드는 주민조직화 운동정치는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지역 주민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후위기와 미세먼지의 지역정치 활동이다.
지역 주권자 10명을 풀뿌리 연합정치의 주체로 조직하고, 이들이 지역주민 150명을 조직하고, 그리고 지역 유권자 3.5%의 집회와 시위 행동을 이끌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또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실 녹색당과 정의당은 지금 강령과 정책상 그리 큰 차이도 없다. 이른바 스타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아니라면 합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합당하지 않더라도 집권의지가 있다면 선거정치의 시공간에서 연합정치 전략은 필수다.
녹색-진보정당의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2022년의 대선과 지방선거는 녹색-진보정당의 주권자 연합정치가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에 앞서 내년의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 또한 최상의 기회다.
지금부터라도 밑바닥 풀뿌리 지역에서부터 민주주의 운동정치를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녹색당과 정의당의 혁신이란 이런 집권 정치전략의 혁신을 말한다.
하다못해 기본소득에서부터 ‘약자와의 동행’이란 의제를 던진 미래통합당의 혁신안에 견주어 녹색당-정의당 혁신위원회는 아예 존재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녹색-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
풀뿌리 지역에는 소수지만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쌓아 온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 농민운동, 협동조합운동, 마을공동체운동, 여성운동, 교육운동, 보건의료운동, 복지운동 등의 세력이 존재한다.
녹색당과 진보정당 정치활동가들은 지역이 중심이고 지역이 중앙이라는 전략 아래 이들을 모두 묶어 세워 지역운동정치의 연대연합으로 이끌어내는 아교와도 같은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중앙당 정치에 해바라기처럼 줄 세워 서있는 지역정치 지형을 밑에서부터 바꿀 수 있다.
나아가 녹색과 진보 가치에 동의하는 민주당 당원들까지 합종연횡한다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내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는 변방의 저 밑바닥 풀뿌리 흙수저 계급부터 스스로 나서서 주권을 탈환하고 운동정치가 승리하는 최초의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는 기후정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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