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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에 '민주주의'가 있었나?

[시민정치시평] 정부 정책, 형해화된 공론화 과정

지난 7월 14일 정부는 '대한민국 대전환'이라는 야심찬 구호 아래 "위기 극복과 코로나 이후 글로벌 경제 선도를 위한 국가발전전략"의 일환으로 한국판 뉴딜을 내놓았다. 성공적 코로나 방역에 대한 국제적 찬사와 총선 압승을 통해 드러난 국내 정치적 지지를 통해 드러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발표 이후의 과정은 정부의 기대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주식시장은 요동치고 지차제와 공기업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기 시작했으나 어디서고 한국판 뉴딜이나 그린뉴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기후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일관된 어조로 탈탄소 목표도 없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정부의 그린뉴딜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들을 내보냈다. 한때 그린뉴딜에 큰 기대감을 보였던 국제사회와 외신의 반응도 싸늘하긴 마찬가지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에 뒤이어 나온 그린뉴딜을 자랑하고 싶었겠지만 외신은 그린뉴딜을 한다면서 탄소감축 목표도 없고 해외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한국 정부의 위선을 꼬집기만 했다.

이런 식이라면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그린뉴딜 논의는 티핑 포인트에 다다른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극대화시켜온 경제위기라는 두 축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왔다. 여기에는 이 두 위기가 자연과 인간을 이윤 증식의 수단으로 삼아 성장만을 추구해왔던 지속가능하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성찰이 자리잡고 있다. '이윤보다 지구,' '이윤보다 사람,' '기후변화 말고 체제변화'와 같은 구호들은 이런 맥락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기후와 경제 부정의(injustice)에 대한 성찰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 해왔다. 선거라는 형식은 존재하지만 민주주의가 구현하고자 했던 실질적 내용, 예컨데 정치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공동 결정과 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의 전문은 협약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에 대한 모든 당사자들의 정보 접근, 교육, 훈련, 참여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일정 정도의 권력을 필요하는 것이기에 힘이 없는 취약계층의 경우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주어야 한다(empowerment)는 원칙도 명시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논의되는 그린뉴딜에서는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가 보다 확고하게 제시되었다. 2019년 2월 의회에 제출된 미국의 그린뉴딜 결의안은 사회적 취약계층과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권리 침해 방지와 이들의 주도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민주적-참여적 프로세스를 그린뉴딜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참여했던 버니 샌더스는 '21세기 경제 권리장전'을 통해 양질의 임금, 의료, 교육, 주거, 환경, 연금의 보장이 그린뉴딜의 토대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고, 이러한 원칙은 이후 대선 후보로 확실시된 조 바이든의 정책권고안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영국에서 논의되었던 그린뉴딜안은 이윤 추구가 최고의 목표인 민간기업으로는 효과적인 탈탄소화가 어렵다는 인식 아래 공공투자와 에너지, 물, 철도 등 기간 산업에 대한 공공적, 민주적 소유의 확대를 통한 발빠른 탄소제로 사회로의 이행을 목표로 설정했다. 여기에 주거, 교육, 의료, 정보 등 보편 서비스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내용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유럽연합의 시장 중심적 그린딜을 비판하는 '유럽의 민주주의 운동 2025(DiEM25)'도 경제위기, 기후 환경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지속가능성, 연대, 공공성, 환경정의와 같은 원리를 제시했다.

그린뉴딜은 오로지 민주주의 강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은 이처럼 해외 모든 그린뉴딜 논의의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의 그린뉴딜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정부의 그린뉴딜은 대통령이 5월 13일 각료들과의 비공개 토론에서 '그린뉴딜이 요즘 화두'라며 일자리 창출과 외교적 필요성을 근거로 몇몇 부처에 그린뉴딜 관련 보고서를 요청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일주일 후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하기로 결정했고, 다시 열흘 뒤 정부는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도시 인프라의 녹색 전환, 녹색산업 생태계, 저탄소 분산형 에너지를 축으로 하는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았다. 급조된 정책 내용은 허술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7월 14일 발표된 계획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불과 두 달 만에 밀실에서 뚝딱 만들어진 그린뉴딜 정책의 작성 과정에서 어떤 민주적 참여가 있었다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환경부가 주관한 '탈탄소 전환위원회'의 경우 산학연 관련 전문가 14인과 시민사회와 청년 14인이 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여기에는 노동자, 농민, 지역주민,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표할만한 사람 하나 없었다.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수립 과정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위원회가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과 '공론화'를 표방해왔다는 점이다.

이처럼 형해화된 '공론화' 혹은 '시민사회 참여' 방식은 얼마전 월성원전 맥스터(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증설 계획의 '공론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56%에 가까운 주민들이 맥스터에 반대를 표했으나 정부가 145명의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1%로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원전 인근 양남면의 경우 시민참여단 39명 중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이었는데, 이 때문에 지역 단체들은 정부가 반대의견을 배제한 '시민참여단'을 구성해 주민의견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언제나 '원칙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졌다' 말하지만 대표성 없는 '공론화'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고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을 야기해왔다. 과거 밀양의 송전탑 건설로 인한 갈등이나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 시설 입지나 사업자 선정에서 배제된 주민들의 저항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탈탄소 사회로의 신속한 전환도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예산 투입에 따른 산출에, 기후 전문가들은 재생 에너지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와중에 많은 이들은 불안에 떨며 정부 정책과 '전환'이라는 거대 담론을 의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은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힘과 의지를 모아낼 때에만 가능한데, 이를 가능케 해주는 유일한 길이 민주주의의 복원이라는 점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여야 할 때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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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는 참여연대 부설 연구기관으로, 참여민주사회 모델 개발, 대안 정책의 생산과 공론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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