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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 세상인데, 차별을 금지한다고 없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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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 세상인데, 차별을 금지한다고 없어질까

[인권으로 읽는 세상]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세상

지난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을 포함한 10명의 국회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 뒤이어 국가인권위원회도 평등법 제정을 권고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호응했다. 2013년 민주당이 혐오세력에 밀려 차별금지법을 자진 철회한 이후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사이, 기성 언론과 정치권은 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으로만 논의를 축소시켜왔다.

그럼에도 21대 국회 개원 두 달 만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현재는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앞장서온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다. 발의를 넘어 제정까지 나아가기 위해 왜곡된 지형에서 벗어나서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세상을 들여다보고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의 원칙과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차별을 금지하나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교육, 고용, 재화와 용역, 행정과 사법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규제하는 내용을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교육이나 행정·사법과 같이 공공 영역에서의 차별 규제는 이해할 수 있지만,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고용하고 시장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하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 안팎에서 교육을 받고(교육), 일자리를 구하고(고용),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거래하고(재화와 용역), 재난 지원금과 같은 행정 서비스를 받거나 소송을 하는 과정(행정·사법)은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수적이라는 측면에서 '공적'인 성격을 가진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차별금지법은 공적 성격을 지닌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에 대해서 규제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원칙을 확인할 때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나 왜곡을 걷어낼 수 있다.

차별금지법의 기본 구조는 13년 전 처음 발의된 노무현 정부의 법안도 다르지 않다. 차별금지법이 사적 관계가 아니라 공중(公衆)을 대상으로 하는 영역에 한해 차별을 규제하고, 차별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이라는 사실은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수 기독교 세력은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왜곡하며 차별금지법이 마치 자신들의 교리를 부정하고 종교를 탄압할 것처럼 설명한다. 헌법재판관 출신 법조인조차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목사가 교리에 따른 설교도 못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설교가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설교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은 개별 교회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를 규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당 설교를 학교나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듣게 하거나, 방송을 통해서 송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설교가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차별금지법은 이를 규제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교회 재단이 운영하는 미션스쿨이나 사회복지 시설 등도 차별금지법이 규제하는 대상에 포함된다.

해당 시설들은 소유나 운영 주체가 교회일지라도 이용하는 사람들은 종교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가능한 공공시설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학교나 사회복지시설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이유도 이 공적 성격 때문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 공적 영역에서 기능한다. 특정한 종교를 탄압하기 위해서도, 교리의 내용 자체를 규제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나 사회복지시설과 같이 공중이 이용하는 공적 공간에서는 교회든, 개인이든, 국가든 운영 주체와 상관없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사적 영역에 대한 과도한 규제?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사장이 직원을 마음대로 뽑지 못하게 된다거나, 작은 음식점 같은 곳에서 '노키즈존'과 같은 영업방식이 불가능해져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적 소유물'인 회사나 영업장의 운영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너무 과도하다는 식이다. 그러나 채용 목적에 부합하는 경력을 지닌 사람을 특채로 뽑는 일이나, 사적인 모임에서 나이를 제한하는 일은 차별금지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흔히 시장은 사인들이 거래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적 영역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개별 사업체의 고용 과정이나 영업 방침에 차별금지법이 개입하는 이유는, 사업체가 결국 '시장'이라는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을 통해 노동력을 채용하거나 물건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 운용이 사회 구성원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노동시장을 통해 고용된 노동자의 삶이 일정한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이유, 병원에서 환자를 가려서 받지 못하도록 진료거부를 규제하는 이유나와 마찬가지다. 개인이나 법인이 공중을 대상으로 노동력을 고용하고 물건을 판매해 이득을 취하는 과정은 더 이상 사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은 사업장일지라도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이라면 손쉽게 '노키즈존'을 선언하는 게 아니라, 아동들의 안전을 위한 시설이나 편의 시설이 미비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필요하다면 국가와 사회가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가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채용할 때는 외모나 종교 유무 등의 합리적이지 못한 기준이 아니라 직무에 맞는 기준을 세워 선발 결과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단지 차별을 규제하고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별을 지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를 망설이지 말자는 제안이다.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세상

"세상이 차별적으로 돌아가는데 차별을 법으로 금지한다고 없어지냐? 소용없는 짓이다." 언젠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으러 거리에 나섰을 때 들었던 말이다. 물론 법조문이 현실의 차별을 모두 없애주지는 않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부각되다 보니 쉽게 간과되는 사실 중 하나는 한국에 이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는 사실이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연령차별금지법 등 개별적인 사유들에 따라 차별을 규제하고 금지하는 법은 이미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법들이 장애나 연령에 따른 차별을 모두 없앤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당 법들에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냉소보다는, 이미 있는 차별금지법이 어떤 효용과 한계를 가지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가장 크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차별이 드라마틱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방법이 생긴다는 것이다. 2006년 인권위에 접수된 차별 진정 사건 중 장애차별 진정 사건은 14.1%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자 아직 법이 시행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장애 차별 진정 사건이 전체의 22.1%로 증가한다.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본격 시행되자 장애 차별 진정이 더욱 증가해 전체 진정의 46%에 달한다. 이 수치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인권위에 접수되는 장애차별 진정이 전체 차별 진정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를 이유로 배제, 분리, 거부당한 경험에 대해 법적으로 차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경험을 더 많이 말하고 적극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도 이것이다. 차별받았다고 느끼는 그 누구라도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을 말할 수 있도록, 차별금지 사유를 제한하지 않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모두 함께 목소리를 높여보자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차별 경험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며, 무엇이 평등한 사회를 가로막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평등을 향한 물결에 합류하라

2013년 차별금지법 철회 이후 7년 동안 잠잠하던 국회가 21대 개원 두 달 만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기까지, 수년 전부터 전국을 돌며 평등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낸 활동가들이 있었다. 138개 시민단체가 모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각자의 차별 경험을 드러내고 나누는 '차별잇수다', 찾아가는 차별금지법 간담회, 함께 모여 평등을 외치는 '평등행진' 등 수많은 활동을 펼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쳐왔다.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회에만 맡겨둔다고 가능하지 않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발의에서 멈추게 둘 수 없기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 앞 1인 시위와 전국을 도는 평등버스 등 국회를 압박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평등버스는 8월 1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20여개가 넘는 도시를 돌면서 불평등에 맞서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다.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국회의 담장을 넘어 차별금지법 제정까지 닿을 수 있도록, 21대 국회의원들이 평등을 향한 물결에 합류하도록,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펼쳐나갈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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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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