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를 보고 빈정 상한 날이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 서면 국산차 만큼 자주 보는 것이 외제차라는데, 그 특이할 것도 없는 부유함에 심기가 불편해진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마주쳤기 때문일까. 공단(공업단지)에서 이토록 흔하게 고급 승용차를 보게 될 거라 생각 못 했다.
점심시간 이용해 성서공단노조에서 하는 선전전에 따라간 차였다. 네모난 건물이 줄지어 선 공단 풍경은 따분했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혹 같은 작업복을 입은 무리의 사람이 갔다가 왔다. 말 그대로, 갔다가 왔다. 공단 내 지정된 식당으로 가는 직원들이다. 선전물을 내밀면 "갔다 와서"라던 사람들은 4000원짜리 식사를 마치고, 금방 왔다. 그제야 한둘 선전물을 받았는데 정작 내 쪽에서 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업체 생산직원 절반이 이주노동자라 했다. 성서공단 입주업체 중 열의 일곱이 30인 미만 사업장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장하면 열에 아홉이 소규모 업체이다. 이 중 많은 수가 이주노동자로 채워진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유인물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거리는 한산했다. 그 거리에서 분주한 것은 차량뿐이었는데, 과장하자면 볼 수 있는 차량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트럭이나 탑차 같은 작업용 차고, 다른 하나는 고급 외제차다. 84년에 조성되었다는, 모든 것이 낡은 공단에서 저 홀로 매끈한 차들이 내 앞을 지나쳤다. 그때 나는 선전전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고딕체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후짐과 고‧다‧자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문구는 70년대로 우리를 회귀시킨다. 아무래도 레트로 감성은 아니다. 떠오르는 것은 그 시절의 '후짐'이다.
실제 후지다. 주요 공단 내 사업체 중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업장이 70%가 넘는다. 적발되지 않은 것까지 따진다면, 작은 사업장 대부분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다(출처: 민주노총, <2015 전국 공단 노동실태조사 자료집>). 지금도 때마다 법정공휴일에는 쉬어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고, 임금 설문조사를 하면 대다수가 최저임금에 체크하고 간다.
낙후된 공간이 동떨어져 어디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 종사자 중 절반 이상이 일하는 곳이 공업단지다. 그 수가 200만 명에 가깝다. 성서공단에도 5만 명 이상 근무한다. 그런데도 공단은 원래 '후진' 곳으로 받아들여진다.
'원래'에는 '어쩔 수 없음'이 붙는다. 어쩔 수 없음을 납득시키는 것은 사업체의 규모다. 작은 사업장이니 '지불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것. 사업주가 말하고, 한 발 떨어진 사람들이 말한다. 심지어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말한다. 이 한마디에 공단의 열악함은 태생적인 것이 된다.
성서공단에서 20년 가까인 활동 중인 노동조합이 있다. 노조 활동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면, 한 날은 모 업체 앞에서 집회를 하는데 옆 공장 사장이 오더란다. 해결은 되고 있는지 괜한 아는 체였다. 그쪽도 휴게실은 고사하고 직원들 앉을 자리도 주지 않는 사장이었다. 그러다 당신 업체에도 노동조합 생긴다고 슬쩍 말하니, 사장이 손사래를 치더란다.
"우리는 노조를 만들 수가 없어요!"
이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병역특례, 현장 실습생, 외국인 노동자에, 한국 사람은 다 고령"이라고 했다. 사장이 보기엔 노동조합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물론 이주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국적도 나이도 불문이다. 고령 노동자도 노조할 수 있다. 옆 공장 사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성서공단노조에는 8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가입한 상태다. 정주민(한국인)보다 더 많은 수다. 가입은 물론 노조 상근자로 활동도 한다(차민다 부위원장). 하지만 사장 눈에 노조할 사람은 없다.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을 뽑았다. <임계장 이야기>(조정진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를 보면, 나이 든 노동자를 두고 '고‧다‧자'라 부른다 했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도 쉬운 노동력이라 해서 붙은 말이다. 어쩌면 현장 실습생, 이주노동자, 중장년 여성, 병역특례자 모두 고‧다‧자일 게다. 다루기 쉬워 뽑은 노동력이 노동조합을 한다고 어렵게 굴 리 없다.
그러니 옆 공장 사장도 당당하다. 우리 회사는 노조 못한다고 해맑게 말할 수 있다. 사업체 규모가, 지불 능력의 낮음이, 지불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고‧다‧자들이 그에게 면죄부를 준다.
쥐꼬리와 노조 게시판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나도 자존심이 있고, 집에 가면 가족도 있고, 이건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성서공단 환경을 이들 말로 요약하자면 "일은 되고(힘들고) 관리자 간섭은 심하고 월급은 쥐꼬리"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사장은 쥐꼬리에 묶어둔 돈을 푼다. 다만 조건이 있다. 노조 탈퇴가 임금 인상의 전제조건이다. 이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비조합원 동료의 10만 원을 뺏는다. ("회사가 명절 떡값 10만 원을 없애버리는 거예요. 나한테 원망이 쏟아지는 거예요. 10만 원이면 큰돈이잖아요.") 때론 CCTV도 달고, 용역 깡패도 부르고, 고소고발도 한다. 직원 11명을 둔 업체는 조합원 1명 때문에 변호사도 선임했다(에이치엔텍). 이게 다 돈인데, 이럴 때 보면 지불 능력이 없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하나둘 탈퇴를 하고, 노조가 있던 시절은 과거가 된다. 그래도 끈질기게 남아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태경산업’에서 일하는 이병철, 조재식 씨. 6년 전 노조에 가입했다. 동료들과 함께했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다들 떠났다. 그래서 지금은 둘 뿐이다.
태경은 중장비에 들어가는 고무호스를 제조하는 업체다. 고무 공장은 험하기로 유명한데, 고무 태우는 냄새를 떠올려보면 짐작할 수 있다. 공무원으로 명예퇴직을 하고 사업을 했다는 조재식 씨, 평생 자영업만 해온 이병철 씨. 이들은 정해진 수순처럼 사업 실패와 함께 성서공단을 찾았다. 태경에 들어가 "내 노동력 팔아서 임금을 가지고 가는 일"의 험난함을 깨닫는다. 150℃ 고온 작업에 팔은 화상 자국이 얼룩하고, 제품 무게에 허리와 손목은 성할 새가 없다.
"성서공단이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업체 70-80%가 다. 매사 똑같습니다. 옮겨본들 이 회사가 우리 회사보다 임금 더 많이 주고 일이 편할까, 더 못했으면 못했지 나은 곳은 별로 없어요."
어디를 가든 똑같다면, 여기서 바꾸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노조를 그만두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 회사에 노조 게시판 하나는 분명히 걸어 놓을 거다. 내 혼자 속으로."(조재식)
노조 가입 후 제일 좋았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으니, 회사 벽에 노조 게시판 부착했을 때라 한다. "그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결국 해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회사 앞에 "천막을 안 친 해가 없었다."
농성장을 차리고, 투쟁을 하고, 임금‧단체협상을 했다. 그 결과로 CCTV 일부를 철거했다. 당시 일하는 사람은 50명도 안 되는 곳에 CCTV만 스무 개가 넘었다. 임금 문제도 개선했다. "명절에 사장이 자기 기분 좋으면 20만 원, 기분 안 좋으면 10만 원, 안 줄 때도 있던" 상여금 등 임금을 단체협약(단협)에 명시했다.
"노조 만들고 난 뒤에는 명절 때 사장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신경 안 쓰지. 사장 기분과 상관없이 단협에 상여금은 정해져 있는 거니까."(이병철)
무엇보다 관리자의 반말이 사라졌다. "우리한테도 못하지만 다른 직원들에게도 함부로 할 수 없죠." 이때 다른 직원에는 이주노동자들도 포함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좋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장마철이면 농성장에 물이 들어찬 이야기도 하며 6년을 더듬다가, 문득 조재식 씨가 말한다.
"그때 노조 시작한 사람들이 다 같이 했다면 게시판이 더 빨리 달리지 않았을까?"
듣고 있던 이병철 씨가 응수한다.
"사람들 탈퇴 안 했으면 회사가 폐업했겠지."
달걀과 소규모
성서공단에는 괴담이 돈다. 노동조합 하면 회사 문 닫는다. 노조가 있기 전엔 "시키면 시키는 대로"를 말하던 사장님들은 노조가 생기면 이런 말을 한다."몇 해 전에 베트남으로 이전했어야 하는 걸 남아 있어 줬더니. 이러면 문 닫고 간다." ○○쉐프(주)에 노조가 생기자 사장이 한 말이다. 성서공단노조 중 적지 않은 수가 회사와 함께 사라졌다.
폐업까지 하지 않아도 신규인력을 뽑지 않는다. 애초 가입 때부터 장년이던 조합원은 그렇게 소수로 남아 정년퇴직을 맞는다. 사업 규모가 줄어들었기에 새 사람을 뽑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조차 단기 알바(파견직)로 쓴다. 도급(용역), 소사장 등을 통해 공장을 쪼갠다.
"○○정공이라고 있어요. 원래 하나의 큰 공장이었는데. 이 회사는 도대체 공장이 몇 개나 있는 건지. 공장만 12개. 성서공단에만 6개. 여기저기에 공장을 흩어놓는 거예요."
이렇게 공장을 쪼개면 용이한 점이 많다. 마치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듯, 나누어 노동조합 같이 귀찮은 문제가 생기며 달걀을 깨트려 버리거나 다른 바구니로 옮기면 된다. 주식 투자의 유명한 격언이지만,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건 달걀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을 깨져봤자 얼마 안 하는 달걀로 인식하는 사회는 도급, 불법 파견 등 외주화와 간접고용에 너그럽다. 태경산업만 해도 물량 일부를 도급업자에게 맡겼다(소사장제). 소사장은 보통 파견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는데, 현행법으로 이들은 태경 소속 직원이 아니다. 그래서 태경은 언제나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유지된다.
소사장이 떠나자 회사는 그 자리에 이주노동자를 들였다.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소사장들이 단가가 안 맞는 거죠. 못하겠다고 사람들 나가니까 그걸 메우려고 사람을 채용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안 오니까. 이주노동자들로 메우고."
그래서 태경은 지금 이주노동자 직원이 절반이다. '한국사람이 안 오니'를 풀어 말하면 이렇다. 빈자리 수만큼 채용하고 싶지 않으니 두 사람 몫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두 몫 할 젊은 사람이 이 돈 받고 일할 리 없으니,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외국의 젊은 노동자를 채용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올라봤자다.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없애고, 기숙사비를 올리고 회식비에 상조회비("이주노동자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 사장이 비행기 타고 갈 것도 아니잖아요")까지 챙겨 받으면 된다.
그런데도 '이 돈 받고 일 못 하는' 한국 사람과 '한국인 일자리 뺏는다는' 이주노동자 사이에, 업체 사장은 '영세한 피해자'로 남는다. 50인 미만이라는 규모를 근거로 회사는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국가로부터 지원은 물론, 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도 비켜 간다. 무엇보다 작은 사업장이라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어린 시선이 이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시킨다는 협박을 할 수 있는 자본금, 노동조합 없애겠다고 법무법인을 고용하는 지불 능력, 같은 성을 가진 임원들로 가득한 가족 경영, 국가가 투여하는 중소기업 육성 자금, 그리고 공단 잿빛 거리와 어울리지 않던 사장님의 고급 외제차. 이 중 어디에 영세함이라는 글자를 넣을지 몰라, 한낮 공단에서 빈정이 상해버렸다.
후진 인생과 노동자
물론 아반떼 몰고 출근하는 사장도 있다. 자본력의 크고 작음을 떠나 경영난에 허덕이기도 한다. 그 위기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빤하다. 대부분 대기업 3, 4차 밴더로 구성된 (하청) 업체들이다. 대기업이 하청에 어떤 불공정을 행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대자본이 전가한 위기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면죄부만 되고 있다.
정부는 제조업 '못 해 먹을' 풍토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중소기업 육성을 말하며 돈을 푼다. 그 돈이 일터에서 어떻게 배분되는지는 관심 두지 않는다. 어느새 지불 능력이 부족하다는 업체의 변명은 정부의 허술한 근로감독을 위한 핑계가 된다. (자율개선‧노무관리지도 등의 이름으로 50인 미만 사업장 감독을 완화하지만, 산재사망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은 작은 사업장이다.)
방치 속에서 사업주는 일하는 사람을 '고‧다‧자'로 만들어 버린다. 열악함은 지속돼 공단은 원래, 후진 곳이 된다. 아니다. 후지다고 낙인찍힌 것은 공단이 아니다.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일해도 되는 사람들, 후진 인생 취급당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노동자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나는 최저임금보다 쪼매 더 받아. 자랑 아니에요. 저는 교섭 때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최저임금으로 한번 살아봤냐고. 최저임금 달랑 주고 사용자들은 자기 할 일 다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나는 당당하게 그런 이야기를 해요. 아무리 늙었지만 할 말은 하고 임금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노동력 팔아서 먹고 사는 게 노동자인데, 정당한 임금은 받고 일해야 하는 거 아니냐."(이병철)
나의 노동력을 대가로 정당한 임금을 받아야 하는, 일하는 사람, 노동자다. 후진 대접을 거부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내내 존재했다. 그것은 2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한 성서공단노조가(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희정 성서공단노조 위원장에게 노조를 통해 무엇이 바뀌길 원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리 말했다.
"작업복 입은 사람들이, 그래, 나 ○○○(업체명) 다닌다. 오늘 무엇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자녀들과 하고 사람들과 할 수 있는 것. 그냥 나 공장 다녀, 이게 아니라. 지금은 현대자동차나 상신브레이크 같은 1차 밴드는 되어야 우리 아빠 거기 다닌다고 자녀들도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노동자가 나 ○○○ 다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선전전을 하고, 유인물을 뿌린다. 농성장을 설치하고, 사업주를 교섭 테이블에 앉힌다. 그런데도 조재식 씨는 "성서공단에는 봄이 안 온다고 본다"고 했다. 열악한 저임금 현실을 떨칠 길이 없다는 말이다. 두 사람은 요즘 촉탁직 거부, 정년 연장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태경은 61세가 되면 같은 자리 같은 업무 그대로 계약서만 바꿔 쓰게 했다. 1년 계약 촉탁직.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1년마다 고용 여부를 심사받아야 한다. 두 사람도 낼모레면 정년이다. 다시 싸움을 하고, 봄이 오는 일은 수월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봄이 올까요? 하자, 조재식 씨는 "노동자들이 진짜 용기를 내 가지고 하면 바뀔까요?"물음으로 대신 답한다.
봄은 언젠가는 오겠다
코로나19 시기까지 겹쳐 봄이 더 멀어 보인다. 줄줄이 제조업 폐업과 부도가 이어지고 있다. "10만 원이면 큰돈 아닙니까"라던 사람들의 어깨에 그 부담이 내려앉고 있다. 휴업은 일상이 된다. 그나마 한국 국적을 가졌으면 휴업수당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지, 이주노동자들은 지원은커녕 정주민이 빠져나간 공장을 가동하느라 24시간 갇혀 산다.
그럼에도 봄에 가까운 소식은 조합원 1명 없애겠다고 변호사까지 선임하던 사장(에이치엔텍)이 그간의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노동조합 활동시간을 보장하는 단협을 체결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자존심은 버리지 않겠다"던 이의 싸움을 통해 이뤄진 결과라 봄을 닮았다.
에이치엔텍의 경우, 단협에 그간 이주노동자에게 '뜯어가던' 기숙사비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상여금 지급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1인 조합원, 최태식 씨가 한 말을 떠오른다. "마음속으로 퇴사도 몇 번 생각했는데.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밟혀서." 이 말이 동료애일까 시혜심일까 고민하는데, 그가 노조 가입하고 점심 먹을 사람조차 없어졌을 때 같이 식사를 해준 이들이 이주노동자 동료였다고 한다. 서로가 의리를 지킨 것이다.
당장은 내가 ○○○ 회사에 다닌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일터가 존중의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일터 안에서 노동자로서 존중이 서로 존재한다면, 그것이 언젠가 용기를 낼 수 있는 발판이 된다면, 그러면 봄은 언젠가는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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