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재원마련과 조세정의 실현의 두 마리 토끼를 잡자
앞에서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마련 방안으로 정률세를 기반으로 하는 방안과 누진세를 기반으로 하는 방안이 있음을 보았다. (☞바로 보기 : OECD 평균만 해도 전 국민 월 30만원 기본소득 가능하다)
기본소득은 부자로부터 빼앗아서 빈자에게 나눠주자는 선별복지가 아니라, 사회적 생산의 일정 부분(가령 GDP의 10% 또는 15%)을 모두가 똑같이 나누자고 하는 것이므로 정률세에 기초한 기본소득(basic income/flat tax model)도 나름의 타당성을 가진다. 정률과세와 정액지급으로도 상당한 소득재분배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오늘날처럼 소득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보다 바람직한 방안은 누진적인 세제로 조세정의를 실현하면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다.
필자는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통합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모든 소득에 대한 정률과세와 누진적인 과세, 모든 토지에 대한 정률과세와 고액자산가에 대한 누진적 부유세 등을 기본소득의 주요 재원으로 삼는 것이다. 그린 뉴딜의 일환으로서 환경세(탄소세)도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고, 데이터세 또는 디지털세, 로봇세 등도 점차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겠으나, 가까운 시일 내에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려면 소득과 재산에 대한 과세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누진적 소득세가 제대로 기능을 하도록 하고, 기존 소득세의 과세 베이스를 넓혀 부자증세와 보편적 증세를 병행하는 것이 조세정의 실현 차원에서도 핵심적인 과제이다.
역진적 조세감면의 정비로 소득세의 정상화를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을 2019년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27.4%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무엇보다도 소득세의 정상화를 피할 수 없다. 한국의 소득세는 GDP의 4.5% 수준에 불과하여 OECD 평균 8.3%, G7 평균 9.5%에 비해 너무 작다. 최근 전 국민 고용보험 논의와 관련하여 주목을 받는 덴마크는 소득세가 GDP의 25%에 달한다. 전체 세수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2015년 기준)을 보아도 한국은 17.2%로서 덴마크의 55.2%는 물론, 호주 41.5%, 미국 40.5%, 뉴질랜드 38.1%, 캐나다 36.9%, 핀란드 30.2%, 스웨덴 29.1%, 영국 27.7% 등에 비추어 너무나 낮다.
이처럼 한국의 소득세 비중이 낮은 것은 각종 비과세와 소득공제, 세액공제와 감면 등 조세감면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조세감면(조세지출)의 혜택이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 훨씬 크게 주어지고 있어, 누진적인 소득세의 기능이 반감되고 있다. 특히 근로소득공제는 규모도 크고 역진성이 크다.
아래 [그림 2]에서 보듯이 2017년 근로소득세 세수가 34.7조 원이었는데, 그 해에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감면 등 없이 소득 전체에 과세했다면 94.1조 원을 걷을 수 있었다(유승희 의원실, 2019). 조세감면이 세수의 1.7배인 59.4조 원에 달했는데, 그 32.1%에 해당하는 금액 9조1000억 원의 감면혜택이 상위 10%에게 주어졌고(1인당 평균 1061만 원), 하위 10%에게는 0.4%에 해당하는 2600억 원만이 주어졌다(1인당 평균 15만 원). 즉, 상위 10%의 조세감면 혜택이 근로빈곤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1.7조 원의 11배나 되었다.
조세감면은 감면 없이 세금을 다 걷었다가 그만큼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낳기 때문에 조세지출이라고도 한다. 그동안 조세지출을 축소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조세제도를 복지급여와 연계해 논의하지 않고 별도로 논의했기 때문이다. 각종 비과세와 소득공제, 세액공제, 감면 등 조세지출을 전면 폐지하되, 이중 꼭 필요한 것은 지출예산으로 잡도록 하고, 조세감면 폐지로 인한 추가세수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면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각종 정책목표로 도입한 조세감면을 다 폐지하기는 어렵겠지만, 근로소득자를 위한 근로소득공제와 인적공제, 근로소득세액공제만 폐지해도 2018년 귀속 근로소득세(결정세액 38.3조 원)의 경우 37.3조 원의 추가세수를 가져오며, 종합소득세의 인적공제 폐지도 2.6조 원의 추가세수를 낳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더 큰 혜택을 주는 법인세의 감면혜택도 폐지, 축소할 필요가 있다.
종합과세 확립하여 납세의무를 기본소득 수급의 조건으로
다음으로 시급한 것은 모든 소득에 대한 종합과세의 확립이다. 현행 분리과세 제도는 과거 도입 당시 납세자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었으나, 이제 납세자들에게 편리한 홈택스 기능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모든 소득자가 종합소득신고를 하도록 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저소득층은 소득세 부담보다도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급여 등의 혜택 유인 요인이 더 클 것이므로 이들을 종합과세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비공식부문의 상당 부분을 점차 공식 부문으로 끌어들여 과세 베이스를 확대할 수 있다.
일용근로소득자 중 상당수 저소득 근로자는 현행 분리과세가 종합과세보다 부담이 큰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부 고소득 일용근로자는 연말정산 근로소득자나 종합소득 신고자에 비해 매우 낮은 세금만 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할 때 납세의 의무를 다하도록 할 필요성이다. 모든 국민이 동일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대신, 자신의 소득에 따라 정당하게 세금을 내도록 하여 무임승차를 방지할 수 있다. 현재는 소득이 없거나 작아서 기본소득에 의존하는 사람도 나중에 소득이 커지면 세금을 많이 낼 것이기 때문에,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떳떳하게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고액 또는 상습 체납자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노동소득뿐 아니라 자본소득까지 포함하여 모든 소득(comprehensive income)에 종합과세를 확립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소득세와 법인세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대해 최근 UC 버클리의 이매뉴얼 사에즈와 게이브리얼 주크먼(Saez & Zucman, 2019)이 미국의 조세제도 개혁안으로 제시한 국민소득세(national income tax)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기존의 소득세와 법인세를 유지하면서 국민소득세를 추가로 도입하여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포함한 모든 소득(국민순소득=국민총소득-감가상각)에 일체의 비과세나 공제 없이 정률 과세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의 경우 6% 정률 과세로 전 국민 건강보험, 유아 공교육과 대학 교육의 무상 실시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특히 둘은 국민소득세에 자본소득을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본소득보다 노동소득 세율을 높이면, 고소득자들이 법인화하여 절세를 할 유인을 제공한다는 이유다. 법인화할 경우 개인소득세보다 낮은 법인소득세로 과세를 하는 이점에 더하여 차량 구입 및 운행비 등을 포함해 여러 소비지출을 비용 처리할 수 있어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 차등을 두지 않고 동등하게 과세해야 한다.
구체적 시행방안은 노동소득에 대해서는 모든 고용주들(비영리단체와 정부 포함)이 임금뿐만 아니라 사회보험료 등을 포함한 일체의 인건비에 정률로 세금을 내고, 기업들은 기존 법인세 외에 이윤 전체(배당과 사내유보 포함)에 동일한 세율로 세금을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비영리단체의 이자 수입, 해외로부터의 수입 등에 대해서는 개인들에게 과세한다. 이렇게 하면 국민순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세원으로 포괄할 수 있다.
이들의 제안은 강남훈(2019)의 시민소득세 제안과 유사하다. 강남훈은 기본소득을 위한 목적세로서 기존의 소득세 외에 별도로 모든 가계귀속 소득(가계본원소득과 가계자산소득 포함)에 일체의 비과세 감면 없이 10% 정률로 과세하면 2017년 소득을 기준으로 약 120조 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강남훈의 시민소득세와 Saez & Zucman의 국민소득세 아이디어를 결합하고, 필요시 누진세율을 도입할 수도 있다고 본다. 즉, Saez & Zucman의 제안대로 모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에 정률(가령 6%)로 원천과세한 후, 각 개인의 종합소득이 일정액(가령 1억 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약간(가령 2~4%)의 추가 과세를 할 수도 있다. 2018년 국민순소득 1546조 원의 90%를 포착하여 6% 정률과세하면 83조여 원의 세수가 나온다. 기존 소득세의 근로소득공제, 인적공제 등을 폐지하여 40조 원 이상의 추가세수를 낳는다면, 이 둘만 합해도 120조 원이 넘는 재원이 마련된다. 1억 원 이상의 소득에 대해 누진적인 과세를 덧붙이면 보다 큰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기본소득 등 현금급여의 과세소득화
소득세에서 끝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은 각종 현금급여를 과세소득화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적연금 소득 외에는 공적이전 소득을 과세소득에 일절 포함하지 않고 있다. 아래 [그림 3]을 보면 덴마크는 GDP의 4% 가까이, 스웨덴은 GDP의 3%가 넘는 금액을 공적 이전 지출에서 직접세로 환수헀다(Adema et al. 2014). 덴마크는 2009년 공적 사회지출이 GDP의 30.2%에 달했으나 여기서 GDP의 3.8%를 직접세로, GDP의 2.6%를 간접세로 환수해 순 사회지출은 GDP의 23.8%이었다. 현금급여를 과세소득화하면 이처럼 순지출을 줄여 재정절감의 방안이 될 뿐만 아니라, 소득재분배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 같은 금액의 수당을 모두에게 지급해도 고소득자들로부터 더 높은 세율로 환수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앳킨슨이 영국에 대해 보편적인 자녀수당 금액을 인상하되 "과세소득화" 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도 이러한 취지다(Atkinson, 2015). 아동수당의 경우 저소득층은 결혼률과 출산률이 낮아 수직적 소득재분배 면에서 역진적인 문제가 있다. 아동수당 지급액을 인상하되 이를 과세소득화하면, 면세 또는 저율 과세되는 저소득층은 수당 인상의 혜택을 다 누리게 되지만 고소득층은 최고 46.2%(최고 소득세율 42%+지방소득세율 4.2%)까지 내놓게 되어 저소득층일수록 더 큰 금액을 지급받는 셈이 된다. 기초연금도 하위 70%로 제한하지 말고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되, 과세소득화하는 방안을 취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하면서 자발적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기부금 세액공제를 적용했다. 그런데, 기부금 세액공제가 1000만 원까지는 15%, 1000만 원 초과분은 30%여서 고액기부자, 즉 고소득자를 더 우대하는 결과가 되었다. 기부금 세액공제보다는 재난지원금을 기타소득에 포함시켜 종합소득 신고를 하는 고소득자의 경우 소득(과세표준 구간)에 따라 자신의 한계세율에 따라 조세로 환수하는 방안이 나았을 것이다.
다만, 과세소득화를 효과적으로 하고자 하면 모든 소득자를 대상으로 종합소득 과세를 조속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종합소득 신고 의무자가 소수에 불과할 경우에는 현금급여의 과세소득화가 큰 실효성을 가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재산세제의 강화: 토지보유세와 부유세의 도입을
소득불평등보다도 자산불평등이 더 크고 갈수록 심화해 자산으로부터의 불로소득(자본이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흙수저와 금수저에 따른 가난과 부의 대물림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그동안 종합부동산세가 일종의 부유세 역할을 해왔으나 최상위층에 집중된 금융자산을 과세대상에서 제외하여 부유세 측면에서는 불공정하며,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지가안정을 기하는 차원에서는 토지보유세보다 효과가 작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모든 토지에 토지보유세를 정률로 과세할 것과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부유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낮은 부동산 보유세와 실효세율의 역진성
먼저 우리나라 재산세의 GDP 대비 비중이 국제적으로 높은 편이어서 토지보유세를 포함한 부동산 과세를 강화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견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2019)에 의하면, 우리나라 재산세가 2017년 기준 GDP의 3.0%로서 OECD 평균 1.9%보다 높고 G7 평균 3.2%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세율(취득, 등록세)은 한국이 GDP 대비 1.07%로서 OECD 평균인 0.37%보다 훨씬 높은 반면, 보유세율은 한국이 0.798%로서 OECD 평균인 1.102%보다 낮은 편이다. 더구나, 한국은 GDP 대비 부동산 시가총액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어서 민간보유 부동산 시가총액 대비 보유세율은 0.156%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0.435%의 3분의 1 수준이다(이선화 2017).
현행 종합부동산세는 토지와 건물을 구분하지 않고 과세하는 불합리를 안고 있다. 더구나, 별도합산 토지(상가, 사무실 부속토지 등)에는 80억 원까지 공제해주고 주택(주택부속 토지 포함)에 비해 저율과세하고 있다. 과표현실화율도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낮고, 상업용지 및 건물은 더 낮다. 아파트 소유자보다 대저택 소유자에게 유리하고, 주택 소유자보다 건물주와 대토지 소유 재벌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세제다. 재산세와 종부세뿐만 아니라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상속세, 증여세 등의 과표가 낮게 책정되어 부동산 부자일수록 실질적으로 감세를 받는 상황이다(곽노완 2017).
그런가 하면, 한국은 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근로장려금 등 수급자 선정 및 수급액 산정에 있어서 재산(주택, 토지, 자동차 등)의 소득환산액을 소득인정액에 포함한다. 빈곤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큰 재산 보유세를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셈이다. 또한,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에도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적용하므로 이들이 직장가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재산세 실효세율을 부담한다. 이처럼 현행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제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점이 있다.
최상위 자산계층에 집중된 금융자산의 비과세
더 큰 문제는 현행 종부세가 부동산 부자보다 진짜 부자인 주식 부자들을 우대한다는 점이다. 김낙년(2019)의 우리나라 개인자산 분포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개인자산 상위 10%가 전체 순자산의 62.9%, 상위 1%와 0.1%가 각각 23.9%, 10.0%의 집중도를 보인다. 소득의 집중도보다 최상층 집중도가 훨씬 크다.
자산 종류별로 보면 주택이나 연금 보험에 비해 사업용 자산과 금융 자산의 집중도가 매우 크다. 특히 금융자산은 상위 1%와 0.1%가 각각 51.6%, 35.0%의 집중도를 보인다. 이에 비해 주택은 상위 1%와 0.1%가 각각 9.9%, 1.1%의 집중도를 보여 금융자산에 비해서는 집중도가 덜한 편이다. 자산종류별로 1인당 평균을 보면 주택은 상위 5%, 1%, 0.1%가 각각 5억8600만 원, 8억3600만 원, 9억4400만 원으로 큰 차이가 없으나, 금융자산은 상위 5%, 1%, 0.1%가 각각 6억3900만 원, 23억9300만 원, 161억6900만 원으로 상위층 내에서도 최상위로 갈수록 집중도가 급속히 커진다.
결국 주택에 대해서는 종합부동산세가 일종의 부유세 역할을 하고 있으나, 최상위층의 금융자산은 과세 사각지대에 있다. 양도소득 과세의 경우도 주택 양도소득에 비해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미약하다.
대안: 토지보유세와 부유세 도입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고 정률의 토지보유세와 고액자산가에 대해 누진적인 부유세를 도입해 전 국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 여러 학자들이 토지보유세(국토보유세)를 재원으로 토지배당을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대선에서 이를 공약한 바도 있다. 다만, 전강수 외(2018)는 종부세를 폐지하는 대신 누진적인 토지보유세 도입을 제안한 데 비해, 강남훈(2019)은 기존의 재산세와 종부세를 유지한 채로 정률의 토지보유세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필자는 종부세를 폐지하는 대신 정률의 토지보유세와 부유세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토지보유세는 전국의 모든 토지를 용도 구분 없이 공시지가를 과세표준으로 하여 동일한 세율(0.6% 내지 1%)로 과세하여, 이를 전 국민에게 동일금액의 토지배당금(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2017년 법인과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토지자산 가치가 약 5492조 원이므로 1%의 세율로 과세하면 55조 원의 세수가 발생한다. 재산세 10.2조, 종부세 1.5조를 합한 부동산 보유세 11.7조 원보다 43조 원 이상 증가한다. 전 국민 토지배당에 55조 원을 사용하면 1인당 110만 원, 43조 원만 사용하면 1인당 85만 원 지급이 가능하다. 좀 더 낮은 세율과 낮은 배당으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땅을 한 평도 소유하지 않은 전 국민의 67%(국토교통부 2018)와 공시지가 1억1000만 원 미만의 토지소유자는 순수혜자가 된다(공시지가 1억1000만 원이면 토지보유세가 110만 원으로 토지배당액과 같음). 땅부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토지를 투기의 수단으로 보유하는 유인을 줄이고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촉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지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토지 소유자 중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토지의 소유지분을 국가에 내게 하면 된다. 50년간 매년 1% 지분을 세금으로 내더라도 50%는 상속 재산으로 남으니 그리 가혹한 세금이라고 할 수 없다(구약성서의 '희년' 개념을 따르면 매 50년마다 토지의 소유권을 재분배할 수 있는 연 2%의 보유세율이 적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포함한 순자산 기준으로 고액자산가에 대해 부유세를 부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있다. 가령 순자산 20억 원 초과분에 1%, 50억 원 초과분에 2%, 200억 원 초과분에 3%의 누진세율을 적용하면 대략 25조 원 내외의 세수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상위 1%의 고액자산가로부터 얻는 25조 원가량의 세수로 국민 1인당 연 5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부유세 도입의 경우 그동안 자산의 해외 이전, 자산 가치 평가의 어려움 등이 제기되어 왔다. 피케티도 일국에서 부유세를 제대로 시행하기 어렵다고 보아 부유세를 위한 전 세계적 차원의 협력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 사에즈와 주크먼은 부유세 실행의 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토지보유세와 부유세만으로도 연 80조 원의 세수, 국민 1인당 연 160만 원에 가까운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다만 토지보유세가 지가안정화에 기여하고 부유세가 자산 집중을 억제하는 데 성공하면, GDP 대비 토지보유세와 부유세의 비율은 장차 감소할 수 있음을 고려하여 기본소득 재원의 대부분을 여기에 의존하기보다는, 소득세를 주요 재원으로 삼는 것이 보다 안정적일 것이다.
이상에서 거론한 재원마련의 여러 방안을 요약해보자. 재정지출구조의 개혁(국민부담률 대비 사회보장지출을 현재의 40%에서 OECD 평균 수준인 60%까지 끌어올림)과 재정 자연증가분 3분의 1 이상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하면 특별한 증세 없이도 5년 내에 GDP의 4~5%는 마련할 수 있다. 소득세의 근로소득공제와 인적공제 등만 폐지해도 40조 원, 6%의 국민소득세로 83조 원, 1%의 토지보유세와 최상위 1%의 고액자산가에 대한 1~3%의 부유세로 80조 원 등 200여조 원(2018년 기준), 즉 GDP 10% 이상의 증세가 가능하다. 재정지출구조 개혁으로 GDP의 4~5%, 증세로 GDP의 10%를 마련하면, 공공사회보장지출을 GDP 25% 수준까지 올릴 수 있다. 장차 부가가치세 인상까지 더한다면 선진국 수준인 GDP 30% 수준까지도 가능하다. 복지확대 공감대가 있으면 복지 선진국들이 해낸 증세를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기본소득은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고 복지 증세 지지를 높여서 이러한 증세를 가능케 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메뉴를 가지고 5개년 중기재정계획을 세우면 차기 대통령 임기 내에 GDP 10% 규모의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본소득 등 현금급여를 과세소득화하고 기존 복지지출 중 현금급여의 일부를 대체하면 순비용은 더 줄어든다.
*이 글은 필자의 아래 두 논문에서 상당부분을 취하였음을 밝힌다.
유종성, 2018.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가능성과 재분배효과에 대한 고찰" 한국사회정책 25(3): 335.
유종성. 2020(근간). "생애맞춤형 전국민 기본소득제의 필요성과 실현방안." 복지국가연구회 편, 『촛불 이후 한국 복지국가를 묻는다』. 한울.
*다음 호에서는 "기본소득보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보완, 강화가 더 효과적일까?"라는 주제를 다룰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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