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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쟁 환영한다. 그러나…

[최창렬 칼럼] 용두사미로 끝난 '경제민주화' 전철 밟지 않으려면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통적 진보 의제인 기본소득 논쟁은 보수 진영이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지만, 2012년 김종인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전면에 포진시킴으로써 총선과 대선을 석권했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정치는 갈등과 대립을 제도권 내에서 표출하여 균열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정당과 국회가 각 분야의 이해관계를 조직화함으로써 접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안보와 대북 관련 이슈가 진영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경제적 이슈의 공론화가 저조한 편이다. 물론 지난 해 조국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사회적 문제도 진영 논리가 철저히 관통한다. 이러한 구조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는데 친화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원심력의 증가를 초래하게 된다.

국민들에게 절실한 문제는 역시 사회경제적 이슈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증세 관련 논의 등 다양한 경제적 이슈들이 정책으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과 이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논쟁을 통한 새로운 방향으로의 모색도 실패했다.

기본소득을 현안으로 발제한 정치권이 이를 사회적 공론화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한국사회의 불평등 완화와 기존의 복지체계와 선순환적인 관계를 도출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기본소득을 어느 나라도 실시한 적이 없다는 면에서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결론 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불평등 정도가 상위권에 속하는 한국이 그나마 이 정도 복지체계를 갖춘 것도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이슈가 갈등 축을 형성하고 선거의 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경제적 삶과 공정 평등의 문제의 하나로서 기본소득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기본소득 쟁점화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공학으로 변질되거나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공론화에 적극적이고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여권 인사들도 가세하고 있다. 이슈선점을 통해 표를 얻는 것을 비판할 수 없다.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실질적 결론 도출보다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고 의제 형성을 통해 전시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면 이 역시 민주주의의 지체를 결과할 뿐이다.

정당집단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출세와 입신 동기가 정치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는 정치의 본령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정책 이슈가 자취를 감추고, 진영에 매몰된 열성 지지자가 이념을 명분으로 공백을 메운다. 진영이나 세력에 편승하지 못하면 배제되는 진영의 정치는 한국정치를 피폐화 시킨다.

사회경제적 이슈와 특정 정치세력의 유불리에서 자유로운 사회개혁이 화두가 된다면 한국정치도 변화의 단초를 열어갈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적 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기본소득 논쟁은 기본소득 자체에만 그치면 안 된다. 복지체계 전반과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노동자와 소외계층을 제도권 내에서 관리가 가능할 수 있는 시스템 차원으로 논의의 수준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산업화의 단물과 독재정권의 반공주의에 편승하여 냉전의 우산에 숨었던 보수진영도 구각을 벗고 민생과 사회 정의를 위한 의제 설정에 동참해야 한다. 기본소득이 그 접점이 될 수 있다. 진보진영도 화려한 말의 성찬에 그치지 말고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2012년 정치권을 달궜던 경제민주화 공약들은 흐지부지 의제에서 사라졌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기본소득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을 의제다. 4차 혁명 시대에 비정규직과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구를 감안한다면 기본소득은 복지의 대체냐 아니냐의 논쟁을 포함하여 사회의 안전망을 모색하는 중대한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한 과도한 낙관적 전망과 우월적 민족주의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시각을 무디게 할 수 있다. 진정한 K-민주주의는 평등과 정의가 정치의 화두로 유지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기본소득에 대한 학술적 정의(定義)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의 한국적 변형을 통해서 구조적 모순들이 성찰되고, 사회변화의 기폭제로서의 의제가 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정치권이 기본소득 논제를 선거전략의 정략으로 활용하고, 소모적 이슈로 소비하려면 지금이라도 논쟁을 접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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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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