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쟁에서 간과되기 쉬운 게 있다. 기후 위기, 즉 탄소 경제의 종말이다. 혹자는 4차산업혁명 같은 이야기로 AI와 로봇의 등장, 빅데이터 기반 경제 등을 말하지만 이는 결국 소비 촉진을 통해 과잉 생산력을 유지해야 가능한 경제라는 점에서 '사람이 없는 탄소 경제'와 다름없다. 결국 문제는 탄소 경제의 문제로 귀결된다. 탄소 경제가 무너지거나, 중단되면 과잉 생산으로 유지되는 세계는 더 버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유럽의 복지국가가 탄소 경제와 저개발국 착취를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노르웨이의 1조 달러 국부펀드는 석유를 기반으로 조성돼 노르웨이 복지국가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스웨덴의 이케아는 전 세계 저개발국의 목재를 베어내 돈을 벌고 국가에 세금을 내며 기업을 유지한다. 일본식 복지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탄소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제조업이 일본의 부와 복지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다. 돈을 내는 것은 석유를 사들이고 석유로 굴러가는 자동차와 기계를 사들이는 글로벌 체인의 국가들, 그리고 저개발 국가들이다. 여기에 코로나19가 탄소 경제의 한계와 성장률의 허상을 보여줬다.
격세지감이다. '몽상'으로 치부됐던 기본소득이 지면을 뒤덮고 있다. 그레타 툰베리가 촉발한 기후 위기론이 이제 미국 대통령까지 (비록 조롱조이긴 하나) 관심을 기울이는 화두가 된 것처럼, 기본소득은 빠르게 사람들의 입길을 장악하고 있다. 지금 피상적 논쟁의 전선은 크게 세 가지다. 보수 진영은 '기본소득이 포퓰리즘이자 공산주의 배급제'라고 비난한다. 자유주의 진영은 '기본소득은 우파의 기획'이라고 주장한다. 복지국가론자들은 '기본소득은 복지 시스템을 필연적으로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은 공산주의가 됐다가 우파 정책이 됐다가 반복지 정책이 된다. 다양한 스펙트럼이다. 이 '혼돈'이 보여주는 건 기본소득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ET', 즉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다. 확인할 수 있는 건 '뜨거운 관심'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이 논쟁에 참전하는 포인트는 다양하고 결말은 열려 있다고 본다. 즉 기본소득이 기존의 틀(이를테면 복지국가)과 상충될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틀과 어우러질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한다. 기본소득이 포스트 코로나, 기후 위기 시대 그랜드 디자인을 그리는 새 논쟁을 촉발하고 우리가 유지해온 시스템을 돌아볼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기본소득 vs. 복지국가...'먹고사니즘'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결국 '먹고살기'의 문제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하고 수면 위로 띄운 것은 사실상 <녹색평론>과 녹색당이란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기본소득은 복지 정책, 경제 정책, 공산주의 정책, 우파의 기획 모두에 해당될 수도 있지만 이 모두 다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자리 없는 시대, 기후 위기 시대, 성장하지 않는 경제 시대를 상정한 새로운 논쟁이다.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전 영남대학교 교수가 2014년 기본소득과 관련한 강연 일부를 소개한다. (관련기사: "기본소득, 새누리당이 먼저 낚아챌 것")
김종철 전 교수가 지적한 것은 지속가능하지 못한 탄소경제, 그리고 금융 시스템이다. 석유 경제로 지탱해 온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맞았다. 기후 위기와 무분별한 개발로 동물 서식지의 축소가 인수 공통 감염병 확산을 촉발했고, 촉발된 팬데믹은 세계의 공장을 타격하고, 금융 시스템을 패닉으로 몰았다. 경제 활동이 축소되면서 유럽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실업 공포가 자리하게 됐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재앙들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안적 세계라는 것은 무엇일까. 복지국가에는 과연 한계가 없는 것일까.
한국에서 복지국가 논쟁이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서다. 박근혜 당시 후보가 "아버지(박정희)의 꿈이 복지국가"라면서 경제 민주화를 필두로 복지국가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진보 진영은 당황했다. 박근혜 후보는 그러면서 노인기초연금을 제시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전 정부에서도, 지금 정부에서도 아직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당시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성장'과 '복지'의 병행 노선을 주장했다. 사실 성장이 전제돼야 복지가 가능하고, 복지가 있어야 성장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불평등 해소'의 문제다. 이걸 해소하고자 다양한 논쟁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복지국가'는 어디까지 왔을까. 우리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새로운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팬데믹을 맞이했다.
김종철 전 교수는 "복지 국가론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복지 국가론이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과 생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는 이상, 그것이 빈곤과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책으로서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복지 국가 논리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극히 의문스럽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복지 국가란 국가의 계속적인 세수(稅收) 증가를 전제로 해서만 실현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세수 증가는 경제 성장과 고용의 안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하며 "그런데 석유 공급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세계 금융 시스템이 뿌리에서부터 붕괴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계속되고,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적 고용이 확대된다는 게 과연 있을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한다.
이런 점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시대, 새로운 논의가 발생하기 좋은 때다. 지금은 극단적 시장주의자건 보수 야당이건 누구도 '공공 의료 복지 시스템'을 줄이자고 할 수 없고, 복지 축소를 주장할 수도 없다.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나온 여권 인사는 "공공 시스템에 딴죽을 걸기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진보 진영이 새로운 체제와 관련된 논의를 이끌어가기 최적의 시기"라고 했다. 코로나19로 겪은 일들이 사회에 남긴 흔적이다. 코로나19가 강력한 제동 장치를 부여해 준 것이다. 지금부턴 새로운 시스템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복지 시스템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경제 성장을 전제로 한 복지 시스템 확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 틈을 기본소득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왜 월세는 지역화폐로 내면 안돼?...기본소득, 더 많은 상상력을
많은 오해가 기본소득을 '재정으로 퍼주기'라고 본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전제는 화폐 가치가 전통적 교환 가치로 가야 한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즉 기본소득은 '먹고사는 인간의 기초 생활'을 해소할 때만 가능하다. 기본소득으로 투기를 할 수도 없고 투자도 할 수 없어야 한다. '이자 없는 화폐'다. 무차별적으로 돈을 벌어 풀자는 것이 아니다. 토지 등 공공의 자산을 기반으로 발생한 가치를 지역 화폐로 환원해 경제 생태계의 마지노선을 꾸리자는 것이다. 물론 나이브하다는 비난은 감수한다. 그러나 나이브하다고 해서 상상력까지 제한받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번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의 특징은 돈이 일정 부분 교환가치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가 아니다. 여기엔 이자도 붙지 않는다. 물론 세금 베이스의 정책이라 진짜 '기본소득'으로 볼 수는 없지만, 기본소득 개념에 가장 가까운 행태로 실험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해 볼 만하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이재명 지사는 처음에 기본소득을 복지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최근에는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이 지사를 공개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신 의원 주장처럼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라,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이 '세금 경제'에 기반한 정책이라는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경제 정책'이라고 인정한 것일 뿐이다. 이 지사의 원래 기본소득 구상은 토지 공개념에 맞닿아 있고, 국가 공공 재산에서 나오는 이익을 시민들에게 배당하자는 개념이었다. 그가 한 일은 경기도 재난지원금에 '기본소득'이라는 네이밍을 붙여 논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처럼 기본소득의 개념의 발생 배경을 간과할 때 논쟁은 겉돌게 된다.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한 사람은 없는데, 마치 기본소득이 복지국가 약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반박이 비약처럼 먼저 터져 나온 것도 논쟁을 왜곡시킨다.
기본소득은 다시 말하지만 탄소 경제 종말과 금융 시스템의 지속 불가능함을 전제로 촉발된 것이다. 물론 복지국가 vs. 기본소득 논쟁 역시 환영할 만하다. 복지 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이 기회에 복지 시스템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원천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 시스템은 해체할 수 없다. 코로나19시대가 보여준 공공의료 시스템이 그 예다. 특히 의료 분야와 같은 복잡한 산업 분야는 기존 세금 기반 공공 복지 시스템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노인 등 특정 취약 계층(재난에 특히 더 취약한 계층)에 대한 복지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역할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부분을 생각해보자. 주거복지, 이를테면 주거 비용은 기본소득으로 낼 수 있다면? 이번 재난기본소득이든, 재난지원금이든, 현금을 주고 이것이 월세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가 부동산 부자들의 배를 불리지 않게 차단한 것은 현명했다. 그렇다면 '지역 화폐'로 월세를 왜 낼 수 없는지 고민을 해볼 만하지 않을까. 노동의 댓가를 허물어 '갓물주'에게 지급하는 월세가 '부동산 재투기'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실업 급여도 마찬가지다 수입이 끊기기만 해도 일할 의지가 있든 없든 최소한의 '식비'와 '주거비', 그리고 '생계비'를 지역 화폐 형태의 기본소득으로 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금으로 실업자들의 생계를 돕는 게 아니고, 식재료와 생계에 필요한 수단을 지방정부나 국가가 폭넓게 보증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개념이다.
앞으로는 예술가, 자영업자, 프리랜서가 더 늘 텐데, 고용보험의 개념을 확장하면 기본소득과 맞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술인, 농업인, 사회 운동가, 수많은 자영업 사장님들, 우리 사회에 '다니엘 블레이크'들은 계속 늘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고용보험 전 국민 확대와 '기본소득'의 개념이 적대적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복지와 기본소득은 양립 가능할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어쩌면 우린 복지를 넘어 새로운 사회 질서와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금융 질서와 새로운 '로컬화'를 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끝으로 미래통합당이 기본소득 논쟁에 뛰어들고,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고용보험' 등 복지 강화를 자연스럽게 주장하는 건 기쁜 일이다. 어느 쪽이든 복지 강화든 기본소득이든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아닌가. 코로나19가 보낸 '대변혁'의 요구서를 진지하게 논의해 볼 논쟁적 글들을 위해, <프레시안>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에게 지면을 활짝 열어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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