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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비대위가 보수 혁신에 성공하려면…

[최창렬 칼럼] 보수는 구태와 단절할 수 있을까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진보진영이 패인으로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한국 사회가 분단과 냉전 등에서 유래한 권위주의적 보수 성향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정책과 이슈에 대한 대응에 관계없이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구조주의적 시각이다.

그러나 세대·계층 등 진보 세력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졌던 운동장'은 오히려 진보에게 유리한 정치 지형으로 바뀌었다. 관점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착시현상일 뿐이다. 핵심은 특정 정치 세력이 주권자의 일반의지나 눈높이와 얼마나 부합하게 행동하고 발언하며, 공동체가 안고 있는 근본적 모순에 다가갈 수 있느냐다.

맹목적 지지 성향을 보이는 보수와 진보의 극성 지지층이 어느 진영에 보다 강고하게 포진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지만 결정적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중도 진영은 사안과 이슈에 대처하는 정당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지지 성향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이른바 스윙보터(swing voter)들의 존재다. 이들 표의 향배가 한국 사회의 이념 성향의 변화를 초래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선거 승리는 각 진영과 정치집단의 역량에 달린 것이지 특정 이념 성향이 편향되게 기울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머쥔 여권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을 검찰 개혁의 동력으로 삼고 야권에 대한 정치적 우위를 이어가려 할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재조사 역시 이러한 정치적 프레임의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대내외적인 긍정 평가와 포스트 코로나의 국정운영이 맞물린다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후반은 안정된 기반에서 출발할 수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추동할 보수의 혁신이 어떤 모습과 양태를 띠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구체적 현안에서 진전된 메시지와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 때 보수 혁신은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고 냉전적 사고 및 산업화 시대의 퇴행과 단절한다면 보수 재건의 단초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집권 진영의 국정 성과와 미래통합당 쇄신 결과의 우열은 내년 4월의 재보궐 선거에서 1차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과 11개월 후 20대 대통령 선거는 양 진영의 건곤일척의 대회전이 될 것이다.

진보 진영에게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겠으나 지리멸렬한 보수 진영이 이대로 2년 후 대선을 맞는다는 것은 한국 정치에는 불행한 일이다. 진보가 승리한다하더라도 특정 진영의 일방적 승리의 연속은 견제와 균형의 부재에 기인하는 권력의 오만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 회의에서 특강을 마친 후 의원회관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한국 보수의 방향성이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보수주의와 달리 한국 보수는 산업화 시대의 안보 이데올로기에 바탕한 반공냉전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민보수주의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보수는 역설적으로 박정희의 가부장적 국가주의에 입각한 보수와도 거리가 멀다.

박정희는 태생적으로 불의한 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공주의와 냉전을 정권 보위에 악용했다. 지금의 아스팔트 우파라는 왜곡된 수구의 원조인 셈이다. 정권 보위를 위한 인권유린과 정치적 탄압·노동 배제가 일상화했다.

한편 박정희의 보수는 국가가 사회를 압도하는 국가 주도의 산업화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국익이란 가치를 위해 미국과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는 국가주의자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북한 김일성 정권과의 적대적 공존의 절정은 역시 박정희 유신 정권이었다. 지금의 보수는 천민시장주의와 반공주의에 기반한 것으로서 본원적 의미의 보수와 동떨어져 있는 정체성을 상실한 '국적 없는' 보수다.

미국의 개혁 보수주의자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은 규제 강화 정책을 내세우기도 했다. 경제 침체와 성장률 저하의 현실을 무조건적 규제 철폐와 기업편의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내세운다면 이는 개혁적 보수일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의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보다 진보적이고 사회적 모순에 정면으로 마주할 때 보수는 재건의 단초를 보일 수 있다.

개혁 보수도 아니고, 과거 국가주의에 매몰됐던 박정희식 보수도 아닌 지금의 보수 진영의 재건을 위해서는 철저히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고해야 한다. 미래통합당의 주류인 영남 보수가 수용할 수 있을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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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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