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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센터 화재는 '생산된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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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센터 화재는 '생산된 참사'다

문제는 참사는 계급적 성격을 띤다는 것

인류가 철도를 통해 기계문명의 대 확산을 맞이한 이래 사고로 인한 대규모 참사는 운명처럼 따라붙었다. 철도역사가 볼프강 쉬벨부시는 "기차 운행 시간표가 문명화되면 될수록, 또 기술이 효과적으로 되면 될수록 연관 체계의 붕괴로 맞게 되는 파괴는 정말 더욱 더 재앙적이다"라고 말했다. 산업혁명 이전, 인간이 아직 동물의 근력에서 나오는 힘을 뛰어넘지 못하던 시대에는 사고나 재앙은 자연의 일부였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위험은 지진이나, 홍수, 번개, 태풍 등 인간 사회 외부의 자연에서 오는 것이었다. 사고는 지극히 우연적인 사건이었다.

인간이 만든 것에서 발생하는 사고 역시 대규모 참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마차의 전복이나 차축의 파손으로 인한 사고로 발생하는 인명피해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기계문명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또한 이 기계문명을 맞이한 시장경제체제는 사고와 참사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고도화한 기계문명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위험은 배가 된다. 여기에 이른바 "최소 비용, 최대 효과"라는 자본주의 경제원리가 작동되면 이 사회는 유증기가 가득찬 곳으로 변하게 된다. 위험하지만 값싼 재료, 형식적인 관리감독, 공기 단축, 도무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를 다단계 하청 구조가 만들어진 이유는 단순하다.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한 무한노력의 결과이다. 이제 사고는 자연의 우연적인 질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 되었다. 인류는 되풀이되는 대형 참사와 함께 걷는 운명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참사는 지극히 계급적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당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사고가 닥친다. 지난 5월 4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노동자들은 갑자기 일어난 화재에 희생당한 불쌍한 사람들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보상 협상이 끝나고 기억에서 사라질 또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십조원 지원 이야기가 나오는 재벌 기업가들에게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3-40명의 기업가가 주기적으로 목숨을 잃는 일을 상상할 수나 있겠는가?

이미 2008년 거의 같은 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생명과 안전의 문제에 이른바 "가성비"가 자리 잡은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불에 타기 쉬운 재료로 비용을 아끼고, 유증기가 발생할 수 있는 곳에서 불꽃을 일으키는 용접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위험을 감수하는 작업은 공기단축 압박 속에 늘상 있는 일이다. 현장의 많은 일들이 다단계 하청으로 외주화 되고 있음에 반해 관리 감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정부 부처는 비용 과다의 문제를 지적하며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관련 규제 제정에 난색을 표해 건축주의 입장을 대변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조치들에 대해 규제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을 경제살리기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좀 죽더라도 경제는 살려내야 한다는 신념이 지배한다. 물류창고 화재는 각계의 노력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이천 화재 참사에는 이 사회가 영원불변의 진리로 여기는 체제의 불평등과 부조리가 모두 담겨있다. 요즘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그러나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라는 우상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공정"은 작동되지 않는다. 평생동안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릴 일이 없는 사람들이 규칙을 정하는 것만큼 불공정한 것이 어디 있는가? 기업가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국회의원들이 사회 곳곳의 불안전 행태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규정을 마련할 일은 없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지상 가치로 삼는 정부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자본은 이미 자를 꼬리를 만들어 놓고 세상을 굴린다. 이미 깊숙이 뿌리박은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중대 재해가 나더라도 책임은 가장 낮은 단계에 지워진다. 수익은 자본에게 희생은 밑바닥 인생들에게 주어지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인가?

체제의 문제를 말하면 색깔론부터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다. 보수 야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일이야말로 보수정당이 앞장서서 지켜내야 할 가치이다. 총선에서 패배한 야당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자 한다면 이번 이천 화재 사고를 기회로 삼기 바란다.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입법작업을 벌여 사람의 생명을 무시하는 기업이나 기업가의 행태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철에만 재래시장을 찾아 서민 정당인 척하는 연기는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다. 이런 참사속에서도 기업가를 옹호하는데 전념한다면 소멸의 시간은 더 앞당겨 질 것이다. 서민들은 늘 어려웠고 코로나 시대 이후에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 함께 잘살고 안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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