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의 가장 무서운 면 중 하나는 고용 위기다. 국제노동기구(ILO)는 3월 18일(현지시간) "코로나19로 전 세계 일자리 2500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지난 8일에는 "올해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전 세계 노동시간이 6.7% 감소할 것"이라며 "주 48시간 상근직 일자리 1억 9500만 개가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위기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대표 분야는 항공업이다. 각국 정부가 입국 문을 걸어 잠그고 시민 스스로 해외여행을 자제하면서 항공 관련 업체들이 경영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287개 민간 항공사가 모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3월 24일(현지시간) "올해 전 세계 항공업 손실이 310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항공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공항공사, 대한항공 등 국내 항공 관련 7개사의 모임인 한국항공협회는 지난 4일 "3월 4주차 기준 국적사 여객기 374대 중 324대(86.6%)가 멈춰있다"고 발표했다. 하루 19만 명이 찾던 인천국제공항의 일 이용객은 지난 8일 5000여명까지 떨어졌다. 업무 정지를 뜻하는 '셧다운(Shut Down)'은 한국 항공업의 일상을 표현하는 용어가 됐다.
이에 따라 항공업계에 유급휴직은 물론 무급휴직, 해고 등이 늘고 있다. 문제는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 구제 방안이 태부족하다는 데 있다.
노동계는 항공 노동자의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인천국제공항이 자리한 영종도를 한시적 해고 금지 구역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유지지원금 있는데도 무급휴직 혹은 해고 들어가는 항공업계
이스타항공은 지난 6일 '전체 직원 1600명 중 350명을 구조조정한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직접고용 인력의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 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합병한다는 말이 돌면서부터 '40% 정도 인원을 정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인력 구조조정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노동자들은 노사협의회에서 '무급휴직이라도 논의해봐야지, 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느냐'고 맞섰지만 회사는 듣지 않았다. 이스타항공이 경영 위기 앞에 고용유지지원금 등 정부 지원 제도를 활용하기보다는 예정되어 있던 인력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셈이다.
이에 반발한 이스타조종사노조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사측이 6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구조조정 규모를 기존 45%에서 22%로 완화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그 사실을 바로 언론에 발표했다"며 "노조가 사측과 관련 사항을 협의하기는 했지만 합의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이스타조종사노조는 이후 노사 협의에 불참한다는 계획이다.
이 항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 항공사가 무급휴직을 택했다. 아시아나 항공은 3월 중 전 직원 10일 순차 무급휴직을 결정했다. 4월에는 전 직원 15일 이상 무급휴직을 시행할 예정이다. 티웨이 항공도 근무일을 주 4일로 단축하고 무급휴직 희망자를 받고 있다. 사실상 전 직원 20% 이상 무급휴직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에어서울, 에어부산, 진에어는 대규모 유급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업계 1위 대한항공도 지난 7일 전 직원의 70%가량인 1만 3000여명에 대해 휴업수당을 지급하는 순환 유급휴직을 택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가운데, 객실 승무원에게서는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하도급업체 더 심각
하도급업체 상황은 더 나쁘다. 인천광역시가 지난 3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항공업 종사자 7만 6800여명 중 휴직 중이거나 퇴직한 인원은 2만 4000여 명(약 31%)으로 추정된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3월 31일 기준 하도급업체로 이루어진 지상조업사(비행 전후 항공기 제반 업무 전담사) 인력 9000여 명 중 45%가량이 휴직 중이거나 퇴직한 것으로 추산된다. 사실상 일방적 해고가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사 중 한 곳인 KO는 오는 1일부터 무기한 무급휴직을 실시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해고하기로 했다. 김정남 아시아나KO지부 지부장은 "2개월 단위로 경영 상황을 보고 복귀를 결정한다든지, 교대근무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본다든지 노동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을 달라고 회사에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무급휴직 노동자를 다시 회사로 부를지 말지도 회사가 결정하겠다는 상황에서 회사의 조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했다. 아시아나 하청업체 중에서는 여객운송 보조업체 AH와 KA도 권고사직, 희망퇴직 등을 시행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공항공사 청소업체 EK맨파워는 한국공항공사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 400명 중 74명만 남기고 해고하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 여객운송 보조업체 에어코리아도 전 직원 강제 연차 사용 및 무급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보완하고 인천 영종 해고금지 구역 설정해야"
정부는 코로나19 경제 위기로 인한 고용 감소 전망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강화했다. 고용유지지원금제는 경영난에 처한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휴업할 시 사업주가 지급해야 하는 수당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제를 신청한 사업주에게 휴업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휴업수당(통상임금 70%)을 업종에 따라 최대 90%까지 지원하고 있다. 기존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율은 67%였다.
그런데도 많은 항공 관련 업체가 무급휴직 혹은 해고 등의 조치를 취한다. 한재영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전략조직사업단 조직국장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여부를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사용자가 자금난이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휴업수당 자기부담금 10%도 주기 어렵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고용유지지원금의 제도 설계 자체가 하도급업체 특성과는 맞지 않아, 특히 하청 노동자에게 무급휴직과 해고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설명이다. 한 국장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업체는 일정 기간 신규 채용을 할 수 없다"며 "하도급업체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면 다른 곳에서 신규 계약을 따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도급업체는 통상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 사업을 유지하려면 수주 규모가 줄어들더라도 신규 계약 체결을 계속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이를 포기하면서까지 하도급업체가 고용유지지원금제를 활용할 유인은 없다.
한 국장은 "하도급업체는 보통 전국에서 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공항 사업은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신규 계약을 계속하는 방법을 택"하므로, 현 고용유지지원금제에서 하도급업체는 지원 사각 지대에 놓인다고 말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은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이 어려워야 탈 수 있는데 하도급업체는 여러 지역에 사업장을 갖고 있어 전체 경영 지표에 사업의 일부분인 항공 분야의 어려움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의 사각지대를 살펴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의 보완과 함께 해고 금지를 강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수 인천공항지역지부 부지부장은 "정부가 사업주를 통제하지 않으면 인천국제공항의 일자리는 계속 사라질 것"이라며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한시적 해고 금지 구역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남 지부장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상조업사 대표들을 만나러 인천국제공항에 왔었는데 노동자 목소리도 들어달라고 시위를 했다"며 "'한시적으로 이 지역에 해고를 막아달라'고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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