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은 소위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이웃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주민의 더 나은 삶의 질을 모색하는 협력의 장이다. 인권의 언어로 더 나은 삶이란, 사람들이 사회·경제·문화적 발전을 향유할 권리 조건이 충분한 상태라 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 어느 마을의 보건의료 시스템 구축 사업에서부터 사회적연대경제, 혁신적 IT 기술 등 창의적인 방법을 접목하여 주민의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의 토대를 형성한다.
저마다의 삶이 바쁜 일상에서 국경 밖의 일들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팬더믹’ 선언이 전 세계를 뒤흔든 지금,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연대 정신은 국제개발협력의 지향점과 닮았다. 마을 사람들 간 교류가 끊기고, 국경 간 이동이 제한되며,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단절이 지구 세상에 위협의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위기가 고조된 순간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네 이웃들은 가진 것을 함께 나누고, 일상을 쪼개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정을 살피며, 재난을 이겨낼 유용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 중이다.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규칙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으로 잇댄 연결의 힘이 새날을 열어가고 있다.
요즘 같은 위기에 더 빛을 발하는 사회적 연대 정신은 국제개발협력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국제개발협력은 국경, 인종, 성별, 경제·사회적 차별의 장벽을 넘어 대규모 재난에는 인도적 협력을, 재난이 휩쓸고 간 후에는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기르는 협력사업을 수행한다. 미래에 다가올 위험에 대처할 힘을 기르기 위해 교육, 보건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과 지역 공동체의 공생을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지속가능발전을 실천한다. 오늘날 대부분 사회 문제들은 이 신종 바이러스처럼 국경을 모르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야만적이다. 혼자만 살고자 국경을 닫는 순간 다른 문제들과 함께 몰려온다. 이처럼 전지구적 양상을 띠고 도미노 게임처럼 서로 취약하게 기대어 있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해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중요한 까닭이다.
필자는 국제개발협력이 일국의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자국의 이익만을 따지는 협력방식은 사회문제에 대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숙의·공론 과정을 간과하기 쉽다. 충분한 대화와 참여 없는 공허한 광장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소수의 차별과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다. 결국에는 국가의 존재 기반인 시민들의 역량을 도태시켜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한 이른바 ‘브렉시트’의 사례처럼 글로벌 다자협력의 모델이 후퇴하고 있다는 분석을 종종 발표한다. 이러한 전세를 역전시킬 재난의 교훈이 인류 보편적 국제협력의 강화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국제적 연대 강화를 위한 하나의 사례로 어떠한 개발협력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모든 정책과 제도, 프로그램에서 사회적 소수자인 취약계층의 요구를 반영하고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권 중심의 개발협력 모델이 국제사회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었다. 사회에서 불평등한 지위에 있는 이들의 참여, 역량 강화, 비차별의 원칙을 준수하여 주민의 권리 증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여성, 장애인, 아동 등 취약계층이 처한 현실을 개선해낼 과제를 반영하고, 이용에 제약이 없는 적절한 사업 수행 역량을 모색한다. 단적인 사례로 장애 접근성이 낮은 병원 시설은 비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병원 이용의 사회적 효용이 떨어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일자리 지원 센터에 아이들 놀이방이 없다면, 센터의 운영이 성공적이라 말할 수 없다.
취약계층의 목소리는 평소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등장할 때 “우리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절실한 외침이 그들의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요구는 구조적 배제와 차별의 결과이기에, 권리로서 보장되고 기반 자원을 투입하는 개발협력 모델이 강화되어야 한다. 혹자는 인권 중심의 개발협력이 너무 가치 중심적이어서 실질적인 방법론이 부재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권리옹호를 미션으로 하는 국제 개발 엔지오나 민간부문에서는 이미 역량과 경험치가 쌓여있다.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에는 파트너 국가 정부가 맡아서 하도록 정부의 책무성을 강화하거나, 여성 참여율 강화 노력에 기울인 사업이 다른 현장에서도 지켜지도록 지역사회 조례를 개정한 사례에서처럼 말이다. 이제는 이러한 개개의 시도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국가별 상황에 맞는 영역별 권리증진 모델로 거듭나도록 공통의 이해와 제도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할 때다.
국제개발협력 분야가 지니는 고유의 전문성도 인권중심의 개발협력 모델 형성을 앞당기는 데 큰 장점이 된다. 이 분야는 권리실현을 위한 의도적 개입 활동에 다방면의 영역, 기술 및 자원이 있고, 사업의 기획, 실행 및 평가를 체계화하는데 역량이 있다. 여기에 나아가 사업에서 의도한 권리의 실질 효과를 평가 및 관리하는 정책 개발 역량이 보강된다면, 인권의 가치가 내재화되는 사업 모델이 다각화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한편, 문제개선을 위해 지역사회 상황을 분석할 때도 실용적인 출발지점을 모색할 수 있다. 권리옹호 그룹과 대화하여 지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들이 수행한 조사 결과를 참고하여 사업기획의 기초선으로 삼아보는 것이다.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등 유엔 인권이사회가 각국의 인권상황을 정기적으로 심의하여 개선 조치를 권고한 내용도 중요한 참고 지점이다.
요약하자면 국제인권기준에 맞게 지역사회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취약계층의 참여를 강화하며, 권리실현을 위한 활동과 성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인권적 가치 창출로 연결하는 국제협력의 길이다. 개발협력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주민과 지역사회에 환경, 사회적으로 해를 끼친다면, 회복을 지원하여 인권존중과 보호의 책임을 다하는 협력이다.
가끔 이런 고민이 한순간 허무해질 만큼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도 있다. 다양한 주체들과 현지 주민이 어우러진 개발협력 생태계에서 성희롱, 괴롭힘 사안들이 들려올 때다. 각자의 반경에서 가치의 실천과 공동의 책임 의식도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기후위기, 불평등, 여러 재난 등 위기의 복합적 출현이 점차 일상이 되고 있다. 위기를 위기로 복원시킬지, 새로운 전환으로 삼을지의 갈림길에서 “연대”라는 단어가 최근 반갑게 들리기 시작한다. 연대 정신을 되살릴 인권 중심의 국제개발협력의 길도 각자의 지평에서 널리 모색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기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의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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