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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피할 기회조차 없는 요양·정신병원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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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피할 기회조차 없는 요양·정신병원 환자들

[시민정치시평] 코로나19로 촉발된 집단수용시설 문제

102명의 입원환자 중 100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경북 청도 대남병원(정신병원)을 필두로 하여 22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경북 칠곡군의 밀알사랑의 집(중증장애인거주시설), 9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 북구의 성보재활원(장애인거주시설), 12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 북구의 배성병원(정신병원), 75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 서구 한사랑요양병원, 57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 달성군의 대실요양병원 등 정신병원·장애인거주시설·노인요양병원 등 집단수용시설에서의 코로나 19 집단감염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청도 대남병원의 경우에 폐쇄병동으로 외부와 차단된 상황이었다. 병원 내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이 생길 여지는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 직원 1인이 외부에서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병원 내로 들어오자 삽시간에 98%의 입원환자들이 코로나 19에 감염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정신병원이나 장애인거주시설도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감염된 1인이 바이러스를 다른 입소자들에게 삽시간에 퍼뜨렸다. 정신병원·사회복지시설·요양병원 등은 밀폐된 공간에서 수십명이 공동생활을 하는 등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입소자 간 감염관리나 위생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보건 사각지대이다. 청도대남병원의 경우에 온돌방(병실) 안에 10명 넘는 이들이 한 방에서 대소변을 보고 치우는 상황이 계속됐다. 입소자들은 오랜 병실 생활로 신체 기능도 퇴화해 버려 감염성 질환이 쉽게 노출되었다.

이러한 탓에 집단수용시설 내에서 감염이 빠르게 확산되었고 중증환자가 다수 발생하였다. 해당 지자체나 보건복지부에서는 병원이나 시설 측의 관리 소홀로 대규모 감염병 확산이 확인된 경우에 책임자에 대한 법적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러한 윽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에 더하여 복지부는 지난 2월 24일 '장애인거주시설 코로나19 관련 대응 방안'에서 "지역사회 접근성이 낮고, 무연고자가 다수인 시설 이용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자가 격리가 불가능한바, 감염자의 경우 별도의 코호트 격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코호트 격리는 외부와 차단한 상황에서 동일집단을 묶어서 함께 격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복지부 지침은 전국의 장애인거주시설에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청도 대남병원에서의 입원환자의 집단감염에서 보듯이 코호트 격리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코호트 격리는 지역사회에서 그 공간을 섬처럼 분리하는 조치이기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시설 입소자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체계와 지원인력에 대한 고민 없이 코호트 격리를 실시하고, 이로 인해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조치이자 불평등한 의료지원이다.

또한 시설 거주자 상당수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이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시설 바깥에서 문제제기할 사람이 없다. 시설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폐쇄성을 고려했을 때에 장애인거주시설 감염자에 대한 코호트 격리방안 원칙은 시설 안에서 알아서 해결하고 바깥에는 나오지 말라고 선언하는 것에 다름 없다.

집단수용시설에서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집단 수용 시스템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분리된 수용시설에 대한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다. 폐쇄적인 시설 운영으로 반복되는 인권침해와 각종 학대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감염질환의 확산은 결국 지역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폐쇄된 공간에서 20~30년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입소자에게 감염병으로부터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의료시스템에서조차 격리시키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 내 집단감염 사태의 첫 사망자 A씨는 연고자가 없고 20년 넘게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였다. 그는 2월 19일 폐렴 증세로 사망하였는데, 사망 당시 그의 몸무게는 고작 42kg에 불과하였다. 20년 넘게 폐쇄병동에 갇혀있는 동안 어떤 열악한 삶을 살았으며 얼마나 허약한 면역력을 지녔는지조차 가늠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20년 만에 주검이 되어서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국가가 온 총력을 기울여 코로나 19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겠다고 모든 의료시스템을 총동원하는 현 상황에서 제대로 의료체계도 갖추지 못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는, 장애인을 집단수용하고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최소한의 요양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노인요양병원에서는 감염병을 피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도 입소자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만일 폐쇄병동에, 장애인거주시설에, 노인요양병원에 입원·입소된 장애인·노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았더라면. 그래서 동네 가까운 병원을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지역사회 통합된 환경에서 적절한 건강상태 점검과 신속한 조치를 받았더라면.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개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여타 확진자처럼 즉각적이고 집중적인 돌봄을 받았더라면, 집단감염과 사망에 이르는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집단을 싼 값에 한 곳에 모아놓은 집단수용시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왔고, 이러한 집단수용정책이 결국 감염병에도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폐쇄병동과 수용시설에 집단 격리수용해왔던 사회의 폭력적 제도를 함께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의 어떠한 관심도 받지 못하는 폐쇄병동과 거주시설·요양병동에서 겨우 목숨만 건사한 채로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써만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는 서글픈 상황을 이제는 중단하여야 한다. 보건 당국은 더이상 폐쇄된 문을 더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라 장애와 질환을 이유로 존재 자체를 추방하는 '수용정책'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개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폐쇄병동·집단수용이 아닌 지역사회 통합된 환경에서 적절한 의료시스템을 이용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강력한 '탈원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집단감염과 집단사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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