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경제 참모진 개편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경제정책 사령탑인 장하성 정책실장이 27일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정부 기조인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강조로 풀이됐다.
청와대는 전날 차관급인 수석비서관 인사를 통해 경제수석·일자리수석을 교체했다. 특히 소득주도성장론을 주도한 학자 출신 홍장표 경제수석이 경제관료 출신인 윤종원 신임 수석으로 교체된 것을 두고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궤도 수정 내지 속도조절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장하성 실장은 이날 오전 임종석 비서실장 주재 현안점검회의에서 이렇게 발언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촛불'이 이 정권을 만들어 냈다. '국민의 힘으로 만든 정부가 세상을 바꿨다'는 결과를 역사가 기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정체성과 방향을 흔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싶어하지만, 여러분이 결코 책임을 지고 떠나는 게 아니다. 새로운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같은 발언이 나온 맥락은 홍장표 수석과 반장식 일자리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이 마지막 회의에 참석해 이임 소회를 밝힌 데 대한 답사 격이었다. 김 대변인은 장 실장이 이런 발언을 한 어조가 "비감했다"고 전했다. 장 실장은 한동안 말을 못 하다가 입을 떼어 "만남과 헤어짐, 정부 정책의 부침(浮沈)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이같이 발언했다고 한다.
전날 청와대 인사를 두고는 양 방향에서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분배론적 성격이 강한 '소득주도성장' 대신 신성장동력을 강조하는 '혁신성장' 쪽으로 정책 초점이 옮아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이 보수화되는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청와대와 정부·여당에서 나온 일련의 행보를 놓고 일각에서는 '보수화' 우려가 있기도 하다.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개악'이라고 반발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법 개정을 통해 이뤄졌다. 주 52시간 노동제는 6개월 처벌 유예 조치에 이어, 전날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ICT 업종의 경우 예외를 더 폭넓게 인정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또 혁신성장 정책 추진을 위한 정책간담회에,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초청하기로 했다가 논란 끝에 행사를 취소하기도 했다.
홍장표 수석을 물러나게 하고, 경제관료 출신인 윤종원 수석을 기용한 것도 이런 우려를 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홍 전 수석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하번 후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산하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되기는 하지만, 경제수석 자리에 비하면 2선 후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투 톱'은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인데,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론을,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론 등 전통적 성장담론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돼 왔다. 때문에 '투 톱' 간 불화설 내지 이견설이 끊이지 않아 왔고, 청와대가 아무리 "분위기 좋다(20일, 김의겸 대변인)"고 진화해도 가라앉지 않았다. 실제로 노선·의견 차이가 없지 않기 때문이었다.
반면 전날 청와대 인사가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부정이나 방향 선회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관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근거는 바로 장 실장이 유임됐다는 사실이다. 장 실장이 이날 회의에서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며 "여러분이 결코 책임을 지고 떠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래서다.
또 윤종원 신임 경제수석이 관료 출신인 것은 맞지만, 과거 IMF나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던 때부터 '포용적 성장'을 주장하는 등 통상적인 경제관료들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윤 수석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 12월에 IMF 이사로서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하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이제는 성장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실업급여 및 효율적 재취업 훈련 등 적극적 노동정책과 교육 투자를 통해 사회의 이동성을 높일 수 있다. 보다 포용적인 성장을 하면 사회에 폭력이 줄어들고 신뢰가 높아져 성장의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주OECD 대사로 재직할 때도 포용적 성장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윤 수석(행시 27회)이 김 부총리(행시 26회)와 공무원 기수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점도 관심거리다. 때문에 그의 경제수석 발탁을 '청와대 내에서 경제관료의 입김이 강해지는 조짐'으로 봐야 할지, 오히려 장 실장 휘하에 유능한 관료 출신 수석을 넣어줌으로써 장 실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봐야 할지 관측이 엇갈리기도 한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이임하는 3명의 수석은 인사말을 통해 각각 소회를 밝혔다.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지난 1년 극적 상황이 많이 벌어졌는데, 그 한가운데서 일하고 경험하게 된 것이 행운이었다"며 "기회를 준 대통령께 감사드리고 나가서도 보답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반장식 일자리수석은 "지난 10년간 많은 논의가 있었던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은 말만 많았지 착수하지 못했는데 이번 정부에서야 착수했다"며 "국민 삶이 달라지는 것을 체감하는 게 중요한데 그 짐을 남겨두고 가게 돼 죄송하다"고 했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마지막으로 발언하며 "지난 1년, 정부 정책의 일대 대전환이 일어났다. 그 동안 학자로서 주장하던 내용이 중요 정책으로 자리잡아 무한한 영광으로 느낀다"고 말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