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어 또다시 높은 지지율을 과시했다.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안보 환경이 크게 개선되며 냉전적 태도로 일관해온 자유한국당이 경북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에서 괴멸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잘 나가면',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의 대승도 가능하고 2022년의 정권 재창출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 나가면' 하는 가정법에 속하는 이야기이다. '문재인 호'가 항해하는 동안 암초를 만날 수도 있고, 또 무사히 그 암초를 돌파해야 항구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다. 암초란, 말할 것도 없이 민생 문제 악화와 점점 나빠지는 국가 경제이다.
문재인 정권이 민생 문제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일자리 81만 개 확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같은 정책이 그것이다.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임금이 낮아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니, 급한 대로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인상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부문에서 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품이 드니 우선 공공부문에서 재정을 투입해 성과를 보이려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이 정책은 응급조치 성격의 것이고 한계도 분명하다. 일자리 늘리기가 민간부문으로 퍼지려면 공공부문 일자리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또 위 정책 모두에 각각 몇조 단위의 재정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재정의 한계가 명확한데 계속 그렇게 갈 수도 없다.
게다가 얼마 전에 드러났듯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득 제1분위(최하 20%)에 속하는 이들의 소득은 줄어들고 제5분위에 속하는 고소득자의 소득이 늘어난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는 이를 노령화 때문에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증가한 탓으로 몰아가는 것 같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줄인 영향도 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실감한다. 식당이나 커피점 등에서는 고용 인원을 줄이고 있고,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는 곳도 많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대형마트에서 무인계산기를 도입하고 있으며, 무인주유소 또한 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첫해 결과를 객관적으로 알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대폭 인상할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마침 지난 26일 청와대는 홍장표 경제수석을 바꾸는 등 인사를 단행했다. 홍장표 전 수석이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우며 정부 경제 정책의 큰 틀을 만들었으나, 최저임금과 관련한 통계조작 시비에 걸려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렸으니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1년 차 주된 경제 정책 세 가지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국민들도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별 준비 없이 정권을 잡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1년은 접어줄 수 있다. 그러나 2년째부터는 다르다.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뭔가 보여줘야 할 때이다.
한국 사회 양극화의 주범은 재벌 경제 체제이다. 재벌 대기업들이 경제 성장의 과일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하다 파산한다. 따라서 일자리가 늘래야 늘 수 없고, 임금도 오르려야 오를 수 없는 구조다. 서민 경제 악화는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전자가 한 해 50조 원의 이익을 내든 말든, 그것이 서민 경제와 무슨 상관이 있나.
문재인 정권도 재벌 개혁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참여연대에서 재벌을 공격하던 공격수인 김상조 씨를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상조 위원장이 한 조치는 재벌 개혁과 거리가 멀다. 기껏해야 프랜차이즈 기업이나 조사하고, 재벌은 스스로 알아서 개혁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정부가 압박을 가했어도 꿈쩍 안 했는데 알아서 하라니, 과연 알아서 하겠는가.
현 정권이 서민경제를 위한 본 게임을 제대로 치르려면 청와대 경제수석의 교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청와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씨와 김상조 씨를 함께 바꾸고, 정책 기조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두 사람은 참여연대에서 주주자본주의를 한다며 삼성을 공격했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무슨 펀드인가를 만들어 외국 자본의 안내인 역할을 한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재벌 개혁과 민생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문재인 정권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다며 자랑하는 데 열심이지만, 정말로 해야 할 일은 방치하고 모른 체하는 경향이 있다. 재벌 개혁은 정권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일이며, 제대로 해야 서민 경제뿐 아니라 한국 경제도 살아난다.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이니 혁신 성장이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 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벌 경제와 다른 파이일까?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은 것이 재벌 자신이 아니었던가. 최근 삼성전자가 한 교수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하다 미국 법원의 판결로 4000억 원 이상의 과징금을 물게 되었다. 애플도 사용료로 매년 100억 원을 내는데, 무전취식 하다 사달이 난 것이다. 개인이건 중소기업이건, 신기술을 개발해봤자 재벌 대기업이 제멋대로 탈취해 가는 마당에 4차 산업혁명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국내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삼성전자의 호실적에 가려 그렇지, 기업 대부분의 이익도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적인 무역전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개혁할 시간마저 부족하다.
문재인 정권 경제 정책의 가장 큰 약점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일 처리에 있어 과감성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벌이나 조직 노동과 공생하며 일은 적당히 하고 박수만 받으려고 한다. 역사상 진정한 개혁을 하면서 박수를 받은 사례가 있나? 개혁은 익숙한 시류를 거스르는 일로, 지지율에 연연할 것이 아니다.
지금 상태로 가면 몇 년이 지나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무능 정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민생은 도탄에 빠진다.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가. 정권의 진지한 반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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