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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衆口難防), 무리의 입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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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衆口難防), 무리의 입은 막을 수 없다

[시민정치시평] '뿌리 깊은 나무'와 SNS의 정치학

올해 가장 인기를 누렸던 TV 드라마 중 하나인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극화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조선을 건국하는데 핵심역할을 했던 밀본(密本)이라는 사대부 비밀결사가 세종의 한글창제를 막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알기 쉽고 배우기 쉬운 글이 백성들에게 '역병처럼 퍼져나가면' 성리학의 해석권한을 독점한 사대부의 위치가 위협받게 되고, 종국에는 성리학의 국가인 조선마저도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반면, 드라마에서 세종은 신분제도의 역사적 한계에 갇혀 있지만, 민중들에게 표현하고 사고할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의 권리를 찾게 하기위해서는 장래 조선왕조가 무너지는 것까지도 감수하는 계몽군주로 묘사된다. 드라마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파격과 욕설을 일삼는 세종의 캐릭터에는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최근 유행하는 나꼼수의 풍자스타일이 묘하게 묻어난다.
ⓒSBS

연말 들어, 이명박 정부의 사정기관들에서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규제하기 위한 일련의 방책들을 내놓고 있다. 최근 수년간, 특히 올해에 와서 '역병처럼 번져나가' 정권의 존립마저 위협하게 된 SNS의 영향력에 대해 규제당국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중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것을 불온하게 생각한 선관위가 '정치성향이 있는 유명인들이 SNS를 이용하여 투표독려를 위한 인증샷을 올려서는 안된다'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었다. 이 방침은 곧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무력화되었는데, 여론의 반응은 거의 조롱과 놀림에 가까웠다. '유명인들'은 마스크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으로 선관위의 규제방침을 공공연히 비웃었다. 선관위는 한발 물러서는 듯 했다. 하지만 뒤이어 몇몇 보수적인 시민들이 선관위 방침을 근거로 김제동 씨와 조국 씨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검찰은 지난 12월 26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SNS 선거운동 처벌기준을 작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SNS 규제에 나섰다. 방통심의위는 SNS를 위원회의 심의대상으로 포함시킨데 이어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전담팀도 꾸렸다. 방통위에 따르면 SNS가 개인 간의 사적인 의사소통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개인의 의견을 공공연히 퍼뜨리는 '공연성(公演性')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허위사실 등이 유포될 경우, 계정자체를 폐쇄하는 등의 강력한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국의 이런 접근방식은 SNS에서 일어나는 시민의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혼란을 야기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다. 군중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례와 용례가 사뭇 다르다는 점은 이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중구난방은 통상 어수선하고 종잡을 수 없이 제각각 떠드는 모양새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서인 십팔사략에 따르면, 중구난방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는 이렇다. 주나라 소공(召公)이 여왕(周勵王)의 탄압 정책에 반대하며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를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충언하였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이 같은 충언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알려진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도망하여 평생을 갇혀 살게 되었다.

여왕이 없는 동안 일부 제후와 재상이 왕을 대신하여 집정(執政)하던 시기를 공화(共和)라 불렀는데, '공화제(共和制)'란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중구난방은 공화제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셈이다.

그런데, 지배자들에게 백성의 생각과 말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상황은 종잡을 수 없는 무질서와 혼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던 반면, 중구난방의 고사에서는 백성들의 생각과 말을 개천에 비유함으로써 사실상 그 속에 일정한 경향과 흐름, 즉 시대정신이라 할 만한 것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이 무질서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알려지고 이용되게 된 까닭은 민주주의에 대한 통치자들의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반복적으로 이 용어의 해석에 작용해온 탓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리의 입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2011년은 전 지구적 의미에서 '중구난방'의 한 해였다고 볼 수 있다. 연초 시작된 아랍과 북아프리카에서의 민주화 도미노가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 점거시위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유럽과 전 세계로 '역병처럼 퍼져나가' 전지구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한국에서도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흐름은 여지없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시민들의 신속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 SNS 시스템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

사실 아랍/북아프리카와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북미/유럽은 체제/문화/지리적 공간 모든 면에서 매우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맥락에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아랍/북아프리카는 현대자본주의 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석유라는 화석연료가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는 지역으로서, 서구제국의 편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할되어 반(半)봉건적인 혹은 소수 권위주의 지배자가 통치하는 국가들간 서로 반목하는 체제로 유도되고 관리되어 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 점에서 서구국가들이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와 화해를 촉구해온 것은 다분히 이중적이고 의례적인 것으로서 해당 공동체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희구해온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것이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이러한 모순적 연관을 극단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다분히 석유패권을 노린 것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확산을 주창했던 것이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은 종국에는 서구의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쇼크 독트린'의 저자이자 경제평론가인 나오미 클라인 식으로 풀이하면 테러와의 전쟁의 주창자들은 이른바 '쇼크 독트린'을 통해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안보와 전쟁 논리 뒤에 감추고, 결과적으로 그 투기성, 소모성, 약탈성을 심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위기를 재앙의 수준으로 심화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2011년은 소련이 해체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1991년 12월의 소련 연방해체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시작된 구사회주의 체제 몰락에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동베를린에 모였던 반공산당 시위대가 내걸었던 유명한 구호는 "우리가 바로 인민이다. We are the people"이었다. 20년이 지난 후 월스트리트에서는 "1%의 탐욕에 봉사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우리가 바로 99%다"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20년의 시간을 두고 제시된 두 구호가 지니는 공통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냉전이 해체되었을 때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기도 했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훨씬 겸허하게 보다 정의로운 시스템을 모색했어야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은 탐욕의 질서를 더 극단으로 밀어부쳤고 현재의 위기를 잉태했다. 2011년 지구촌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제 전세계적인 금융/재정위기와 에너지/자원 위기라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위기 앞에서 대다수의 민중들을 삶의 극단으로 내모는 모순에 찬 세계화와 양극화에 맞서는 전 지구적인 민주화 흐름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봇물처럼 흘러넘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1년은 중구난방의 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명확한 경향이 엿보였다. 극단적인 경쟁사회, 양극화사회, 위험사회, 소수를 위한 특권사회에 대한 시민의 도전이 그것이다. 극단적인 양극화 속에서 시민의 삶은 안전장치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이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것인 양 정당화해왔던 기성 보수 정당과 관료 기구, 그리고 주류 언론과 주류 지식사회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당연시했거나 무력하게 감내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기 시작하고 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민영화, FTA, 원자력발전, 군사기지 등 2011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회적 이슈의 목록이 시민들 내면의 금기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 평화, 표현의 자유를 향한 목소리가 힘을 얻는 반면, 재벌체제, 정당질서, 주류언론, 공안기구 등은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 기성의 체제가 제시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99%의 시민들이 더 이상 그들의 언어와 권력에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류언론은 이러한 경향을 여전히 혼란과 위기의 징후로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위기는 특권적 구조의 재생산에 봉사해온 가부장적인 국가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위기일 수 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맹목적으로 강조되어온 국가안보나 국익보다 사회적 안전망과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고삐 풀린 시장의 자유보다는 시장과 국가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도리어 실질적으로 더욱 공익적이고 안전하며 균형 잡힌 사회로 나아갈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다. 즉 시민주도 민주주의가 가져올 건강한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참여연대 창립자의 한 분이자, 초대 공동대표를 역임한 김중배 선생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문명의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고, 그 문명의 전환을 어떤 쪽으로 끌어갈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지구적인 수준에서 경제위기, 자원위기가 만성화되고 있고, 한반도 분단체제도 다시 찾아온 냉전적 대결구도와 군사적 긴장 속에서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다. 시민의 요구는 한계에 직면한 성장주의와 군사주의를 뛰어넘을 새로운 대안을 향하고 있다. 이 전환의 국면에서 사회운동과 정치가 할 일은 문턱을 더욱 낮추고 조촐한 마음으로 즐겁게 시민의 바다에 뛰어드는 것, 절박한 외침이 있는 곳을 향해 요란하지 않게 쉼 없이 흘러가는 것, 더욱 대담하게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시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012년에도 중구난방의 힘, 그 신나는 축제의 에너지가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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