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논의하기로 한 정치 개혁 방안 중 하나인 석패율제가 "현 시점에서는 오히려 한국 정치 발전에 역행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나와 주목된다.
석패율제 도입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국회 등원에 합의하면서 발표한 여야 합의 사항 중에 포함된 내용이며, 지난 22일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원혜영 민주당 공동대표가 만난 자리에서도 공감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석패율(惜敗律) 제도는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지역구에서 낙선했을 경우에 당선자와의 득표 차가 가장 적은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하여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구제하는 제도다. 석패율 제도는 영호남 지역에서 특정 정당들이 몰표를 얻는 결과를 낳는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대안적 제도로 오래 전부터 논의되던 제도다.
하지만 현재 석패율제가 도입된 일본에 비해 현저히 적은 비례대표 정수(54명)를 갖고 있고, '사표 심리'가 강하게 작동할 수 있는 '소선거구제'에서 석패율제는 오히려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반대가 나온다. 지역구 낙선자를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하게 되면 이익을 보는 것은 노선을 떠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여야 제1당이다. 한국 정치지형에서 극과 극에 있다고 보여지는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이 석패율제 도입에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9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사례를 봐도 석패율제의 이런 '부작용'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009년 8월 총선거에서 지역구에서 떨어진 의원 14명이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부활했다. 여성 최초 방위상을 지낸 5선 의원인 고이케 유리코 등 '부활한' 대다수 의원들이 중진급 이상의 의원들이다. 일본에서 석패율제를 통해 부활한 의원들은 '좀비 의원'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통합진보당 "민주당, 한나라당 꼼수에 손바닥 맞대주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21일 당 대표단 회의에서 석패율제에 대해 "당초에 최소한의 긍정성을 가지고 논의될 때는 지역 구도를 타파해서 절대 당선 불가능한 곳에 일종의 견제세력이 등장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한나라당을 몰락하는 처지에서 구해주는 방법으로 동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역구에서 떨어진 그 의원이 비례대표로 부활하게 된다면, 수도권에서 몰락위기에 있는 한나라당 중진의원들을 구해주게 될 것이고, 호남에서 지금까지는 수십 년 동안 발붙이지 못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취약지역에 출마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나서 앞으로 호남지역의 한나라당 기반을 만드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우리 국민들은 지역주의에 기초한 수십년 간의 정치독점을 한나라당을 무너뜨림으로써 돌파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며 "또 통합진보당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노동자 , 농민, 시민들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기초를 단단히 하고 있고, 경남, 울산, 부산, 전남, 광주, 전북에서 모든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서도 민주당이 석패율제 도입에 합의해준 것에 대해 비난했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석패율제가 도입될 경우 가장 혜택을 보게 되는 이들은 다름 아닌 두 교섭단체의 영호남 중진의원들"이라면서 "국민심판을 받게 된 구태정치인이 석패율제를 통해 부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 대변인은 "석패율제 도입 논의가 기존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그 후진적 성격은 더욱 분명하다"며 "정치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정치개혁의 핵심과제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두 거대 교섭단체는 거꾸로 행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꼼수를 폭로하고 제동을 걸어야 할 제1야당이 구태와 후진정치에 손바닥을 마주쳐준다면, 국민들이 국회에 과연 기대할게 있겠느냐"며 "민주-진보 통합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발한 민주통합당이 시작부터 한나라당과 구태한 야합에 나서 정치개혁을 후퇴시키고 있는 점에 심각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통합진보당은 "두 교섭단체는 정치개혁을 뒤로 돌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석패율제 도입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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