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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주장하던 친이계, 석패율제로 몰려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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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주장하던 친이계, 석패율제로 몰려간 이유?

[분석] 석패율제, 야권연대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선거제도는 '게임의 룰'이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합의된 '규칙'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야권에서 뜨겁게 논의 중인 '야권연대'라는 '전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여론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지난달 20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고위원단과 만찬회동에서 "석패율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등장하는 등 이명박 정부와 친이계에서 '석패율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게임의 법칙'을 바꾸겠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2004년 '1인2표제' 도입이 가져온 '혁명적 변화'

선거제도가 선거결과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2004년 총선을 보면 알 수 있다. 총선 사상 처음으로 '1인2표제'가 도입된 뒤 치러진 선거에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60년 7·29 총선에서 사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이 7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원내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것도 10석의 의석으로 원내 제3정당의 자리를 꿰찼다.

'40여 년만의 진보정당 원내진출'이라는 한국 정치사에 남을 큰 성과는 2000년 2월 당시 민주당 유재건-조순형 의원과 민주노동당이 '1인1표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01년 7월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당시 결정문에서 "1인1표제하에서의 비례대표제 배분방식은 유권자의 정당지지와 후보자 지지가 엇갈릴 경우 절반의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고 비례대표 의원 선출도 정당의 명부작성 행위에 따라 결정돼 직접선거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런 헌재 결정에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비례대표제를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이를 일부 수용하면서 현재와 같은 '1인2표제'가 도입됐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처음 정당투표가 실시된 결과, 민주노동당이 8.3%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해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TV토론에 권영길 후보가 참여할 수 있었다. TV토론을 통해 권영길 후보는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캐치프레이즈, 부유세,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책 주장 등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성과들을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나갔고, 2004년 총선에서는 원내진입에 성공했다. '원내 제3당'이라는 성과도 민주노동당이 정당지지율 13.07%를 얻어 비례대표를 8석을 배정받으면서 가능했다.

한나라-민주 한 목소리 "석패율제를 위하여!"

2012년 총선을 앞두고도 선거제도 개편 얘기가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9년과 2010년 연이어 8.15 경축사를 통해 "지역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등에서 논의를 거쳐 최근 급격히 부상한 방안이 '석패율제' 도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단과 가진 만찬회동에서 "석패율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등장했을 뿐 아니라 이재오 특임장관도 지난달 2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전국 정당이 되려면 석패율제라도 도입해야 한다. (내년 있을) 19대 총선부터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상수 대표도 석패율제 도입에 강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석패율 전도사'를 자처하는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9일 전북대에서 석패율제 도입 토론회를 개최했다.

▲ '석패율 전도사'를 자처하는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은 10일 정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호남특위를 발족시켰다. ⓒ뉴시스

여당만이 아니다. 야당에서도 석패율제 도입에 긍정적이다. 민주당 개혁특위 위원장인 천정배 최고위원은 지난달 22일 "석패율 제도는 각 정당마다 전국정당으로 가는 유효한 수단"이라며 "민주당은 이전부터 석패율 도입을 당론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10일 첫 회의를 가진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통해 석패율제 도입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석패율제는 말 그대로 '석패(惜敗)'한 후보자를 구제해주는 것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중복 입후보를 허용해 지역구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자들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제도다. 석패율제가 도입될 경우, 지역구에서 떨어진 후보가 비례대표에서 부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영남을 한나라당이 싹쓸이하고 호남을 민주당이 싹쓸이 하는 '지역구도'를 일부 깰 수 있다는 게 도입 명분이다.

의석 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도 호남에서, 민주당도 영남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면 지금은 유명무실한 호남의 한나라당 지구당, 영남의 민주당 지구당이 확 달라진다. 인재 영입도 가능해진다. 지역 활동도 한층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입장에서 따지면, 석패율제는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의석 수보다 '전국 정당화'라는 부수적인 효과가 훨씬 값진 제도다.

민노-진보신당, 석패율제 도입 반대

문제는 진보정당들이다. 석패율제가 도입될 경우, 비례대표 중 일부를 석패율을 통해 부활한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 이럴 경우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와 전문직 등 지역구를 통해 의회에 들어오기 힘든 이들을 의회에 입성시키기 위한 제도인 비례대표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비례대표를 현재 수준(54명)으로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석패율제만 도입하는 것은 정치개혁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사례를 봐도 석패율제의 이런 '부작용'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009년 8월 총선거에서 지역구에서 떨어진 의원 14명이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부활했다. 여성 최초 방위상을 지낸 5선 의원인 고이케 유리코 등 '부활한' 대다수 의원들이 중진급 이상의 의원들이다. 석패율제는 정치신인들이 의회에 입성할 수 있는 수단인 (순수) 비례대표 의원의 수는 줄이면서 인지도가 있는 중진 의원들에게는 '안전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에서 석패율제를 통해 부활한 의원들은 '좀비 의원'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가뜩이나 지역구에선 소선구제에서의 '사표' 심리 때문에 불리해 비례대표 한석이 아쉬운 진보정당들은 비례대표제를 잠식하는 석패율제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 이병길 기획실장은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아직 당론을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비례대표를 늘리지 않고 석패율제만 도입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석패율을 도입할 경우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요건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국민의 정치적 심판 기능이 상실된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선거가 국민들에 의해 평가를 받는 것인데 지역구에서 떨어진 의원을 부활시킨다는 것은 이런 평가 기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민주당이 석패율에 찬성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야권연대에 있어 선거제도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면서 "단순히 소수정당이어서가 아니라 정당 지지율이 선거결과에 제대로 반영되는 쪽으로 선거제도가 개편되는 게 올바른 방향이고, 그런 차원에서 비례대표제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제도 개편에 있어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야합할 경우 강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진보신당 박철한 정책실장도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석패율제는 비례대표제의 위상을 삭감하는 제도"라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 실장은 "또 중요한 것은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깨는 것이 한국 정치 개혁의 전부인양 포장하는 수단으로 석패율제가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사실상 영호남을 양분해 독식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입장에서는 석패율제가 도입되면 양당 모두 전국정당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소수정당에는 전혀 메리트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석패율제 자체가 구 정치세력, 정치인에 대해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는 매력적인 제도"라면서 "하지만 이게 한국정치가 근본적으로 가야할 이념과 가치에 기반한 정책정당 건설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민주 VS 민노-진보신당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서는 한 목소리로 선거연대를 얘기한다. 연대의 수준과 범위에 있어 조금씩 이견이 있지만 연대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하지만 당장 정당, 더 직접적으로 개별 정치인들 입장에서 '밥그릇 싸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선거제도 개편을 놓고 야당들이 이해가 갈린다. 석패율제 도입에 있어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한편'이다.

문제는 '게임의 룰'인 선거제도에 있어 진보정당들이 양보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야권연대의 선결조건 2가지 중 하나로 선거제도 개편을 꼽았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선 석패율제를 포기할 명분이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최선이라는 것은 민주당도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당장 어떻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가겠나"면서 "한나라당이 동의하는 차선책을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19대 총선과 대선에서 선거연대를 통해 이기고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일단 정부여당 내에서 석패율제를 영남과 호남 지역에 국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석패율제에 할당되는 의석수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야권연대'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가 강하기 때문에 합의를 이룰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기까지 야권은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의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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