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는 선거제도 개편 움직임이 한창이다. '석패율제 도입'이 핵심 이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법 개정 의견을 냈고 이재오 특임장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등 친이계가 적극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도 이런 방향의 선거제도 개정에 공감하면서 당장 19대 총선에서부터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3월 시동을 건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의제에도 석패율제는 포함돼 있다.
석패율제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준다는 취지다. 선관위가 제출한 개정 의견에 따르면, 현재 논의되는 석패율제의 모델은 현행 비례대표제에 지역구를 결합한 제도를 도입하는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제'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방법 가운데 비례대표 의원과 지역구 의원 외에 또 한 가지가 생기는 것이다. 지역구에 출마하면서 동시에 비례대표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지역구에서 아깝게 떨어져 '지역 비례대표'로 의원이 되는 방법이 그것이다.
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석패율제, 과연 올바른 정치개혁인가'에서 추형관 선관위 법제기획관은 "이 제도의 한계가 있고 고육지책인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에 의한 선거현실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어 개정 의견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즉, 지역구도 타파가 핵심 이유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말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제', 즉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지역구도가 사라질까?
지역 기반 의원은 오히려 늘어…"지역주의 더 공고해진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가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단언이었다. "오히려 지역구도를 강화시킨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의 비례대표제도의 취지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소수정당이 모두 석패율제를 반대하는 이유기도 하다.
선관위 개정안은 현재 54명의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그대로 두고 석패율 제도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권영길 원내대표는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권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수를 그대로 두면서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현재는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는 여성, 직능 대표가 석패율 당선자 숫자만큼 당선권에서 멀어진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오히려 지역주의 정치를 공고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에 기반을 둔 비례대표 의원이 늘어나 전체적으로 지역 기반 의원의 숫자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
자연히 그들이 과연 누구의 대표자냐는 근본적 물음도 제기될 수 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지역구 낙선자가 비례대표로 선출되면 그 의원은 지역도 대표하지 않고 전국을 대표하지도 못하는 모호한 대표성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는 이런 의원들을 "좀비 의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김영태 목포대학교 교수도 "지역구에서 탈락해 비례로 구제된 의원이 과연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이라 할 수 있냐"며 "아니라면 지역구도 해소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고, 맞다면 영남과 호남은 상대적으로 과잉 대표되는 모순이 또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42% 얻은 2위 후보는 떨어지고 11% 얻은 3위 후보는 당선된다"
이른바 지역이 결합된 비례대표제가 가져올 수 있는 모순을 노회찬 전 대표는 가상의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광주의 한 선거구에서 민주당 의원이 43%의 득표율을 보여 당선됐다. 이 지역의 득표율 2위는 진보정당 후보로 42%를 얻었다. 한나라당 후보는 11%의 표를 얻어 3위를 했다. 진보정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는 모두 지역별 비례대표 6순위였다. 정당 지지도가 높은 한나라당 후보는 석패율제로 당선됐다. 그러나 진보정당 후보는 비례대표 순위가 당선권보다 뒤에 있어 의원이 되지 못했다. 42%를 얻고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고 11%를 얻어 같은 지역에서 지역결합 비례대표라는 명분으로 당선되는 사람이 생긴다. 이래도 '석패'를 구제한 것인가?"
결국 거대 양당만 좋은 제도라는 얘기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지역주의 정당이 의원을 더 당선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벌이 아닌 상을 주는 효과를 낳는 역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영남과 호남에서 석패율제를 통해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각각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라며 "지역주의 완화를 명분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려는 '야합'"이라고 단정했다.
노 전 대표는 "결국 지역주의를 만들어낸 진짜 범인은 놔두고 범인이 아닌 자를 범인으로 몰아 오히려 범죄를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다른 곳에 있다는 얘기다.
"현재 54명인 비례대표 의석 늘리는 것만이 진짜 해결책"
노 전 대표가 '지역구도'의 진짜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소선거 다수대표제"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지역구도의 해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참석자의 다수가 내놓은 '진짜 대안'도 "비례대표 의원의 대폭 확대"였다.
노 전 대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1:1까지는 어렵다면 최소한 3:2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근 논설위원도 "정당경쟁이 강화되고 의석수의 비례성을 높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라며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례대표 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논설위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과의 야당 연합 논의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공동의 목표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표도 최근 '가설정당'이라는 야권연대 구상을 밝히면서 선거구제 개편을 합의하고 국회 권력과 행정 권력이 교체되면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영태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정치는 지역 대표성은 강한데 사회적 대표성이 약하니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그러나 석패율제는 이런 방향과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현역 지역구 의원의 반발이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의석수 자체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승수 대표는 "우리 유권자수에 대비해 적절한 국회의원 숫자는 외국 학자들에 따르면 최소 360명"이라며 "이 가운데 최소 100명은 비례대표 의원이 되는 구조가 되어야만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당이 반영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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